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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리더는 괴롭다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용산, 인지찰즉무도의 경직성 탈피하길

 

삼국시대 오(吳)나라에는 좋게 말해 개성 있고 나쁘게 말해 인성(人性)이 의심스런 자들이 유독 많았다. 대표적 인물이 장소(張昭)‧고옹(顧雍)‧우번(虞翻) 브라더스다.

 

장소는 “군정(軍政)은 주유(周瑜), 행정은 장소”라 일컬어질 정도로 손권(孫權)의 오른팔 격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성격은 꼬장꼬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황제에 오른 손권은 요동(遼東)의 군벌 공손연(公孫淵)에게 사신을 보내 그를 연왕(燕王)에 봉하려 했다. 이를 반대하던 장소는 기어이 사신이 출발하자 화가 나 칭병(稱病)하고서 두문불출했다. 황제의 체면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는 노신(老臣)에게 분노한 손권은 장소의 자택 입구를 흙으로 막아버렸다. 이를 본 장소는 보란 듯 흙담을 쌓아 맞대응했다. 손권도 잘한 건 없었으나 장소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런데 장소의 예상대로 공손연은 변심해 손권의 사자 둘을 참해버렸다. 장소가 옳았음을 깨달은 손권은 체면 무릅쓰고 사과도 하고 구슬리기도 하면서 조회에 나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장소가 끝까지 뻗대자 폭발한 손권은 장소의 집에 ‘불’을 질러버렸다. 그래도 장소가 “어 춥다. 장작 더 때라” 버티자 놀란 아들이 부친을 업고 나왔다. 장소의 성정(性情)이 실로 그러했다.

 

문제아2 고옹. 그는 겉으로 보기엔 술도 안 먹는 고명(高明)한 선비였다. 손권도 그러한 고옹을 장소보다는 아껴서 오나라 두 번째 승상(丞相)직을 맡겼다. 좌우가 “어찌 자포(子布‧장소)를 재상으로 삼지 않으십니까?” 놀라 묻자 손권은 “자포에게 애정이 있긴 허나 워낙 강직해서 짐(朕)과 자주 충돌해 원한만 쌓이니 더는 감당 못 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숙취해소 염려가 없는 것까진 좋은데 고옹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손권 앞에서도 인상 쓰고 입 꾹 다물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곤 했다. 이 후기 인상파 때문에 손권은 퇴근 후 부서원 회식에서도 눈치 보며 잔에 입 댈 정도였다. 사람이 좀 융통성도 있어야 하는데 고옹은 눈만 부릅뜰 뿐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술자리에 저런 사람이 끼어 눈에서 레이저 쏘고 앉아 있다고 생각해보자. 답이 나올 것이다.

 

문제아3 우번. 그는 채찍을 사랑하는 마조히스트였다. 손권이 관우(關羽)를 베고 형주(荊州)를 얻은 직후였다. 손권은 관우의 포로였던 위(魏)나라 장수 우금(于禁)을 석방한 뒤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우금을 위에 돌려보냄으로써 조조(曹操)와 친선관계를 맺고 눈 뒤집어진 유비(劉備)를 막고자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를 본 우번은 대뜸 입에 개거품을 물며 “감히 포로 따위가 경우도 없이 우리 주인과 나란히 걷느냐!” 외치고서 미리 챙겨온 채찍을 꺼내 후려치려 했다. 손권이 “어허, 이 사람이. 우 씨 아저씨 놀라겠다” 말려 겨우 우번의 마조히즘은 충족되지 못했다.

 

허나 약자를 괴롭혀 쾌감을 얻던 변태 우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직후 열린 연회에서 우금이 눈물 흘리자 옳다구나 달려 나와 “이 약팔이가 어느 안전에서 거짓으로 사면을 구하려 앙탈 부리느냐. 내 채찍은 늘 준비돼 있다! 받아들일 준비됐나?!” 신나게 욕설 퍼부었다. 실로 우번의 성정이 그러했다.

 

우번은 그런 주제에 정작 자신은 기군망상(欺君罔上)하기 일쑤였다. 여느 때처럼 어느 날 LPG통 메고 온 장소와 눈 부릅뜬 고옹이 참석한 술자리가 열렸다. 코가 비뚤어진 손권은 직접 코리안칵테일 말아 백관(百官)들에게 맥주잔 돌렸다.

 

혼자만 빨리 귀가하고 싶었던 우번은 넥타이 머리에 맨 채 갑자기 나자빠져 곯아떨어진 척했다. 그러다가 2차 장소로 이동하려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자 슬금슬금 일어나 달아나려 했다. 손권에게 딱 걸린 우번은 거짓으로 뻗는 게 아니라 칼에 맞아 정말로 영원히 뻗을 뻔했다. 이 때 손권의 검을 뺏은 이는 딱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에서도 손권은 개 때려잡듯 무조건 군기만 세우는 게 아닌 때로는 위트(wit)로서 긴장도 풀어주면서 조직을 이끌어나갔다.

 

제갈근(諸葛瑾)은 제갈량(諸葛亮)의 친형이었지만 오나라에서 임관(任官)하고 있었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의하면 제갈근은 얼굴이 길쭉한 말(馬)상이었다.

 

하루는 손권이 장난치려고 제갈근 앞에 당나귀 한 마리를 끌고 온 뒤 머리에 제갈자유(諸葛子瑜)라고 큼지막하게 썼다. 자유는 제갈근의 자(字)였다. 적대감 없는 농담에 좌우는 물론 제갈근도 웃어젖혔다.

 

그런데 제갈근의 젖먹이 어린 아들 제갈각(諸葛恪)이 갑자기 쪼르르 달려 나오더니 나귀 마빡에 지려(之驢) 두 글자를 추가했다. 글자를 모두 합하면 ‘제갈자유지려’ 즉 제갈근의 당나귀가 된다는 뜻이었다. 좌우는 제갈각의 영특함에 탄복했으며 껄껄 웃은 손권도 정말로 그 나귀를 제갈근에게 하사했다. 제갈근도 아들의 재능을 동료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 뿌듯했을 터였다. 모두가 악의 없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해프닝이었다.

 

인간군상(人間集団)은 다양한 개성 있는 이들의 집합소다. 리더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이들을 하나로 조화롭게 만드는 관리자다. 너무 굳센 활은 부러지기 마련이고 너무 완벽한 물엔 물고기가 살지 않는 법이다(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水至淸卽無魚 人至察卽無徒). ‘용산’은 그간 지나치게 경직된 분위기였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변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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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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