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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지금 필요한 건 뭐? 니드 포 스피드!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음속 넘어 극초음속으로 내달리는 인류

공공질서 위해 어디 불나게 달릴 때다

 

<제트기의 출현>

 

인류의 속력(速力)에 대한 집착은 크다. 흔히 우리 한국인들 보고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빨리빨리 민족’ 식으로 일컬으나 속도를 향한 집념은 만국공통(万國共通)이다. 그리고 먼 훗날 인류가 광속(光速)을 정복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속력의 결정체는 음속(音速)이다.

 

인터넷‧휴대전화‧위성항법장치(GPS)‧전자레인지 기타 등등 대다수 문명의 이기(利器)가 다 그렇듯 음속 정복도 가장 절실한 수요의 현장, 즉 전쟁을 통해 이뤄졌다.

 

음속을 내기 위한 최적의 공간은 저항력(抵抗力)이 바다‧육지에 비해 덜한 공중이다. 때문에 20세기 들어 인류는 최상의 항공엔진 개발을 위해 매진했다. 복엽기(複葉機) 등 기존의 프로펠러 엔진으로는 음속을 낼 수 없을뿐더러 그 시절 목조(木造) 동체로는 공중분해되기 십상이었다. 공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의 엔진 즉 제트엔진(Jet engine) 및 합금(合金) 개발에 사활 걸었다.

 

2014년 8월26일자 국방일보 보도 등에 의하면 최초로 하늘을 비행한 제트기는 나치(Nazi) 집권시기 독일 항공회사 하인켈(Heinkel Flugzeugwerke)에 의해 선보였다. 주인공은 최고속도 시속 약 700㎞의 He-178. 천둥 같은 굉음, 순식간에 사라진 기체 등 1939년 8월 이 신예(新銳)의 시험비행 참관한 루프트바페(Luftwaffe‧나치공군) 관계자들 반응이 어떠했을지는 안 봐도 선하다.

 

사상 최초로 실전(實戰)에 동원돼 장기비행한 제트기는 마찬가지로 나치독일 시기 업체 메서슈미트(Messerschmitt AG)가 만든 Me-262다. 1939년 나치 공군성 발주(發注)로 개발에 착수해 1941년 첫 시제기(試製機)가 나온 Me-262는, 국제사회로선 참으로 다행이게도, 제2차 세계대전 말엽인 1944년에야 유럽전선에 투입됐다.

 

연합국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당시 촬영돼 현재 유튜브에서 공개 중인 흑백영상의 미국 육군항공대 B-17 전략폭격기 승무원들 대화에서 그 쇼크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B-17에 근접한 Me-262가 위력시위라도 하듯 쏜살같이 지나가자 B-17 기장(機長)은 “저거 뭐야? 저게 뭐냐고(What was that? What the he** was that?!)” 귀신 본 것 마냥 혼자 다급히 중얼거렸다.

 

Me-262 최고속도는 시속 약 870㎞에 달했다. B-17은 시속 420여㎞에 불과했다. 미 육군항공대 주력기 P-51의 시속 700여㎞보다도 약 170㎞ 더 빨랐다.

 

공대공미사일 등장 이전이라 전투기끼리 엉켜 벌이는 개싸움(Dogfight)이 일상이었던 당시 이러한 속도 차의 체감효과는 더더욱 컸다. Me-262는 난전(亂戰) 중 어느샌가 연합국 전투기 뒤를 잡고서 30㎜ 기관포를 난사했다. Me-262의 연비(燃費) 등이 썩 좋지 않았음에도 연합국 기체 상당수는 추풍낙엽(秋風落葉)이었다.

 

<음속기의 출현>

 

나치 기술력에 자극 받은 미국은 냉전(冷戰)을 맞아 본격적인 음속기 개발에 착수했다. 인류 최초로 항공기가 소닉붐(Sonic boom‧음속 돌파 시의 충격파) 일으키며 마하 1(시속 약 1060~1224㎞) 속도로 창공(蒼空)을 수평으로 가른 때는 1947년 10월이었다.

 

주인공은 미 공군(육군항공대 후신) 실험기 X-1과 테스트파일럿 척 예거(Charles Yeager‧생몰연도 1923~2020)였다. 참고로 예거는 고졸‧사병에서 장교까지 돼 제2차 세계대전 에이스로 활약한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이다. 테스트파일럿은 오늘날엔 다년간의 무사고 조종경력, 박사학위까지 필요할 정도의 최정예 조종사로 꼽힌다.

 

예거가 탄 X-1은 1947년 10월14일 캘리포니아 모하비(Mojave) 사막에서 B-29 폭격기에 실려 약 13.7㎞ 고도까지 올라간 뒤 마하 1.06 속도로 비행했다. 엔진의 폭음(爆音)은 예거의 X-1이 지나간 뒤에야 지상에 전달됐다. 시험비행은 멋지게 성공했으며 인류는 비로소 “사람이 소리 전파속도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점을, “음속으로 날아도 안전하다”는 점을 목격했다.

 

제트기 간의 첫 공중전은 6‧25에서 벌어졌다. 1950년 6월25일 새벽 3‧8선 넘어 남한을 기습한 북한은 소련이 기체만 제공하거나 기체‧조종사 통째로 넘긴 MiG-15를 운용했다. 소련 장교들은 참전(參戰)을 숨기기 위해 중공군(中共軍) 복장을 했으나 서구인 특유의 체격으로 금세 들통났다고 한다. 미그 설계국이 만든 Mig-15, 미 공군이 맞투입한 P-80은 모두 아음속(亞音速)이었다.

 

음속기 간 첫 대규모 교전은 월남전에서 이뤄졌다. 미 해·공군은 최대속도 마하 2.3의 F-4 등을, 월맹(越盟)은 아슬아슬하게 마하 1에 닿을락말락하는 소련산 MiG-17 등을 굴렸다. 우리에게는 불운하게도 교환비(交換比‧피아가 격추하는 비율)는 기대이하였다. 미 행정부‧민간업체 등이 미사일만능주의라는 오판(誤判) 하에 일부 F-4 기종에서 기총(機銃)을 떼버린 탓이었다. 미사일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공중전에서의 기총 비중이 확 줄어드는 건 월남전 이후다.

 

전장(戰場)에서 탄생한 음속 기술은 민간으로까지 확대됐다. 프랑스‧영국의 합작여객기 콩코드(Concorde)와 구(舊)소련 투폴레프(Tupolev) 설계국의 민항기 Tu-144가 그것이다. 둘의 최고속도는 각각 마하 2.04, 마하 2.15였다. 다만 도심상공 비행 시 소닉붐에 따른 민원이 빗발침에 따라 콩코드는 2003년, Tu-144는 1983년에 각각 운행종료됐다. 서울에어쇼 등에 가보셨거나 공군에서 복무한 분은 아시겠지만 소닉붐 소리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극초음속의 출현>

 

21세기 들어선 극초음속(Hypersonic) 비행체 연구가 활발하다. 2000년대 초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발사한 무인(無人)실험기 X-43 최고속도는 ‘마하 10(시속 약 1만1000㎞)’이었다. 유사시 핵탄두 싣고 한반도 및 근해(近海)를 직격할 러시아의 공대지 극초음속 미사일 Kh-47M2,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DF(東風)-17 등도 음속의 10배에 달한다. 이 정도 속도면 인체가 버틸 수 없기에 유인(有人)은 불가능하다. 반면 요격이 매우 어렵게 된다.

 

인류의 속도를 향한 집념은 무섭다. 심지어 아무 동력기구 없이 맨몸으로 음속을 돌파한 사례도 있다. X-1 초도(初度)비행으로부터 약 65년 뒤인 2012년 10월, 익스트림스포츠(ES) 전문가 펠릭스 바움가트너(Felix Baumgartner)는 성층권(成層圈)인 38㎞ 높이에서 뛰어내려 최고 낙하속도 마하 1.24를 기록했다. 바움가트너는 한 때 중심 잃고서 그대로 내리 꽂혔으나 기적적으로 자세가 안정돼 생환(生還)했다.

 

정치권이 어지럽다. 경제‧사회는 급속도로 악화되는데 정계만 유독 지렁이 속도다. 아무리 특정세력에 의해 난세(亂世)라 해도 반대쪽이 그걸 속 시원히 못 치우면 민심(民心)의 원망은 후자(後者)에게로 더 크게 향한다. 그리고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똑같은 놈들” 판단 서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라도 잘 살자” 식으로 돈퍼주기‧포퓰리즘 세력 쪽으로 마음 기울기 십상이다.

 

인류가 속도에 집착한 것도 그것이 필승(必勝)조건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속도조절에 나서야 할 때도, 부적절할 때 급발진했다가 패가망신한 경우도 있다. 가령 비유하자면 미군 신형수송기인 V-22 오스프리(Osprey)처럼 말이다.

 

V-22는 때로는 헬기처럼 좁은 공간에서 수직이착륙 할 수 있고 때로는 프로펠러 항공기처럼 빠르게 비행할 수 있는 틸트로터(Tiltrotor) 방식이다. 속도는 시속 500여㎞다. 그러나 미군은 AH-64 아파치(Apache) 등 V-22를 호위할 헬기들 속도를 미처 생각지 못해 V-22 개발에 헛돈만 쓴 셈이 됐다. AH-64 속도는 시속 200~300㎞에 불과하다. 병력수송이 주임무인 V-22는 경무장이다.

 

분명한 건 지금은 극초음속으로 달릴 때라는 점이다. 이미 대규모 개발특혜 사건 핵심 의혹 인물 구속이 실패한 바 있다. 많은 국민은 실망을 넘어 상술한 대로 “역시 법 지키는 놈이 손해야” 오판으로 기울 수 있다. 북한은 하루가 멀다하고 핵을 찍어내고 있다. 책임자들은 세상에 아직 질서가 살아 있음을 보여야 한다. 해당 의혹 인물에 대한 12월 구속기소 시도설(說)이 풍문(風聞)은 아니길 바란다. 순수히 공공이익 염려하는 마음에 써본 개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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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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