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새천년을 맞은 이회창 정부는 다양한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대부분은 한 발짝 물러나면서 어찌저찌 해결되었지만, 정치적 눈치게임이 계속되면서 민생과 경제는 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회창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북풍으로 인해 30%~40%를 왔다갔다할 뿐 큰 변화는 없었다. 더 이상 반전없는 시기가 지속되어 점차 레임덕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름아닌 노무현이 먼저 손을 건넨 결과 대연정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대연정 역시 겨우 과반을 확보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바로 2002년 일어났어야 할 제2연평해전이 북한의 성급함으로 2000년에 터진 것이다.
북한의 선제도발로 일어난 제2연평해전은 국군에서 6명의 전사자를 낳았고, 이는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아니, 그보다 더욱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로 인해 벌어진 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던 YS의 "북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아야 한다"라는 발언과, 여당을 트집잡던 야당에 대한 전국적인 비판이었다. 이로 인해 국정안정론과 대연정 참여론에 힘이 실렸고, 결국 김종필이 낮아지는 지지율에 참여를 선언, 이인제는 끝까지 버티다가 끝내 2001년이 되서야 참여하였다. 마침내 국회가 하나가 된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에 잔류해있던 YS키즈들의 성장으로 당내 입지가 불안정해진 이회창은 김종필의 자민련과 합당해보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이에 앞서 김종필은 먼저 당권을 자신들이 쥔다는 조건 하에 이회창 지지를 표명하겠다고 요구했고, 이로 인해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합당 문제는 결국 무산되고 만다.
어쨌든 국회를 쥐게 된 이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던 반공주의, 보수주의적 정책들을 다시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이에 이인제가 불만을 내비치며 문제를 빚기도 했으나 결국 국회에서 통과되어 이회창 대통령은 몇년만에 자신의 영향력을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애초에 성향이 상극인 네 정당들이 국정안정과 내부개혁, 국민여론 등을 위해서 프랑켄슈타인처럼 합쳐진 형태였기에, 이들의 연정은 결코 오래갈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제일 먼저 마찰을 빚던 이인제가 2002년이 되자 대연정 탈퇴를 선언, 김종필도 곧이어 탈퇴했고, 결국 남은 이회창과 노무현은 대연정 해체를 선언하며 2002년 5월 14일 최종 해체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6월 13일 열린 제3회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역대급 참패를 기록, 이인제가 이끄는 신사회국민당과 김종필의 자민련이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사회국민당 입당'과 '이인제 지지' 선언, 그리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민주당 분열 사태 재조명과 합당 문제,
그리고 김종필이 곧 정계은퇴를 할 것이라는 소식에 대한 동정론, 이회창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허탈감 등 수많은 민심이 뒤죽박죽거린 결과였다.
특히 이로 인해 이인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PK와 반YS 성향이 강한 대구에서 선전, 민주당 성향임을 이용해 빅텐트 정당임을 강조하며 전북지사까지 얻어냈고, 이인제 본인이 직접 자신의 텃밭인 경기지사에 재도전한 끝에 당선되면서 신사회국민당은 다양한 상황을 이용해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자민련 역시 한나라당에 실망한 무당층의 역선택을 받아 강원도, 인천까지 당선자를 냈다.
또한 이 선거 이후 김종필이 정계 은퇴와 동시에 합당 문제를 자민련 전체에 떠넘기게 되는데, 이미 반 이회창 정서가 상당해진 이들은 결국 노무현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새천년민주당과 합당하기로 한다.
결국, 정계은퇴 선언 직후 김종필과 노무현이 만나 자민련 합당을 선언하였고, 새 당명은 새천년민주연합으로 정해졌다. 김종필은 합당에서 맹목적 역할만을 수행하고 정계를 공식적으로 떠났고, 결국 김종필계는 민주당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한나라당에서 이회창이 축출되면서 상황이 변하자 민주당에 남았던 자민련계 의원들은 단체로 한나라당에 복당한다.
또한 한나라당의 상황도 심상치 않게 되었는데, 임기 말의 이회창 대통령은 새 대통령 선거에 가려졌고, 지지율도 20%대로 다시 하락했다.
그리고 지방선거에서 선전하고 정당 지지율 1위를 달성한 신사회국민당은 그동안의 이회창 때리기를 줄이고, 노무현이 아닌 이회창과 합당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무런 힘도 없던 이 대통령은 이인제의 합당에 응하며 이인제에게 당권을 넘겨주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구 상도동계 인사들까지 한나라당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로고를 바꾸고 새 전당대회를 열어 이인제를 당 대표로 선출한다. 그리고 이인제는 연설에서 "내가 대연정 시절 협조를 잘 하지 않은 것은 이 대통령의 불친절함 때문"이라고 한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회창이 내심 밀던 정치인이 있었으니, 바로 이명박이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흔치 않은 한나라당 당선자가 되었고, 재임 중 상당한 치적을 남기기 시작하며 좋은 이미지가 쌓였다. 이로 인해 이명박도 조금씩 대권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또한 김종필의 지지도 받고 있었기에, 이명박은 차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그렇게 이회창 대통령의 임기는 정말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고, 새 대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