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을 담은 담론
오는 설날, 나라의 도둑 쫓기 놀이를 권한다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간의 설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남들 일할 때 쉬고 남들 쉴 때 지면 메워야 하는 직업상 필자는 내일(8일)부터 11일까지 연휴를 맞게 된다.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홈페이지에 의하면 설날은 신일(愼日)‧달도(怛忉) 등의 이명(異名)이 있다고 한다.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설 풍습으로는 차례‧세배‧떡국‧문안비‧설빔‧청참(聽讖)‧윷놀이‧널뛰기와 복조리 걸기, 그리고 ‘야광귀(夜光鬼) 쫓기 놀이’ 등이 있다. 공교롭게도 야광귀는 근신‧조심과는 담 쌓은 존재라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부산시‧부산대민족문화연구소가 공동 개설한 부산역사문화대전 홈페이지에 따르면 야광귀는 매년 음력 1월16일이 되면 야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신발을 훔쳐가는 귀신이다. 일설(一說)에는 온 몸이 새까만 사람 형태이고 정수리에 작은 등불 또는 화로가 있어서 항상 불빛을 낸다고 한다.
조선 후기 학자 홍석모(洪錫謨‧생몰연도 1781~1857)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야광귀가 민가(民家)에 내려와 아이들 신발을 두루 신어보다가 발 모양이 딱 맞는 것을 신고 가버리면 신발 주인은 불길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것이 무서워 모두 신발을 감춘 채 불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대청 벽이나 섬돌과 뜰 사이에 걸어 둔다. 야광귀가 신발 훔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체의 구멍을 세어보다가 새벽 첫닭이 울면 도망가기 때문이다” 기록했다. 머리가 나쁜 야광귀는 툭하면 “내가 어디까지 세었더라” 잊어버린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1748~1807)도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야광귀는 밤에 사람 집에 찾아가 신발 훔치는 것을 좋아한다. 신발을 잃은 사람은 일 년 신수가 불길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신발을 숨겨 놓고 야광귀가 오기 전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마루의 벽에다 체를 걸어 둔다. 야광귀는 그 체의 구멍을 세다가 닭이 울면 다 못 세고 도망간다”고 했다.
체도 소용없는 야광귀를 집안에서 내쫓기 위해선 팥을 삶아 소금‧술과 섞은 뒤 마당에 뿌리면서 “귀신아, 많이 먹고 물러가라” 외치면 된다고 한다. 이렇듯 신발을 숨기고 체를 걸며 팥을 뿌리는 게 야광귀 쫓기 놀이라고 한다.
물론 야광귀가 정말 존재할 리는 없으니 혹여 젖살이 다 안 빠진 귀여운 독자들께서 본 개담을 읽고 이부자리 쉬 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유득공도 야광귀에 대해 “설날에 늦게까지 노는 아이들을 일찍 재우려고 어른들이 만든 얘기일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했다.
2024년 대한민국. 연중 한 차례만 절도행각 저지르는 신발도둑 야광귀 따위는 우습게 보일 정도로 대도(大盜)들이 24시간 365일 활개치고 있다. 신발을 숨기거나, 체를 걸어두거나, 팥을 뿌리는 것만으로 간단히 퇴치되는 어리숙한 야광귀와 달리 이 나라의 도둑들은 권세‧재물 등을 총동원해 기가 막힐 정도로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곤 한다. 겉도 속도 모두 시커먼 이들의 묘서동처(猫鼠同處) 대잔치 그 자체다.
우리 옛 조상님들은 야광귀에게 달달한 팥을 내주며 배불리 먹이고서 타일러 돌려보냈다. 다가오는 설날, 국민 모두 가족과 둘러앉아 날강도들의 조속한 국립호텔 입주 및 무료 전기찜질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기원하면서 “엿 먹고 지옥 가라” 허공에 엉덩이 걷어차기 놀이를 해봄이 어떨런지. 그러면 혹여라도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인간의 탈을 쓴 악귀(惡鬼)들이 신통방통하게 격퇴되지는 않을런지.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