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께서 꼭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틀 뒤인 1월 19일 두 사람의 만남이 전격 성사됐다. 윤 후보가 18일 홍 후보에게 만찬을 제안했고, 홍 후보가 주말 지역 일정을 언급하며 19일로 정해졌다.
윤 후보가 말했다.
“형님, 형님께서 꼭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홍 의원이 답했다.
“내가 정치 27년 하면서 대통령 빼고는 할 거 다 해봤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통령 하려고 했던 사람인데, 나에겐 하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
홍 의원은 회동 직후 온라인 플랫폼 ‘청년의 꿈’ 홈페이지에 윤 후보와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 홍 의원은 “두 시간 반 동안 윤 후보와 만찬을 하면서 두 가지를 요청했다”며 “첫째, 국정 운영 능력을 담보할 만한 조치를 취해 국민 불안을 해소해줬으면 좋겠다. 둘째, 처가 비리는 엄단하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두 가지만 해소되면 중앙선대위(현 선대본부) 상임고문으로 선거팀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 관점에서 홍 의원이 요청한 두 가지는 사실상 해소된 문제라 판단했을 것이다.
우선 첫 번째 요구인 국정 운영 능력을 담보할 만한 조치는 결국 국민이 신뢰하는 사람을 쓰라는 것인데 이미 윤 후보는 진영 관계없이 인재를 발탁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과거 논란이 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는 발언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전문가를 등용해 시스템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두 번째 요구인 처가 비리 엄단 선언도 “누구든지 수사와 재판에 예외가 없어야 한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윤 후보는 홍 의원과의 만찬 당시 ‘당선되면 태종 이방원처럼 처가 비리를 잘라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만찬 분위기는 좋았다.
전략공천 둘러싼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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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5일 국회 국민의힘 회의실에서 ‘공천관리위원회’ 회의가 열린 가운데 권영세 3·9 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그런데 바로 다음 날(1월 20일) 오전 ‘CBS 노컷뉴스’는 [단독]“홍준표, 윤석열에 최재형 전 감사원장 종로 공천 요구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홍 의원이 두 가지 요구에 더해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다섯 곳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지역 중 서울 종로와 대구 중·남에 자신의 대선 경선을 도왔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이진훈 전 대구 수성구청장의 전략공천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당장 당 회의에서 “당 지도자급 인사라면 대선 국면이라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마땅히 지도자로서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며 “구태를 보인다면 지도자로서의 자격은커녕 우리 당원으로서의 자격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홍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권 본부장은 합리적・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는 ‘전략공천’은 정권 교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봤다. 과거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체득한 경험이다.
권 본부장이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를 보면 그가 왜 홍 의원을 지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사무총장직을 맡았습니다. 당연히 공천심사에도 참여했죠. 당시 박근혜 비대위는 처음으로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에 변화를 줬습니다. 기존에는 정치인들이 다수였는데, 당시는 비정치인 수가 더 많았죠. 공천이 굉장히 전문적인 분야인데, 잘 모르는 분들이 하시니까 제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공심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친박 진영에서는 지역구에서 인기 높은 친이 진영 현역 의원들을 무조건 낙천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했습니다. 국민이 얼마나 현명하십니까. 그렇게 하면 당연히 역풍이 불지 않겠습니까. 제가 설득해서 막았지요.”
권 본부장의 ‘지도자로서 걸맞은 행동’ 발언 이후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들의 휴대전화는 불이 났다. 이철규 의원은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홍 의원은 20일 언론 인터뷰에서 “갈등을 수습해야 할 사람이 갈등을 증폭시킨다”며 “그런 사람이 이끌어서 대선이 되겠나”라고 했다. 이 발언은 권영세 본부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홍 의원은 “만약 이견이 있다면 내부적으로 의논해서 정리를 했어야지, 어떻게 후보하고 이야기한 내용을 가지고 나를 비난하나”라며 “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고 했다.
1월 21일에는 오전에만 네 개의 글을 잇달아 올리며 윤 후보 측근 그룹을 강하게 비판했다. 홍 의원은 “문제의 본질은 국정 운영 능력 보완 요청과 처가 비리 엄단 요구에 불쾌감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인데, 공천 추천을 꼬투리 삼아 ‘윤핵관(윤석열 후보 핵심 관계자)’을 앞세워 나를 구태 정치인으로 모는 건 참으로 가증스럽다”(7시35분), “아무리 정치판이 막가는 판이 되었다고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 당내 현안을 논의한 것을 공천 요구 구태로 까발리고 모략하면 앞으로 어떻게 국정을 논의할 수 있겠느냐”(9시24분), “숨겨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10시34분), “다른 건 몰라도 합의 결렬의 원인에 대해선 바로잡아야 한다. 모함 정치를 해선 안 된다”(11시15분)며 격앙된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여권과 일부 언론에서 ‘윤석열 홍준표 원팀은 끝났다’는 내용의 주장과 기사가 나왔다.
홍준표와 이철규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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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국민의힘 의원. 사진=조선DB |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이런 상태로 설 연휴를 보내면 두 사람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캠프의 핵심이면서도 홍 의원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이철규 의원이 나섰다. 이 의원은 홍 의원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이 의원은 경찰 출신이다. 2011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였던 홍준표 의원은 검경(檢警) 수사권 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경찰에 힘을 실어줬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당시 홍 의원은 경찰의 수사 개시 진행권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형사법개정안 통과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당시 홍 의원에게 상당히 고마웠다고 한다.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강원 동해·삼척 지역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 의원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 입당했다. 그러고 지난 2017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선 후보였던 홍 의원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2011년 진 신세를 갚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 정치권 관계자의 이야기다.
“2017년 5월 홍 의원이 강원 동해 거점 유세를 왔는데, 이 의원이 사람을 엄청 많이 모았다. 전국에서 가장 큰 현수막도 걸었다. 홍 의원도 신이 나서 선거 유세를 했다.”
홍 의원은 5월 5일 유세를 마치고 서울로 들어가는 길에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썼다.
“오늘은 강릉, 속초, 인제를 거쳐 서울로 들어간다. 어젯밤 동해, 삼척 시민들의 뜨거운 환영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경선 때도 홍 의원은 이 의원에게 몇 번씩이나 러브콜을 보냈다.
“거 살살 좀 해라. 전국 대부분 지역이 나한테 넘어왔는데, 강원도 느그들만(너희만) 안 넘어오고 있어.”
그때마다 이 의원은 “살살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대표님 인기 높아진다고 윤 후보 돕다가 그쪽으로 가면 제가 뭐가 됩니까. 대표님이 경선에서 승리하면 그때 몇 배로 도와드릴 테니 전 지금은 윤 후보 승리만을 위해 일하겠습니다”라며 거절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윤석열 캠프도 홍 의원의 합류를 위해 내심 이 의원이 나서기를 바랐다.
“홍 대표님 많이 서운하셨죠?”
이 의원은 홍 의원이 대구 선대위 고문을 맡고 난 후 몇 번 홍 의원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홍 의원이 일정 때문에 사무실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윤-홍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 국회 의원회관 엘리베이터 앞에서 홍 의원을 만났다.
“대표님 많이 서운하셨죠?”
주변에 사람이 많았지만, 이 의원은 큰 소리로 홍 의원을 향해 이야기했다.
“사람이 많을 때 이야기해야 홍 의원이 답을 해주실 것 같았다”는 게 이 의원의 말이다.
홍 의원이 이야기했다.
“네.”
원래 이 의원에게 반말하던 홍 의원이었다. 서운함이 가시지 않았음을 직감한 이 의원은 “대표님 저 차 한 잔 주시죠”라고 했다. 홍 의원은 또 “네”라고 했다. 이 의원이 계속 도와달라고 하니, 마음이 조금은 풀어진 듯 홍 의원이 입을 열었다.
“내가 얼마나 더 도와줘야 하노.”
이 의원은 홍 의원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지인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다가는 홍 의원님의 정치적 미래도 불투명해진다. ‘미래’를 꿈꾸려면 지금은 윤석열 등에 올라타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 윤 후보가 승리해야 홍 의원과 그 측근들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지금, 공천 요구 때문에 홍 의원님을 지지하는 20~30대 여론도 악화하고 있지 않으냐.”
홍 후보 측에서 답이 왔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이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였다. 당의 몇몇 의원이 권 본부장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권 본부장은 자신이 전혀 틀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사과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홍 의원은 급기야 1월 23일, 자신의 커뮤니티 플랫폼 ‘청년의 꿈’ 질의응답 코너 ‘청문홍답’(청년이 묻고 홍준표가 답하다)에서 “이제 윤석열과 인연을 끊으셔야 한다”는 한 네티즌 게시글에 “권영세 말대로 출당이나 시켜주면 맘이라도 편하겠네요”라고 썼다.
몇몇 의원이 권 본부장에게 “홍 의원도 윤 후보를 돕고 싶어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직접적인 사과는 아니더라도, 홍 의원에게 들어올 명분 정도는 만들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권 본부장도 대의를 위해 한발 물러섰다.
출당 거론 글에 대해 “우리 홍 의원님은 현명한 분”이라고 한 것이다.
“홍 선배는 당의 큰 어른이자 큰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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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용 실장. 사진=조선DB |
권영세 본부장은 “홍 선배가 당의 큰 어른이자 큰 정치인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내가 앞서 조금 과한 표현을 썼는데 홍 선배가 이를 뛰어넘어 원팀으로 도와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들은 홍 의원 측에 이 정도면 권 본부장도 한발 물러선 것이라며 이제 홍 의원이 결단할 차례라고 했다.
홍 의원은 설 연휴 직전인 1월 24일 즈음 김기현 원내대표와 이철규 의원을 각각 따로 만났다.
홍 의원은 이 의원에게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후보 지시가?”
자신이 윤 후보와 공천 거래를 했다며, 구태 정치인으로 몰아붙이는 게 후보의 생각이냐는 질문이었다.
“후보가, 대표님을 검찰, 정치 선배로서 얼마나 좋아합니까. 대표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후보가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입니다. 대표님도 진정성 느끼시지 않았습니까.”
“그럼 윤핵관 판단이가?”
홍 의원이 물었다.
이 의원이 답했다.
“대표님,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다만 우리 대장을 누가 공격하면 측근이라는 사람들은 반격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홍준표 핵심 참모들 윤 캠프 참여
1월 28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대구 중·남구를 무공천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지역구에 전략공천을 제안했던 홍준표 의원의 체면을 살리고 선대본부 합류의 명분을 만들어줬다는 분석이 나왔다. 홍 의원은 설 연휴가 시작된 1월 2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정권 교체의 대의를 위해 지난번 윤 후보와 회동할 때 참여하기로 약속한 선대본부 상임고문직을 수락한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더 이상 무도한 정권이 계속돼 대한민국을 농단하지 않도록 윤 후보가 요청하는 대선 자문에 적극 응하도록 하겠다”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간 오해를 풀기 위해 실무 협의에 나서준 윤 후보 측 이철규 의원과 우리 측 안병용 실장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큰 어른 점잖다고
함부로 갖고 놀면??
정도를 걷고
진심으로
잘 하시오.
대장을 공격하는 사람이 있으면 측근들은 반격하는 게 당연하다고?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공천거래'라고 누명 씌운건가?
권영세 야비함을 다시보는군~~
권북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