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가니 생기부(생활기록부)에 쓸 진로를 빨리 정해 이렇게 돼 버렸어요. 내가 뭘 경험해 봤지? 내가 알고 있는 게 뭐가 있는데?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답답했죠."
이화여대 1학년인 김해인 양은 3년 전 고등학교 시절을 이렇게 떠올렸다. 코로나19로 중학교 시기를 온라인 수업으로 대신했던 김 양에게 고등학교 환경은 낯설기만 했다.
그는 "진로 결정하고 입시 준비하고 또 공부하고. 사람을 안 만나다가 갑자기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라고 말했다.
공립형 대안학교인 오디세이 학교에서 보낸 고1 생활은 '내일의 내 일'을 찾는 연속이었다. 이때 만난 시립청소년미래진로센터(하자센터)는 김 양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작업장'이 됐다.그는 "이런 작업을 하고 이런 장비가 있고 이런 공간이 있으니 내가 뭔가를 더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와 밴드 동아리만 벌써 4년째. '유서 쓰기', '아무튼 시리즈', '봄, 여름, 가을, 겨울' 등등 자유롭게 글과 생각을 공유하고 베이스와 드럼으로 교감하면서 '세상 속의 나'를 깨닫게 됐다.
김 양은 "하자에 오는 걸 '작당을 한다'고 한다. 다같이 무슨 일을 벌여볼 수 있다는 생각, 그 자체로 너무 재밌다"고 전했다.
시립청소년미래진로센터는 만 9~24세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개척할 수 있도록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서울시립 특화 시설이다. 현재는 서울시에서 위탁받아 연세대학교가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 이용자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 2021년 9만 8121명에서 2022년 26만 9044명, 2023년 30만 8321명으로, 최근 2년간 3배가 급증했다.
하자센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미래진로 작업장'이다. 가수와 뮤지션으로 변신해 앨범 제작까지 가능한 '음악작업장', '어려서, 달라서, 없어서' 문제아가 된 아이들의 고민을 털어놓는 '문제없는 스튜디오', 시각예술 창작자들의 공유 작업실인 '청소년 아트 플랫폼'까지. 각 작업장의 멤버로 3개월 이상 활동하면서 여러 공방을 체험한다.
기술을 배우고 나만의 창작물을 만드는 워크숍과 원데이 클래스도 풍성하다. 유명 크리에이터를 만나 제작 기술을 전수받는 '청소년 크리에이터 아카데미', 문화예술 전문가와 함께 창의적 경험을 쌓아가는 '진로탐색 오픈 클래스', 가상세계와 창작물의 결합인 'VR(가상현실) 오픈 클래스' 등이 있다.
이처럼 실험과 실패가 허용되고, '다름'이 존중되는 하자센터에선 걸출한 유명 인사들도 탄생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문지원 작가는 1기 졸업생이다. 청소년기 방황을 거쳐 하자센터에서 영상 제작을 공부한 오윤동 감독은 공연 실황 영화의 최고 전문가로 성장했다.
하자센터 이충한 기획부장은 "학교 밖 청소년뿐만 아니라 대학을 갔지만 휴학을 오래 하거나 자퇴한 학생들도 많이 온다"면서 "진로에 대한 다양성과 포용력을 넓혀주는, 수요자 맞춤형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는 여름방학을 맞아 하자센터 등 19개 시립청소년시설에서 '청소년 동행캠프'를 운영한다.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2주간 일정으로, 4학년 이상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대상이다. 청소년의 관심사에 맞춰 ▲미래과학 ▲환경생태 ▲진로탐색 ▲역사문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워터파크, 여름캠프 등 체험 기회도 마련된다. 접수는 유스내비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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