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이상한 北中, 왜 이러나
2021년 6월 중국 지린성 투먼과 북한 남양 접경 모습. /조선일보 DB
북·중 관계가 심상치 않다. 김정은과 시진핑 주석이 2018년 중국 다롄에서 같이 산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발자국 동판’부터 없어졌다. 중국 측이 동판 위로 아스팔트를 깔아 발자국을 없애버렸다. 북·중 정상의 우호 상징물이 제거된 것은 유례가 없다. 코로나가 끝났는데도 북한 노동력의 중국 신규 유입은 중단된 상태다. 지난 1월 대만 총통 선거는 중국의 최대 관심사였다. 중국이 싫어하는 친미·독립 성향의 후보가 당선됐는데도 북한은 중국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시기에 강진이 발생해 모두 큰 피해를 봤다. 정상이라면 북한은 중국에 위로 전문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일본에만 ‘기시다 각하’로 시작하는 전문을 발송했다. 얼마 전엔 북한이 조선중앙TV의 해외 송출 위성을 중국에서 러시아로 바꿔버리기도 했다. 이 같은 공개된 파열음은 북·중 실제 갈등의 빙산 일각일 가능성이 크다. 언제부터, 왜 이러는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래픽=양인성
◆2년 전부터 이상 징후, 올 들어 표면화
코로나 당시 북·중 교류는 사실상 끊어졌다. 상처는 대외 무역의 96%를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이 더 컸다. 김정은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에 얽매이지 말고 북한을 도와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은 섣불리 북한을 지원하다 미국에 대중 제재의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
러시아는 달랐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전황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당장 포탄이 부족해졌다. 고립된 푸틴이 손 내밀 곳은 북한뿐이었다. 북한은 2022년 말부터 러시아에 무기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대가로 러시아의 정제유가 북한으로 들어갔다. 정제유는 유엔 제재 품목이라 북한이 중국에서도 쉽게 못 구한다. 재작년 북한은 ‘대북 전단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억지를 부렸다. 중국은 북한의 비상식적 주장에 호응하지 않았다. 반면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북한 말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 관계가 급물살을 탔다.
김정은과 푸틴이 지난달 동맹 조약을 맺고 악수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작년 7월 북한의 정전협정 체결 70년 열병식에서 러시아는 푸틴 최측근인 쇼이구 당시 국방부 장관을 보냈다. 러시아가 북한 열병식에 특사를 보낸 건 이례적이다. 10년 전 정전 60년 때도 고위급을 파견하지 않았다. 반면 중국 특사는 리홍중 정치국 위원이었다.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7명)을 보낼 만도 한데 위원(25명)을 보낸 것이다. 김정은은 표시 나게 러시아 특사만 환대했다. 2022년부터 쌓인 북·중 갈등이 표면화한 것이다.
◆대북 제재, 포탄 지원 놓고 북·중 불화
중국은 미국의 일극 체제는 거부하지만 기존 무역 질서는 유지하려 한다. 현재 시스템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 경제는 에너지 수출 위주로 비교적 단순하다. 전쟁 수렁에 빠지면서 체면을 차릴 처지도 아니다. 북한 무기를 얻으려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약속했던 대북 제재까지 허물고 있다.
시진핑은 2012년 집권 직후부터 김정은을 좋게 보지 않았다. 북핵 폭주가 동북아 균형을 흔든다고 봤다. 북한 도발은 미군을 중국 코앞으로 불러들이는 빌미가 된다. 2014년 중국 지도자 중 처음으로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며 김정은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김정은은 2015년 베이징에 모란봉 악단을 보냈지만 중국 최고위급이 관람하지 않자 공연 직전 악단을 소환하며 감정싸움을 벌였다.
중국이 시진핑·김정은의 '발자국 동판'을 아스팔트로 삭제한 장면. /KBS
북·중은 불신의 역사가 깊다. 중국은 북한이 촉발한 충돌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한다. 6·25가 대표적이다. 북한의 러시아 포탄 지원은 ‘나비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세계 경제가 요동치거나 북·중·러의 결속 모습이 한·미·일 군사 협력을 강화시키는 것은 중국에 불리하다.
중국은 북한에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자제하라’는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거꾸로 러시아와 군사 동맹까지 부활시켰다. 북·중 동맹보다 포괄적이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북·중 수교 75년을 맞아 중국 자오러지 상무위원(서열 3위)의 방북을 기다렸다. 2009년 수교 60년 때 원자바오 총리가 공장 건설 등 선물 보따리를 싸 들고 방북했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자오러지는 빈손이었다. 김정은은 푸틴에게 더 기울었고 북·중 관계는 더 틀어졌다. 반면 중국은 텃밭인 동북아에 미국은 물론 러시아가 끼어드는 것도 싫어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조선일보 DB
◆김정은·푸틴의 모험주의 결합이 가장 위험
북·중 악화와 북·러 밀착이 가져올 가장 큰 위험은 김정은과 푸틴의 모험주의가 결합하는 것이다. 김일성의 모험주의는 6·25를 불렀고, 푸틴의 모험주의는 우크라이나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반대 세력이 없는 독재자일수록 오판 가능성이 커진다. 북한 경제는 농경 사회 수준이다. 그런데 핵과 미사일이 있다. 김정은은 푸틴의 식량과 무기 기술만 있으면 모험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푸틴도 김정은의 포탄 지원만 있으면 전쟁을 끌고 나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대선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쟁이 끝나면 푸틴 입장에선 북한의 포탄보다 한국과의 경제 관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전쟁 상황과 미·북 관계, 미·중 관계 등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1950~60년대 김일성처럼 중·러 등거리 외교를 통해 군사·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는 소련이 주요 2국이었고 중·소 관계는 핵전쟁을 준비할 정도로 나빴다. 지금 북한은 중국이 송유관만 잠가도 열흘을 버티기 어렵다. 김정은의 반중 감정싸움은 장기적으로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푸틴과 합의한 ‘북·러 자동차 다리’ 연결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북·러가 다리를 놓으려는 두만강 하구는 중국이 동해로 빠져나가려는 길이다. 중국 소식통은 “북·러 새 다리가 완공되면 중국 배는 바다로 나가기 어려워진다”며 “중국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 종전, 美 대선이 변수”
북·중이 삐걱거리고 북·러가 밀착하는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미국 등 서방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 국무부 커트 캠벨 부장관은 최근 워싱턴 대담에서 “중국이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소 불안해하고 있다면 맞을 것 같다”며 “중국 측이 우리에게 이런 점을 시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총괄한다. 캠벨 부장관은 또 “중국은 (북·러 군사 협력으로) 북한이 동북아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도발적인 조치를 취할까 봐 우려하고 있다”고도 했다. 영국 BBC방송도 “북·러 관계의 급속한 발전에 대해 중국이 불편한 속내를 보여준 징후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푸틴이 바로 평양으로 가지 않고 러시아로 돌아갔다가 다시 방북한 것은 중국이 푸틴의 베이징·평양 동시 방문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러와 한·미·일이 주요 무역 상대국인 중국은 입장이 다르고, 중국은 성장 둔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북·러와 묶이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북·러의 군사 동맹급 새 조약이 중국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고 했다. 중국 인민대 스인훙 교수는 NYT에 “중국 시각에서 북·러 조약은 한·미·일 협력과 결합해 지역 내 대립과 경쟁, 갈등 위험을 상당히 악화시켰다”며 “지역 내 군사화가 가속하면 중국 이익은 위태로워진다”고 했다. 반면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중은 이해관계가 깊게 얽혀있고 러시아가 북한의 동아줄이 되기 어렵다는 것은 김정은도 알 것”이라며 “미국 대선 등 중장기적 상황에 따라 북·중 관계는 언제든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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