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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세기의 분단국가 대한민국, 21세기 분리주의의 우크라이나

서포터즈6

21세기에 또 하나의 전쟁이 발발했다. 바로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누군가는 전쟁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젠 과거일 뿐이다.

마주 봐야만 하는 현실이 된 것이다. 한국시각으로 2022년 2월 24일 오전 11시 50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가까운 곳에 주둔해뒀던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성이 하늘을 찢고, 인간이 세웠던 거룩한 문명이 인간의 손으로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렸다.

72년 전, 동북아시아의 신생 독립국가에서 피할 수 없었던 동족상잔의 살육극이 벌어졌듯이.

 

[동족상잔, 이념과 민족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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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경, 작전명 폭풍 224라는 계획아래 북한의 대대적인 침략이 시작되었다.

김일성이라는 단 한 사람의 적화통일을 이루려는 야욕과 공산주의의 팽창을 원하는 스탈린의 묵인하에 말이다.

전쟁의 결과는 참담했다. 국부의 4분의 1이 손실되었고 100만명이 넘는 민간인이 죽었으며, 17만명의 군인이 죽었다.

오히려 침략세력인 북한이 더 큰 손해를 보았다는 것 또한 전쟁의 아이러니였다. 최소 250만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7~80%에 달하는 국가기반 산업이 포화 속의 잿더미로 사라진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주도권을 두고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던 냉전시대는 지났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같은 바랑인-동슬라브인의 후예인데, 분리주의와 분단국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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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도네츠크-루칸스크는 분리주의와 분단국가 사이의 기로에 놓여있게 되었다.

분리주의는 단일 국가 내에서 일부 지역이 독립을 주장하는 것을 뜻하며, 독립분할 이후에

상호의 주권 관계여부에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는 경우와 어느 한쪽 세력만 통일을 주장할 때가 그러하다.

반대로 분단국가는 분할 이후 상호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즉각적인 통일을 주장하는 경우를 말한다.

  

주로 친 러시아계 성향을 가진 우크라이나 남부, 동부지역에서 분리주의를 계속 주장해왔으며

앞서 2014년 3월경, 크림 자치 의회에선 러시아 연방으로의 귀속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주민 투표 결과, 96.77%의 찬성률로 독립과 러시아 연방에 편입하는 것으로 가결되었다.

당연히 우크라이나 주정부는 반발했고 이에 크림 자치 의회는 단 하루만에 크림 공화국을 선포하고 말았다.

러시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크림 공화국 선포 이후 단 하루만에 크림 공화국의 러시아 연방병합을 승인했다.

소련 치하에 흐루쇼프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넘겼던 결정은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의 계기가 된 것이다.

2014년의 크림 자치 의회의 주민투표 여파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4년 5월경, 도네츠크의 분리독립 투표가 실시되었다. 이에 우크라이나 주정부는 반발했으나

정부가 지방을 통치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역시 의미가 없었다. 투표결과, 89.07%로 가결되었고

러시아의 힘을 등에 업고 이웃한 루칸스크와 손을 잡고 노보로시야 연방을 세워 도네츠크-루칸스크 세력이

연대하면서 분리주의 운동을 이어나갔다. 허나 독립국가를 원하던 도네츠크와 우크라이나 내 자치국가를

원하는 루칸스크의 관계가 깨지면서 노보로시야 연방은 2015년 5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우크라이나 주정부는 이들을 반군으로 보고 최근까지 돈바스 지역 내에서 교전을 이어왔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대다수의 UN가입국들은 이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런 특수한 관계에 개입하면서 부터 기름에 불 붙듯이 극단적인 무력 투쟁의

양상으로 전쟁의 화염이 점점 커져갔고 결국 오늘날 이 사태에 이른 것이다.

우크라이나에겐 반성하고 바로잡을 시간조차 없었다.

친 서방 - 친 러시아 이념세력 간의 갈등을 봉합할 지도자는 없었고

이런 갈등을 이용하는 지도자들만 있었을 뿐이다.

그 사이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최빈국이 되어있었고

NATO세력과 러시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가난을 못이긴 국민이 국가를 버리게 되었다.

어쩌면 러시아의 침공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흑토지대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밀 생산량과

흑해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크림반도의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까지 덤으로,

우크라이나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갈등을 바라보면서 러시아는 너무나도 달콤했을 것이다.

 

 

분리주의의 소용돌이에 빠진 우크라이나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갈라졌는지 빨리 배웠어야 했다.

분단국가 대한민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면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청년의 꿈 1기 서포터즈 외교안보 담당 L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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