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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태풍을 막은 사나이

오주한

위성 오작동 간파해 타이푼급 저지한 蘇 장교

태풍 카눈 10일 상륙…일선 책임자들 노력 당부

 

북극얼음 깨고 지구 전역 핵소나기

 

동서 자유‧공산 블록 간 냉전(Cold War)이 한창이던 1981년. 그간 소문만 무성하던 수중배수량 ‘4만8000톤’의 거대 소련잠수함 한 척이 서방(西方) 앞에 모습 드러냈다. 올해 초 한국을 찾은 미국 해군 강습(強襲)상륙함이자 준(準)항모 마킨아일랜드함(USS Makin Island) 배수량이 4만2000톤인 점을 감안하면 그 덩치가 실감이 간다.

 

이 붉은잠수함 주(主)무장은 개당 수 발의 핵탄두 탑재한 다탄두각개목표재돌입미사일(MIRV) R-39 ‘20기’. 단 한 척만으로도 웬만한 한 개 국가 주요도시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위력에 서방은 경악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이 가공할만한 괴물에게 그 힘에 걸맞은 코드명을 부여했다. ‘타이푼(Typhoon‧태풍)’이었다.

 

가압수형원자로(PWR) 탑재한 타이푼급은 이론상 24시간 365일 잠항(潛航) 가능했다. 덩치에 비해 정숙성(靜肅性)이 뛰어나 소나(Sonar)‧소노부이(Sonobuoy) 등을 이용한 탐지도 쉽지 않았다. 레이더가 통하지 않고 시야(視野)까지 좁은 해저(海底)에선 오로지 음파(音波)를 통해 상대를 찾아야 한다. 지구상 최고의 음파전문가는 다름 아닌 고래다.

 

원자력잠수함 고질병인 승조원 스트레스 해소시설도 완비(完備)했다. 유보트(U-boat) 등 재래식잠수함은 통념(通念)과 달리, 평소엔 늘 수상(水上)에 떠서 배터리를 충전하다가 필요시에만 잠깐 잠수했다. 때문에 대잠(對潛)초계기 등에 발각돼 공격당할 위험과는 별개로, 승조원들은 따사로운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었다.

 

허나 장기잠항의 원잠은 달랐다. 제 아무리 투철한 사상으로 무장하고 수십년간 해저 누빈 베테랑 함장‧선원이라 해도, 문명(文明)세계와 동떨어지고 햇빛조차 들지 않는 물속에 몇 달을 갇혀 죽을 순간만 기다리면 폭발직전까지 간다고 한다.

 

수상함과 달리 잠수함은 한 번 대형사고 나면 끔찍한 최후만이 기다린다. 그대로 초전박살 나 물고기밥이 되거나, 수압(水壓)에 처참히 찌그러지거나, 피격(被擊)부위 통해 초당 톤 단위로 쏟아져 들어온 바닷물로 인해 물탱크가 돼 가라앉아 서서히 죽어가야 한다.

 

대표적 잠수함 사건이 2000년 8월 러시아 K-141 쿠르스크(Kursk)함 침몰사고다. 모종(某種)의 이유로 폭발이 발생해 손 쓸 새도 없이 해저 100여m에 가라앉은 승조원들은, 최대 8시간 동안 생존해 아내 등에게 유서를 남긴 뒤 전원 질식사했다.

 

부상(浮上) 성공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일설에 의하면 1차 세계대전 당시 한 유보트는 해저면(海底面) 개펄에 착지해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산소게이지가 째깍째깍 돌아가는 사이, 승조원들은 초인적 정신력‧체력 발휘해 선수(船首)에 들어찬 40톤의 바닷물을 손으로 선미(船尾)로 옮겼다. 그리고는 미친 듯 앞뒤로 반복해 내달려 겨우 개펄에서 잠수함을 들어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타이푼급은 큰 덩치에 따른 여유공간을 활용, 휴게실‧꽃밭‧사우나‧오락실‧수영장 등 160명 안팎 승조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대거 구축했다. 때문에 사기(士氣)는 크게 진작됐으며, 1976~1986년 사이에 총 6척 건조(建造)된 타이푼급은 오대양 누비며 국제사회를 공포로 몰고 갔다. 타이푼급은 수m 두께의 북극(北極) 얼음 깨고 부상해 핵소나기를 퍼부을 수 있었다.

 

“왜 전부 쏘지 않았을까”

 

타이푼급은 ‘실전(實戰)’ 직전까지 간 적 있었다. 1983년의 우발적 핵전쟁 위기사태였다.

 

그 해 동서블록 간 긴장감은 쿠바미사일위기(Cuban missile crisis) 이래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3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미 대통령은 미 전역에 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했다. 9월에는 뉴욕발(發) 김포행(行) 대한항공 007편이 사할린 상공에 잘못 진입했다가, 소련 수호이(Su)-15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Gennadi Osipovich)의 미사일 사격에 피격돼 탑승객 269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망자 중에는 래리 맥도널드(Larry McDonald‧생몰연도 1935~1983) 미 연방하원의원도 포함됐다.

 

이에 맞대응이라도 하듯 미 행정부는 11월 모의(模擬) 핵전쟁 훈련인 에이블아처83(Able Archer 83)을 실시했다. 서구(西歐)동향 예의주시하던 소련공산당 수뇌부 신경은, 오늘내일하면서 투병 중이던 유리 안드로포프(Yuri Andropov) 당 서기장 사망으로 인한 지휘통제 공백(空白) 가능성에 한 층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인 9월26일 새벽. 소련 위성관제센터에서 당직(當直) 중이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Stanislav Petrov‧1939~2017)의 귀에 돌연 달팽이관 때리는 비상경보가 들렸다. 서방 측 미사일 동향을 감시하는 조기경보(Early Warning) 인공위성으로부터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한 발을 사격했다”는 급보(急報)가 타전(打電)된 것이었다.

 

당초 한 발이라던 ICBM은 삽시간에 수 발로 늘었다. 이것이 정말 탄도탄인지, 아니면 기계오류인지 판단할 사람은 당직사령(司令)이었던 페트로프 뿐이었다. 그가 크렘린(Kremlin)에 “미국이 핵공격을 가했다”고 보고하는 순간, 타이푼급 등을 통한 제3차 세계대전 즉 전면(全面) 핵전쟁은 불가피했다.

 

핵탄두가 각 단 로켓, 페어링(Fairing) 등 분리 후 소련 본토에 착탄(着彈)하기까지 불과 몇 분밖에 안 남은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순간. 여느 사람이었다면 당혹감 때문에 또는 책임전가(轉嫁) 때문에 모니터에 보이는 그대로 국가지도부에 보고했겠지만, 페트로프는 냉정히 상식적으로 생각했다. “만약 미국이 핵전쟁을 일으킨 것이라면, 왜 모든 핵을 퍼붓지 않고 몇 발만 쐈을까”

 

이윽고 결론 내린 페트로프는 상부에 전화 걸어 차분히 보고했다. “기계 오작동인 듯 합니다” 실제로 후일 조사 결과 인공위성이 미시간호수(Lake Michigan)에 반사된 태양빛을 ICBM 이륙섬광(閃光)으로 오인해 경보가 울린 것으로 드러났다. 자칫 엄청난 ‘핵폭풍’ 앞에 전 지구가 잿더미가 될 수 있었던 인류최대 위기가, 일선(一線) 책임자의 현명한 대응으로 사상자 없이 마무리된 것이었다.

 

日 이미 초토화…韓은 큰 재산‧인명피해 없길

 

6호 태풍 카눈(Khanun)이 10일 오전 10시께 한반도 남해안에 상륙한다는 소식이다. 당국은 카눈으로 인해 강원권‧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최대 600㎜의 폭우(暴雨)가 내리고 초속 40m의 강풍(强風)이 불 것으로 예상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반도 남부를 짓밟은 카눈은 11일 새벽께 북한으로 이동할 전망이다.

 

실제로 일본에선 피해가 속출했다고 한다. 9일 NHK‧규슈전력(九州電力) 등에 의하면 카눈은 느린 속도로 움직이면서 비바람을 뿌리고 있다. 가고시마현(鹿兒島縣)‧미야자키현(宮崎懸)에선 각각 9510가구‧1403가구에 전기공급이 끊기는 등 정전피해가 이어졌다.

 

타이푼급의 핵미사일 발사 해치를 닫게 한 건 페트로프의 현명한 대처였다. 전세계는 그의 공적을 잊지 않았다. 소련 해체 후 페트로프는 드레스덴평화상(Dresden Peace Prize) 등을 수상했으며, 2014년엔 다큐멘터리 ‘세계를 구한 사나이(The Man Who Saved the World)’가 제작됐다. 카눈의 위력이 얼마나 크든 일선의 활약이 있다면 충분히 상쇄(相殺)될 수 있다. 일선의 노력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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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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