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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국은 왜 베트남 전쟁에서 졌을까?

정은지 청꿈실세

지금 세계 초강대국이자 사실상 적수가없는 세계패권국가인 미국 하지만 이런 미국이 유일하게 진 전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베트남 전쟁 1964년 미국은 총 병력 50만명과 베트남군 140만명을 포함한 약 200만명의 병력으로 남 베트남의 공산주의 세력을 축출하고 인도 차이나 반도에 공산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군사 작전에 돌입한다. 이에 대항하는 북 베트남은 보 구엔 지압 장군의 지휘아래 총 병력 40만 으로 베트남 전역에서 외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통일 베트남을 완성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했다.


양측의 격돌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은 당연히 미국의 완승을 기대했다. 전세계 최고의 군사 강국이자 경제 부국인 미국이 작고 힘없고 개발도 안되어 있는 북 베트남정도는 우습게 끝장 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미국의 장군이였던 웨스트몰렌드 장군 역시 그런 생각에 대해 전혀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의 전략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베트남군과 남부 베트남 해방군 (베트콩)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입히고, 피해를 견디지 못한 베트남 군과 베트남 해방군이 공세로 나왔을 때 대규모 반격 작전을 통해 괴멸 시킨다는 계획이었다.


1964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공세 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베트남 해방군에 의한 게릴라 활동은 점차 국경쪽으로 밀려나고 있었고, 북 베트남의 미군의 폭격과 공습에 전의를 상실하고 있다고 믿어졌다. 웨스크 몰랜드 장군은 1967년 11월 베트남 전선이 안정화 되고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격퇴하는 단계인 베트남 전쟁의 끝이 보이고 있다고 선언했다.




미국측의 가장 큰 잘못은 전략적인 목표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전술에 문제가 있었다. 미국측의 전략적인 목표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것이였다.


하지만 이를 수행하기 위한 전술적인 방식은 군사력을 활용한 베트남 해방전선과 북 베트남 군이 남부 베트남으로 침공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 본 것이 문제였다. 당시 베트남 사회는 오랜 기간의 프랑스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 독립 국가로의 나아가길 원하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내걸고 남 베트남에 진주한 미군을 베트남 국민들은 또 다른 외국 점령군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미국이 취해야 하는 전술은 내정 안정이 최우선 되었어야 하지만, 군사적인 색출 – 섬멸에 주력함으로써 점점 큰 문제를 안게 되었다. 내부의 결속력을 다지고, 안정을 꾀하면서 수세적인 입장에서 민간인을 보호하는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베트남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보호하러 온 군대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웨스트몰랜드 장군을 비롯한 미군 수뇌부는 이 작전을 단순한 군사 작전으로 판단했으며, 적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을 아군이 탈환하는 영토 분쟁으로 인식했다. 이런 군사적인 접근은 일선 부대들에게 군사 작전의 강화만을 지시하게 됨으로써 민간인들과의 괴리감을 오히려 높이게 되었고, 식민지 군대와 같은 점령군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량전의 영광에 도취된 미국 vs 전략과 전술의 조화를 이룬 북 베트남

또한 미국이 군사적인 전면전을 통해 전쟁을 끝낼 계산을 가졌다면 북 베트남측에 대한 지상군 공격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나가는 것이 맞았으나 미국 수뇌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그런 전술도 선택하지 못하고 만다. 여기에 미국이 가지고 있는 자원과 베트남 현지의 조건, 정치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2차 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사용했던 전략을 밀고 나가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베트남군이 미군의 움직임을 미리 감지하고 그에 맞춰 대응할 수 있도록 유도한 문제도 발생 시켰다.


전쟁은 물량 동원을 통해 승리가 가능하다고 믿고, 자신들의 힘들 과신하고 과거의 영광에 도취된 미군의 운명은 이미 결정 나있었던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사령관이였던 윌리암 웨스트 몰랜드 장군. 전쟁의 양상이나 진행방향에 대한 이선 장병들의 건의와 정보를 무시하고 사전에 준비된 계획과 정보에 의존함으로써 존슨 행정부와 함께 베트남 전쟁의 패배를 가지고 온 인물로 지목된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사령관이였던 윌리암 웨스트 몰랜드 장군. 전쟁의 양상이나 진행방향에 대한 이선 장병들의 건의와 정보를 무시하고 사전에 준비된 계획과 정보에 의존함으로써 존슨 행정부와 함께 베트남 전쟁의 패배를 가지고 온 인물로 지목된다.

반면 북 베트남의 보 구엔 지압 장군은 이번 전쟁의 승패가 정치적인 싸움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전형적인 게릴라 전쟁을 준비했다. 프랑스군이 철군한 시기부터 시작된 베트남군의 게릴라 전술은 남 베트남 정부의 부패와 결합하여 빠르게 일반인들 사이에 공산주의를 퍼트려갔고, 미군과의 대규모 전면전을 진행하여 손실을 막대한 손실을 입기 보다는 미국의 색출- 섬멸전에 대항하여 매복- 기습의 방식으로 미군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주는 전술을 택했다.


67년이후 미국이 베트남에서의 군사 작전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게릴라 공격의 빈도를 줄여나가다가 최종적으로 미군이 전세가 완전히 기울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던 68년도 초반을 기점으로 구정 공세를 펼침으로써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보 구엔 지압의 전략은 군사적으로 미국을 베트남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닌 정치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에 따른 전술 역시 미군에게 전면전이 아닌 정치 공세와 지속적인 피해를 통한 미국의 내부에서의 피로감을 유발한다는 전략을 수행했다.


전략과 전술의 조화가 이루어낸 결과는 자명했다. 미군은 불패의 강국이라는 이미지에 먹칠을 하면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고, 미군이 물러나고 2년뒤 북베트남의 총 공세 앞에 남 베트남은 정권은 붕괴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트남군은 미군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미군은 베트남 군을 두려워했다. 계속되는 전투의 승리(전술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전략적으로 베트남군이 쳐 놓은 수렁에 점점 깊숙이 빠져들어간 것이 베트남 전쟁의 결과를 가지고 온것이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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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통
    2022.02.07

    칼럼 개추

  • 유시민
    2022.02.07

    전술의 중요성 ㅇㄷ

  • 명화
    2022.02.07

    전술 부족+현지도우미 부족+전쟁의 명분이 공산화 막기였는데 그걸로 베트남애들 설득안됨+배트민 부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