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역사관련 글을 연재해봅니다.
어떤 위인을 주제로 삼을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존경하는 위인을 뽑으면 늘 최상위권에 포진해있는 사람중 한명이죠.
"충무공 이순신"
충무공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에 대해서 차례로 연재를 해보려합니다.
필자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꿈붕이 일뿐, 역사전공이 아니므로 중간중간 고증 오류가 있을 수 있는점 양해 부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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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신명이시여... 이기게 해주소서, 적을 무찌른다면... 저 노을을 따라 오늘 죽는다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 KBS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1597년 음력 9월 16일 ‘명량’ 에서 이순신은 단 13척의 함선으로 적 함대 133척을 격파하는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날 전투에서 일본 함선 30척 이상이 침몰했지만 조선 수군은 단 1척의 전선도 잃지 않은 채 병력을 고스란히 유지했습니다.
이순신에게 막힌 일본 수군은 서해로 진입할 수 없었고 조선은 수군을 재건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 에잉... 이순신이 백성들 사이에서 민심을 꽉 쥐고있으니.. 필히 훗날 나의 권력에 도전할것이야!!
그래두 포상은 내려줘야지 "
하지만 선조는 이순신의 공을 애 써 깎아내리면서 작은 승리 포상으로 은 스무 냥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명나라 경리 양호는 이순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선물로 백금과 붉은 비단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선조는 이순신이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그런 선물을 보내니 민망하다고 말했습니다. (ㅂㄷㅂㄷ 마땅히 할일좀 하게 냅두지 ㅡㅡ)
명량에서 승리한 이순신은 적이 다시 공격해 올 것을 걱정해 당사도로 물러났고 위도를 거쳐 9월 21일에는 고군산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자료를 찾아도 없어서 화질이 구린점 양해바람)
이곳에서 이순신은 해로통행첩 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 첩을 갖고있지 않은 배들을 간첩으로 간주 하고 통행을 막았습니다.
(왜 일까? 칠천향 해전의 영향으로 조선수군의 재건을 위해 만듦)
이순신은 배에 첩을 발행해주는 조건으로 쌀을 받았는데 배를 탄사람들이 몰려와 첩을 받아 가자 열흘 만에 군량미 1만여 석을 확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칠천량에서의 패전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장수들도 함대를 이끌고 수군과 합류하면서 조선 수군은 이전의 군세를 거의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날 밤
10월 14일 이순신은 새벽에 꿈을 꿨는데 이순신의 아들 면이 나타나 그를 끌어안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순신은 그의 막내아들이 죽었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일본군이 명량해전에서의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이순신의 고향 아산을 공격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순신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난중일기 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대신 죽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아들이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 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너에게 미친 것이냐.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남은 채 울부짖을 뿐이다.“
이때 일본 수군이 명량에서 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보급 문제를 걱정한 일본군은 남쪽으로 퇴각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선은 다시 한번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왜냐? 이때 일본군은 전라도를 거쳐 한양을 노리고 있었지만, 우리 킹순신 갓군님께서 일본 해군을 패퇴시키면서, 일본 육군의 보급이 힘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곧 겨울이 오기 때문에 일본 육군은 다시 부산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었죠.)
(진짜... 표정 킹받네...)
얼마 후 명나라가 보낸 원군이 조선 에 도착했는데 이 중에는 이순신의 수군을 지원하러 온 수병도독 진린도 있었습니다.
류성룡은 진린에 대해 이렇게 기록 했습니다.
“성격이 포악하여 모두들 그를 두려워 하였다.
내가 진린의 병사들을 보니 수령 들을 거리낌 없이 때리고 욕보였으며 찰방 이상규의 목에 밧줄을 매어서 끌고 다니니 피가 얼굴 가득
흘렀다.
통역관을 시켜서 이상규를 풀어 주라고 타일렀지만 듣지 않았다.
내가 대신들에게 이순신과 같은 부대에 있게 되면 사사건건 그의 발목을 잡고 충돌하여 반드시 이순신의 장수 권한을 빼앗고 우리 병사
들을 멋대로 괴롭힐 터인데 우리 군대가 어찌 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
라고하자 모두 류성룡의 말이 맞다고 하고 는 한탄하였습니다. 강직한 이순신이 진린의 심기를 건드릴 거라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대신들이 걱정 했던 것만큼 융통성이 없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원리 원칙을 중요시 하시는데, 유연성도 굿이었던 우리 충무공 ㅜ)
진린이 배를 타고 도착하자 이순신 은 미리 사냥해서 잡은 짐승의 고기와 해산물로 성대한 술잔치를 베 풀었고 이순신의 환대를 받은 진린과 그의 부하들은 이순신이 과연 좋은 장수라며 칭찬했습니다.
(과거에도 고기파티가 최고였나봄 ㅋㅋ)
이후에 이순신은 근처에 침범한 적의 배를 공격해 머리 40개를 벴는데 이를 모두 진린에게 양보해서 그의 공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크게 감동한 진린은 이순신을 신뢰 하게 되었고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이순신과 상의해 결정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진린은 자신이 탄 가마가 이순신의 가마보다 앞서나가는 일이 없도록 했습니다.)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이순신은 진린에게 조선의 군대 와 명나라의 군대의 구분을 없애자고 제안했고 명나라 병사라고 하더라도 잘못을 저지르거나 백성
을 괴롭혔다면 잡아 와 곤장을 때 렸습니다.
이렇게 이순신이 조선군과 명나라 군의 구분 없이 엄격하게 군율을 세우자 군 전체에 기강이 잡혔습니다.
진린은 이순신에 대해 천하를 운영 할 만한 재주와 국난을 극복할 만한 공이 있다고 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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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계속.
다시 봐도 대단한 장군이네요...
유익추
ㅊㅊ
이제 보스몹인 전기기사 어떰
기계과라 기계정비나
공조냉동, 위험물,가스, 산업안전 생각중
노량해전으로 포빨이 하누 ㅅㅌㅊ
엌ㅋㅋㅋ 포빨이라니
선추 ㅅㅋㄹ
감사합니다 ㅎㅎ
이순신 장군님이 서해 바다를 장악해서 일본군 물자보급 끊은 거는 진심 좋았음 안그랬으면 가토,고니시등이 날뛰었을 것임 식량이 보급안되서 지들끼리 죽여서 인육먹고 했던데 ㅎㄷㄷ 암튼 엄청난 위인임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욥 ㅎㅎ
굿굿!!
감사합니당
이순신 장군님의 유연한 성품을 잘 봤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주뒤에 올리겠습니다 ㅎㅎ
ㅋㄹㅊ
감사합니다
무야홍
무야홍
홍~.~
잘썼는데 충무공아조씨 재밌는게 "진린은 탐욕스럽고 조선수군을 방해한다. 그러나 진린이 알면안되니 전투보고서 두장씩 써서 올리겠다. 하나는 명군 눈속임용, 하나는 진짜"라면서 처세술 잘하심. 그러다보니 진린이 이순신보고 "어르신"이라고 높여부름. 실제로 진린이 황제한테 이순신 명나라로 부르면 이순신이 여진 다 때려잡을거라고 보고 했음. 그러자 명 황제 충무공한테 대명 수군도독 이란 벼슬줌. 영의정보다 높은 벼슬.
그리고 류성룡도 웃긴사람인게 "조선은 전쟁에서 질것이다. 이순신이 진린같은 사람을 가만 놔두겠냐" 라고 말함
역잘알 ㅇㅈ
잘 읽었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댓글 보니깐 급 정주행 하고싶다
음??? 정주행 ㄱㄱ 하자 ㅋㅋ
꼭 할꺼임 근뎁 지금은 졸려서 자야함
ㅋㅋㅋㅋ 잘자고 일어나 ㅋㅋㅋ
ㅎㄴㅇ
근데 13척이에요? 저는 12척으로 알고 있는데..
기록에 따라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