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기술의 효성' 일군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

profile
박지후대세

'기술의 효성' 일군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

n.news.naver.com

'공대 교수' 꿈꾸다 창업주 부름 받고 1966년 효성 입사…2017년 경영서 물러나
공학도 출신 '기술 경영' 철학 강조…국내 첫 민간연구소 설립

원본보기

지난 2013년 열린 제45회 한·일 경제인회의 공동성명 기자회견에서 한국 측 단장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뉴스1) 김종윤 기자 = 재계 31위 효성그룹의 2세인 조석래 명예회장이 29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1966년 입사해 201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50년 넘게 효성을 일구며 글로벌 수출기업으로 키운 주역이다. 전통 공학도 출신 답게 '기술 경영'을 앞세워 글로벌 1위 스판덱스뿐 아니라 타이어코드와 탄소섬유 개발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효성그룹은 조석래 명예회장이 이날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35년 11월 경남 함안에서 조홍제 회장과 하정옥 여사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공대 교수' 꿈을 위해 경기고 재학 중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히비야 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대 이공학부를 졸업했다.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원에서도 공부한 정통 공학도다. 유학 시절 습득한 영어와 일본어는 회장 시절 글로벌 기업들과 교류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30대에 접어든 1966년 부친의 부름에 따라 기업인으로 변신을 결정하고 효성그룹에 입사했다. 당시 동양나이론 건설본부장으로 울산공장 건설을 진두지휘하는 등 경험을 쌓아갔다. 1970년 효성그룹의 주력사인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사장을 필두로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 등 주력 계열사 경영에 참여했다. 부친 별세 2년 전인 1982년 회장에 취임하고 본격적으로 회사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2017년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35년 동안 그룹을 이끌었다.

고인은 공학도의 꼼꼼함으로 현장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직원들이 현장 중심 경영을 펼치는 조 회장을 '조 대리'로 부른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특히 엔지니어 출신답게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71년 국내 최초의 민간기업 연구소인 '동양나일론 기술연구소'를 세워 한국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고인을 재계를 대표하는 '기술 중시' 경영인으로 부르는 이유다.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스판덱스 탄생은 조 회장의 철학인 '기술 경영'에서 출발한다. 스판덱스는 신축성을 바탕으로 '섬유의 반도체'로 불리는 고부가가치 섬유다.

고인은 지속적인 투자와 공급망 확대, 품질 개선,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고객 중심의 마케팅에 집중했다. 그 결과 독자 기술을 앞세워 미국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압도적인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산업 다방면에서 탄소섬유와 폴리케톤 등 신기술 개발을 선도했다.

그룹이 위기에 빠지자 냉철한 경영자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1983년 오일쇼크 당시 실적 위기에 빠지자 24개 계열사를 8개로 대폭 정리하는 그룹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1만 6000여명의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결단이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효성 회장, 차남 조현문 미국 변호사, 3남 조현상 효성 부회장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회사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