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년 만에 열린 '여야 당 대표 회담' 자리에서 밑도 끝도 없는 '괴담(怪談)'을 들먹이며, 역사적인 여야 총수 회동을 '정치 선동'의 장(場)으로 전락시켰다.
'이재명 일극 체제'의 부작용 탓일까. 그동안 당 최고위원회의 등에서만 언급해 오던 '삼류 괴담'을 당 대표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당 내 '자정(自淨)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이재명 "'독도 영유권' 부정하는 행위 있다"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비공개 회담을 앞두고 모두발언을 한 이 대표는 "최근에 독도 문제나 교과서 문제 또 일제 침략에 관한 문제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며 "국가의 구성에는 3대 요소 영토·주권·국민이 있는데, 그런데 영토를 부정하는,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는 행위 또는 주권을 부정하는 행위, 즉 외국의 침략을 합리화하는, 미화하는 행위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국가를 부정하는, 그야말로 윤석열 대통령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반국가적 주장"이라고 일갈한 이 대표는 "이런 반국가적 주장에 대해 형벌을 가하는 건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과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공직을 맡기는 건 부적절하다라는 생각에서 공직 취임을 제한 법안을 저희가 준비 중인데, 협조해 주시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들먹인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는 행위'는 민주당이 최근 서울 지하철 역사 및 전쟁기념관 내 '독도 조형물'이 철거되는 것을 두고, 윤석열 정부의 '독도 지우기'라고 주장한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노후화된 전시물 교체가 독도 지우기?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하철 역사와 전쟁기념관에 설치돼 있던 독도 조형물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은 우려에 우려를 더하고 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주권과 영토, 국민을 팔아먹는 행위를 묵인하거나 용인하는 행위가 반국가 행위이고, 이를 행하는 세력이 바로 반국가 세력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반국가 세력으로 오인당할 만한 일체의 행동을 중단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이 대표는 독도 조형물 철거 사안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독도 지우기 진상조사단' 구성을 지시했다. 코로나19 확진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이 대표가 병상에서 내려온 직후 내린 첫 번째 긴급 지시였다.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노후화된 전시물 교체마저 정치 선동의 소재로 삼고 있다"며 이 같은 움직임을 현 정부에 '친일' 프레임을 씌워 대정부 공세를 펼치기 위한 의도로 풀이했다.
대통령실도 즉각 반박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26일 민주당의 관련 주장을 '야당의 묻지마 괴담 시리즈'로 규정하며 "정부 공격용으로 독도까지 끌어들인 민주당이 '공당'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규탄했다.
◆"있지도 않은 독도 지우기, 왜 의심하나?"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있지도 않은 독도 지우기를 왜 야당이 의심하는 것인지 그 저의를 묻고 싶다"며 "독도 철거물은 노후화됐기에 새로운 조형물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언론에서 거론되고 야당에서 지적하고 있는 지하철역 조형물들은 2009년에 설치돼 15년이 경과됐고, 전쟁기념관 조형물은 2012년에 설치돼 (12년이 경과돼) 탈색되고 노후화된 것"이라며 "지하철역 조형물은 독도의 날 10월 25일에 맞춰서 다시 새롭게 새로운 조형물로 설치하고, 전쟁기념관 조형물은 개관 30주년을 맞아 6개 전시물을 모두 수거해 재보수 작업을 거친 뒤 다시 설치할 방침"이라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정 대변인은 "노후화돼서 재설치한다는 내용을 알고도 왜 야당은 자꾸 독도 지우기라는 괴담을 퍼뜨리냐"며 "독도 지우기에 나서는 정부가 연 두 차례씩 독도 지키기 훈련을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우리 영토 독도에 대해 거대 야당이 독도 영유권을 의심하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독도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국제법상으로 우리 영토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독도가 마치 논란이 되는 것처럼 선동 소재로 삼아 국제 분쟁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일본이 원하는 전략"이라고 일침을 가했다.◆김민석 "'계엄령 빌드업 불장난' 포기하라"
이 대표의 '괴담 전파'는 독도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근거도 없는 '계엄설'을 언급하며 "이거 완벽한 독재 국가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이 대표는 "최근에 계엄 얘기가 자꾸 얘기되고 있고, 종전에 만들어졌던 계엄안에 보면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국회의원들을 계엄 선포와 동시에 체포·구금하겠다는 그런 계획을 꾸몄다는 얘기도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오히려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계엄설을 처음 거론한 건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달 21일 당 최고위원회에 나와 "최근 정권 흐름의 핵심은, 국지전과 북풍(北風)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작전'이라는 게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탄핵 국면에 대비한 '계엄령 빌드업 불장난'을 포기하기 바란다. 계엄령 준비 시도를 반드시 무산시킬 것이니 꿈도 꾸지 말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으로 논란이 커지자 이틀 뒤 S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한 김 최고위원은 "'계엄령 의혹설'의 근거가 있느냐는 김태현 변호사의 질문에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더 말씀을 드릴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강성 지지층 위해 근거 없는 괴담 유포"
김 최고위윈의 발언은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을 교체하고 반국가 세력 발언을 한 데 따른 것으로, 당시 대통령실은 "야당이 과반 의석 이상이면 언제든 계엄 해제가 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계엄 준비를 운운하고 있다. 혹시 야당이 그런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정 대변인은 "총선 전에 계엄 저지선을 달라고 선거운동을 하더니 지금은 과반 의석을 얻고도 계엄 괴담에 기대서 정치를 하고 있다"며 "문제는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말하겠다' 이런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도대체 국가안보를 볼모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해서 얻으려는 정치적 이익은 무엇이냐"며 "음모론 뒤에 숨어서 괴담 선동만 하지 말고 근거를 제시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면서 "광우병, 사드, 후쿠시마에 이어서 이제는 독도 지우기, 계엄령 준비설까지 야당은 괴담이 아니고선 존재 이유가 없는 거냐"며 "강성 지지층을 위해서 근거 없는 괴담 선동을 했다면 이 또한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대통령실 "계엄령 선포설은 거짓 정치 공세"
정 대변인의 지적처럼 민주당은 과거부터 '아니면 말고식 괴담 유포의 진원지'로 꼽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주당은 일개 웹툰 만화가의 주장을 시발로,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박근혜 정부 땐 "사드가 배치되면 전자파 참외를 먹게 된다"는 황당무계한 괴담을 유포하며 대여공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사태 때도 국내외 대다수 전문가들이 "방류된 오염처리수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강조했지만, 민주당은 '방사능 밥상'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생활 밀접형 괴담'으로 국민의 불안감을 조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 대표가 '여야 총수 회동' 전 모두발언에서 '계엄령 선포설'을 꺼낸 것에 대해 "하지도 않고 이뤄질 수도 없는 계엄령을 주장하는 것은 거짓 정치 공세"라고 반발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에서 선포해도 국회에서 2분의 1 이상이면 바로 해제된다"며 "지금의 국회 구조를 볼 때 만일 선포해도 바로 해제될 것이 뻔한 데, 엄청난 비난과 역풍을 감수하고 계엄령을 왜 선포하겠느냐. 상식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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