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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누군가의 ‘파’부침주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들을 담은 담론

지지율 가라앉혀 욕먹고 장수하려는 ‘파’부침주

 

거록대전(巨鹿大戰)은 기원전 207년 항우(項羽)의 초군(楚軍)과 장한(章邯)의 진군(秦軍)이 맞붙은 전투다. 이 싸움에서 진나라는 멸망에 쇄기를 박았고 항우는 파부침주(破釜沈舟)의 전설을 써내려갔다.

 

진나라의 마지막 명장 장한은 무서운 기세로 반란군 우두머리 진승(陳勝)을 참살했다. 그리고는 혼란 속에 속속 부활했던 여러 국가들 정리에 착수했다. 이들 나라의 맹주 격이었던 초나라는 순망치한(脣亡齒寒) 차원에서 항우의 숙부 항량(項梁)에게 대군을 딸려 보냈다. 그러나 항량마저도 정도(定陶)이라는 곳에서 장한의 역격 앞에 목숨 잃었다.

 

장한은 조(趙)나라를 멸하기 위해 북상했다. 초나라는 여러 나라와 함께 재차 구원병을 보냈다. 초군 측 대장은 송의(宋義)였고 항우는 차장(次將)이었다. 그런데 송의는 진군을 멈춘 채 제 아들 송양(宋襄)을 제(齊)나라 재상으로 삼기 위한 로비에만 열 올렸다. 그 사이 겨울이 돼 병사들이 굶주림‧추위에 허덕이는 걸 본 항우는 폭발했다. 그는 손님들과 흥청망청 술 마시던 송의의 막사를 기습해 목을 치고 스스로 상장(上將)에 올랐다. 송의를 통해 항우를 견제하려던 초회왕(楚懷王)은 놀라 항우의 상장군직을 윤허했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여긴 항우는 만인적(萬人敵)이라는 병가(兵家)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는 기동성을 갖춘 소수 결사대만 이끈 채 바람 같은 속도로 진격했다. 그리고는 황하(黃河)를 건넌 뒤 가져온 솥을 모조리 부수고 타고 온 배들을 모조리 가라앉혔다. 초군이 지닌 식량은 3일치에 불과했다.

 

항우는 두려워하는 병사들에게 “우리는 물러날 곳이 없다. 죽기로 싸워 이겨 적의 쌀로 밥 지어 먹고 적의 배로 당당히 회군하자” 일갈했다. 손자(孫子)는 “적진 깊은 곳(중지‧重地)에 들어가면 쇠뇌가 날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치고 나아가야 한다. 강을 건넌 뒤 타고 온 배를 태우고 가마솥을 깨뜨려 오직 전진만 있을 뿐이란 결의를 표하라” 강조했다. 오자(吳子)는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다.

 

이 파부침주의 기세로 적진에 들이닥친 초군은 진군과 아홉 차례 싸워 아홉 차례 모두 이겼다. 진장(秦將) 소각(蘇角)은 전사했고 섭간(涉間)은 불길에 몸 던져 자결했다. 지휘관이었던 왕리(王離)는 포로가 됐고 장한은 목숨만 붙어 멀리 달아났다가 항우에게 항복했다. 누가 봐도 진나라 15만 대군에게 초군이 필패할 거라 여기면서 관망만 했던 여러 제후(諸侯)들은 이 기적 같은 승리에 놀라 떨며 항우 앞에 엎드렸다.

 

파부침주의 요지는 배수진(背水陣)이다. 시간상 급하게 본 개담을 쓰고 있는 필자의 지금 당장의 짧은 소견에는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선 제 아무리 하기 싫더라도 민심에 역행하는 요소들을 모조리 과감히 쳐내야 한다” 등등 정도로 현대 정치에 접목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파부침주를 잘못 배운 듯한 인물이 있다. 무슨 마트에 가서 대파 한 단 앞에 서서 ‘몇백 원이네’ 주장하면서 지지율을 제 손으로 가라앉히는 인물이 있다.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높은 물가를 가라앉히려는 자세가 아니라 지지율을 제 손으로 가라앉히면서 표심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

 

이미지 박살내고 지지율 가라앉히는 ‘파’부침주로 배수진 쳐서 뭘 얻겠다는 건지. 본인이 마트에 가 본 역사가 없다면 공무(公務)차 가기 전에 핸드폰 인터넷으로 몇 분가량 식재료들 가격 알아보면 됐을 것을 그것이 그리 귀찮아 하기 싫었는지. 최소한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가는 게 상식 아닌지. 그 정도 위치 쯤 되면 말조심 또 말조심해야 한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지.

 

욕먹으면 오래 산다더니, 그렇게 바가지로 욕먹어 여당 셔터문 내릴 때까지 오래오래 무병장수(無病長壽)하고 싶은 건지.

 

26일 정치권 등에 의하면 여당은 4월 총선에서의 자당(自黨) 우세 지역을 ‘82곳’ 정도로 꼽고 있다고 한다. 문제의 ‘파’부침주 인사는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면서 있으면 그나마 여러 사람에게 덜 폐를 끼칠 것 같다는 밑바닥의 자조적 목소리가 높다. 필자도 ‘파’부침주께 그냥 비 오는 날 파부침개에 막걸리나 잡숫길 권한다.

 

지난 몇년 간 여러 기행(奇行)들에 어이가 없다 못해 이제는 욕할 기운도 없다. 요새는 식욕마저 뚝 떨어진다. 그냥 하지 마시라. 아무 것도. 숨 쉬고 밥 먹고 잠자고 뒷간 가는 것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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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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