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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후궁한테 깔려죽은 황제

오주한

아무리 ‘백’ 든든해도 실언 하나면 도로아미타불

김태우 “40억 애교” 파문…공복 본분 자각해야

 

말 한마디의 법칙

 

20년 가까이 필자는 때로는 언론사 정치부로서, 때로는 필봉(筆鋒) 내려놓고 자연인(自然人)으로서 지방선거‧총선은 물론 대선까지 깊숙이 지켜보거나 관여해왔다.

 

정계 여러 원로(元老)들에 비하면 아직 하룻강아지이지만, 때문인지 어느 정도 흐름을 보면 “이겼구나” 또는 “졌구나” 감이 온다. 특히 몇몇 망언(妄言)이 나오면 직감은 분명해진다.

 

물론 여의도연구원식(式) 데이터선거도 중요하지만,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 즉 사람의 마음(人心)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망발은 소리소문 없이 퍼지기 마련이다. 이는 바로 1초 전까지만 해도 “욕해도 A정당 찍어야지” 생각했던 사람을 변심(變心)케 하거나 군중심리에 휩쓸리게끔 한다.

 

역사상으로도 ‘단 한마디’가 정치인‧정치집단의 운명을 좌우한 사례는 많다.

 

△막수유(莫須有‧혹 죄가 있을지도 모르지)의 진회(秦檜) △하불식육미(何不食肉糜‧쌀이 없으면 고기 먹어라)의 사마충(司馬衷) △진위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범의 딸을 어찌 개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나”의 관우(關羽) △“60대 이상 70대는 곧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니 투표 안 해도 괜찮다”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은 앞선 칼럼에서 다뤘으니, 늘 그랬듯, 오늘은 새로운 사례를 살펴보려 한다.

 

인복 터진 황제

 

효무제(孝武帝) 사마요(司馬曜‧생몰연도 서기 362~396)는 동진(東晉)의 9대 황제다. 생몰시기에서도 보듯 그는 불과 34세에 요절(夭折)한 젊은 임금이다. 즉위도 불과 10살에 했다. 태후(太后)의 섭정(攝政) 거친 사마요는 14살 때부터 비로소 친정(親政)하기 시작했다.

 

사마요는 여러모로 사람 복을 타고났다. 직접 내외 공문서 결재하려 폼 잡자마자 환온(桓溫)이란 권신(權臣)이 찬탈을 꾀했고, 이를 주변이 막아준 것이었다.

 

환온은 저족(氐族)의 나라 성한(成漢)을 정복하는 등 많은 군공 세운 인물이었다. 성한은 저족 족장 이특(李特)이 유비(劉備)의 촉한(蜀漢) 계승을 천명하며 일으킨 나라였다. 성한은 유비 가신(家臣) 출신 범장생(范長生)을 재상으로 중용하는 등 막강한 세력 과시했다.

 

허나 위서(魏書) 등에 의하면 환온은 불과 병력 7000명만 이끌고 살인적 험준함의 진령산맥(秦嶺山脈) 넘어 성한을 무너뜨렸다. 그 공은 가히 “거기 산이 있기에 올랐을 뿐” 외치며 천 길 낭떠러지 굴러 촉한을 정복한 위나라 장수 등애(鄧艾)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환온은 인상 깊은 고사(故事)도 많이 남겼다. 죽마고우(竹馬故友)‧단장(斷腸) 등은 그에게서 비롯된 말이다. 이렇듯 유능한 환온이 옥좌(玉座)에 드러눕는 건 시간문제였다. 환온도 내 장래희망은 역적이라 부르짖었다.

 

환온은 우선 동진 7대 황제인 폐제(廢帝) 사마혁(司馬奕)에게 “are you standing?” 물으며 성불구자로 몰아 가차 없이 폐위했다. 뒤를 이은 간문제(簡文帝) 사마욱(司馬昱)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다 급사(急死)했다.

 

이에 재상이자 충신(忠臣) 사안(謝安)‧왕탄지(王坦之) 등은 기지 발휘해 사마씨의 종묘(宗廟)를 보존코자 했다. 이들은 환온에게 “제갈무후(諸葛武侯‧제갈량)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는 등 시간끌기 작전에 돌입했다. 제갈량은 조조(曹操) 못지않은 촉한의 권신이었으나 끝내 승상(丞相)직에만 머물며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충성한 바 있다.

 

진서(晉書) 환온전(桓溫傳)에는 마치 산해경(山海經)‧요재지이(聊齋志異) 등을 연상케 하는 판타지스러운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환온은 어느 날 한 비구니를 매우 공경하며 식객(食客) 비슷하게 삼았다. 그런데 비구니는 한 번 목욕하러 들어가면 이태리타올 닳아 없어질 때까지 나오질 않았다. 궁금해진 환온은, 오늘날엔 결코 해선 안 될 중범죄이지만, 목욕탕 문 틈새로 그를 엿봤다.

 

놀랍게도 비구니는 칼로 제 배를 할복(割腹)해 내장을 빼내고 온 신체를 토막 내고 있었다. 허나 목욕탕을 나온 비구니는 이전처럼 멀쩡한 몸이었다. 놀라 자빠진 환온이 “정체가 뭐냐” 묻자 비구니는 “만약 그대가 역성혁명(易姓革命) 꾀한다면 마땅히 육신이 방금 나처럼 될 것이다” 경고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이에 환온이 역적질을 그만뒀다는 게 환온전 기록이다. 참고로 상고시대(上古時代)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산해경은 구미호(九尾狐) 등이,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서생 포송령(蒲松齡)이 출간한 요재지이는 홍콩영화 천녀유혼(倩女幽魂) 모티브가 된 얘기 등이 등장하는 기서(奇書‧기이한 책)다.

 

아무튼 어떻게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환온은 373년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요직(要職)인 상서복야(尙書僕射)에 올라 정권을 쥔 사안은 비수대전(淝水之戰)에서 부견(苻堅)의 100만 대군 물리치는 기염을 토했다. 이처럼 사마요는 인복(人福)이 넘쳐흐르는, 정치인으로선 더 바랄 게 없는 축복받은 인생이었다.

 

망언 한마디에 요단강으로

 

여러 야당공세(攻勢)를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정권을 유지한 사마요는, 안구 수정체에 뵈는 빛이 없어졌는지 실언(失言) 한마디에 이사만루 병살타 날리고 9회 말 끝내기홈런 맞고 말았다.

 

사마요는 여전히 태후 치마폭에 휩싸여 헤어나질 못했다. 그는 태후가 자신의 동생 사마도자(司馬道子)를 총애하고 사마도자가 붕당(朋黨) 꾸리고서 오만하게 굴어도 무기력했다. 설상가상 사안 등도 병사(病死)하면서 ‘백’만 믿던 사마요 밑천도 드러나고 말았다.

 

허수아비황제가 된 사마요는 제 과오는 모른 채 그래도 천자(天子)랍시고 큰소리 뻥뻥 쳤다. 396년 9월 어느 날 그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1000억 끌어오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러니 내 소소한 잘못은 애교로 봐 달라”는 취지로 주장하며 호기롭게 주연(酒宴)을 베풀었다.

 

자연히 주변에선 “정신 차려라”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결국 사마요는 해선 안 될 말을 하고야 말았다.

 

물론 사람을 돈에 비유해선 안 되지만, 또 여성을 물건 취급해선 절대 안 되지만, 사마요는 마치 여색(女色)으로 만조백관(滿朝百官) 환심을 사려는 듯 모두가 듣는 앞에서 총애하던 장귀인(張貴人)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도 이제 나이 서른이 넘었구나. 너 대신 어린 여자를 취하겠다”

 

이 한마디는 민심이 떠나가는 결정타가 됐다. 사마요는 “농담으로 한 소리인데 죽자고 달려드네” 입장이더라도 장귀인 등은 이를 흘려듣지 않았다. 그날 저녁 장귀인은 만취(漫醉)해 옆에서 쿨쿨 잠든 사마요 얼굴을 두꺼운 베개로 눌러버렸다.

 

사마요는 헛소리 한 대가로 “유색유죄(有色有罪) 무색무죄(無色無罪)” 외치며 버둥버둥 비명횡사(非命橫死)했다. 권력을 오로지 한 사마도자는 “장귀인은 무죄” 판결했다. 사서(史書) 어디에도 백관 중 사마요 사망에 울거나 향 피웠다는 기록은 없다.

 

군소리했다가 궁녀(宮女)들 손에 죽을 뻔한 사마요의 까마득한 후배 격 인물도 있다.

 

명(明)나라 11대 황제로서 제국의 암흑기를 이끈 가정제(嘉靖帝) 주후총(朱厚熜‧1507~1567)은 엽기적이게도 월경혈(月經血) 등으로 불사(不死)의 약을 만든답시고 나댔다. 학대당하다 참다못한 궁녀 16명은 1542년 잠든 주후총을 목 졸라 죽이려 한 임인궁변(壬寅宮變) 일으켰다.

 

궁녀들은 질식 시도가 실패하자 비녀로 마구 찔러댔다. 그래도 이 ‘마조히즘(masochism) 변태황제’는 마치 즐기듯 죽지 않고 버텼다. 거사는 결국 16명 중 한 사람인 장금련(張金蓮)이 황후에게 “저 도착증(倒錯症)환자가 맞으면서 행복해하고 있다”는 식으로 실토하면서 어이없게 끝맺었다.

 

40억이 애 이름인가

 

코앞으로 다가온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보선) 유세(遊說) 과정에서 해선 안 될 말이 나왔다.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는 공식선거운동 첫 날인 28일 서울지하철 5호선 발산역 앞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에서 구민(區民)들에게 “저로 인한 재판 때문에 보선을 하게 된 점은 그동안 무수히 사과해왔다”며 “(보선비용) 40억은 제가 (당선 시 구청장 임기) 4년 동안 4000억 넘는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수수료 정도로 애교 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40억원은 결단코 적은 돈이 아니다. 옛날 표현 빌리자면 누구네 애 이름이 아니다. 게다가 강서구는 서울 타 지역에 비해 민주당계 정당 세(勢)가 강하다. 더구나 보선비용은 모두 김 후보 개인재산이 아닌 혈세(血稅)로 마련된다.

 

구민 앞에 진심으로 엎드려 사죄하고 진지한 자세로 “구민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하겠다. 약속 못 지키면 나 스스로를 위리안치(圍籬安置)하겠다” 석고대죄(席藁待罪)해도 모자랄 판에 ‘애교’ 운운했으니 이보다 더한 치명타는 없다. 이 정도면 민주당 텃밭이 아닌 강남3구라 해도 표가 뭉텅이로 깎여나갈 만하다.

 

물론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니 향후 민심향방이 어떻게 흐를지는 알 수 없다. 필자도 여의도연구원 등 인맥(人脈) 통해 실시간 체크 중이다. 순전히 필자 개인의 직감이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국민 중 누구도 바보는 없다. 정계입문 시기가 짧은 김 후보에게는 40억이 적은 돈일지 몰라도, 구민의 공복(公僕)이 되고자 한다면 기저(基底)에 깔린 태도부터 바꿔야하지 않을까 싶다.

 

실언은 사마요 후궁처럼 심지어 적극지지층도 변심(變心)케 한다. 필자가 직접 돌아본 강서구 밑바닥민심에선 벌써부터 ‘우십억’ ‘김애교’ 등 비꼬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번 보선은 김 후보 개인이 아닌 당 전체의 운명이 걸린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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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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