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제일” 안심하다 메탄가스와 산화한 경공
결국 신기루처럼 뚫려버린 李 방탄…참회해야
진나라의 여야대결
엄이도령(掩耳盜鈴)‧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처럼, 세상천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인데도 귀 틀어막고 당사자 혼자만 “아냐” 우기는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병입고황(病入膏肓‧죽을 날이 다가오는데 환자만 모른다) 이야기는 그 사례를 담은 고사(故事) 중 하나다.
해당 고사는 교훈은 참 훈훈하지만 내용 자체는 ‘지저분’하다. 따라서 식사 중이거나 비위가 약한 분은 결론만 읽어주시길 삼가 부탁드린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 28대 국군(國君‧임금) 경공(景公) 희누(姬獳‧또는 희거‧생몰연도 ?~기원전 581)는 오패(五覇) 중 한 사람인 문공(文公)의 손자다. 진나라는 문공의 뒤를 이은 양공(襄公) 시기부터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627년 서쪽의 진(秦)나라는 중원의 정(鄭)나라를 전면 침공했다. 양공의 진나라와 정나라 왕실은 희성(姬姓)으로 한 집안이었다. 고대에는 성씨(姓氏) 구분이 엄격했다. 성은 조상의 것을 따르고, 씨는 각자의 터전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종주국 주(周)나라 종실(宗室)이면서 제후국 진(晉)나라 국군인 양공은 성은 희이고, 씨는 진이며, 휘(諱‧이름)는 환(歡)이다.
같은 뿌리, 같은 종가(宗家)를 뒀기에 양공의 진나라는 정나라를 지원했다. 장졸(將卒)들은 용맹히 싸워 맹명시(孟明視)‧서걸술(西乞術)‧백을병(白乙丙) 등 서쪽의 진나라 장수들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양공은 일껏 생포한 이들을 진(秦)나라 공주 출신인 적모(嫡母) 요구만 듣고 조건 없이 풀어줬다.
당연히 목숨 걸고 전장(戰場)에 나섰던 장졸들은 크게 반발했다. 양공 휘하 백전노장 선진(先軫)은 간 크게도 임금 얼굴에 ‘침’을 뱉었다. 허나 양공은 진(秦)나라 장수들 석방 때와 마찬가지로 선진에게도 아무런 처벌 가하지 않았다. 비록 선진은 뒤늦게 제 잘못 깨닫고 자결했으나, 자연히 권문세족(權門勢族)들은 임금 알기를 우습게 알게 됐고 군신(君臣) 간 기강은 무너졌다.
영공(靈公)은 더 한 인물이었다. 그가 양공에 이어 즉위했을 때 나이는 매우 어렸다. 때문에 훗날 삼진(三晉) 중 하나로 독립하는 조씨(趙氏)가문 당주 조돈(趙盾)이란 신하가 섭정(攝政)했다.
영공은 장성(長成)하면서 지혜와 위엄으로 권신(權臣) 다스리는 대신 무자비한 폭력 휘둘렀다. 사소한 실수마저도 트집 잡아 사람 죽이길 즐기던 영공은 급기야 “이러시면 안 됩니다”는 조돈을 암살하려 들었다. 무능한 영공은 명색이 임금이면서도 역(逆)쿠데타에 실패했으며, 조돈의 사촌동생 조천(趙穿)에게 무기력하게 목숨 잃었다.
“숙적격파” 자만하다 X간 빠진 경공
양공‧영공으로부터 바통 이어받은 경공 또한 썩 현명하지 못하면서도 자만심만 하늘 찔렀다. 명(明)나라 때 출판된 연의(演義)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에서 경공은 폭군으로도 그려진다.
경공은 사구(司寇‧법무장관 격)로 임명한 도안고(屠岸賈)란 인물 앞세워 숙적(宿敵)인 조씨 일가 숙청까지는 성공했다. 임신 중이던 조돈의 며느리 등 소수만 살아남았으며, 며느리는 조무(趙武)란 아들을 낳았다. 조무는 공손저구(公孫杵臼)‧정영(程嬰)‧한궐(韓厥) 등의 도움으로 후일 복수에 성공한다. 이 이야기는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Voltaire)도 극찬한 중세 소설 조씨고아(趙氏孤兒) 모티브가 된다.
그러나 “나 봤지? 나 이런 사람이야”던 경공은 예상치 못하게 참 ‘더러운’ 방식으로 천벌(天罰)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리는 바, 식사 중이거나 비위 약하신 분께선 아래 내용을 스스로 필터링하시기 바란다.
진위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각색판 등에 따르면 조씨를 멸문(滅門)시켰다 착각하던 경공은 어느날 악몽을 꿨다. 억울함에 이승‧저승 사이를 떠돌다 경공 꿈에 등장한 원귀(冤鬼)는 “우리를 도륙낸 게 바로 네놈이로구나. 네놈도 저승길 데려가리라” 부르짖었다.
식은땀 흘리며 벌떡 일어난 경공은 해몽가(解夢家) 불러 이게 길몽(吉夢)인지 흉몽(凶夢)인지 물었다. 해몽가는 “죄 없이 죽은 이들의 조상이 저주를 내린 것이다. 그 원혼들이 분노하고 있다” 해석했다. 지레 놀란 경공은 “그들을 달랠 방법 없나” 재차 물었다. 해몽가는 고개 내저으며 “그들은 여간 원한에 사무친 게 아니다. (당신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내년 햇보리를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답했다.
“무슨 재수 없는 헛소리냐” 화를 벌컥 낸 경공은 이번엔 건강에 적신호 왔나 알아보려고 천하 명의(名醫)들을 찾아 불렀다. 한 때 박 터지게 싸웠으나 그 무렵엔 해빙기(解氷期)였던 진(秦)나라는 고완(高緩)이란 의국수(醫國手) 보내줬다. 진맥(診脈)한 고완도 해몽가와 마찬가지로 “큰 병이 들었다. 그 싹이 이미 심장‧횡격막 사이로 들어갔다. 그곳은 약도 통하지 않고 침도 닿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다” 고개 흔들었다.
경공은 뒤늦게나마 제 과거를 참회(懺悔)하는 대신 “난 답을 찾을 것이야. 늘 그랬듯” 외치며 평소처럼 지냈다.
정말로 그의 건강은 전혀 이상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이듬해 봄이 돼 햇보리 수확철이 되자 경공은 “그 요망한 해몽가놈 목을 베라” 의기양양히 지시하고는 햇보리 먹으려고 한 숟갈 떴다. 그런데 갑자기 아랫배가 요동치며 ‘폭풍배변’ 신호가 왔다. 화급히 화장지 챙겨 해우소(解憂所)로 내달린 경공은 해맑은 미소와 함께 역동적 괄약근 운동으로 모든 근심을 털어버렸다.
그런데 그 때, 경공이 이제 막 거사(巨事) 끝내고 햇보리 청국장 비벼 먹을 꿈에 젖어있을 바로 그 순간, 온 뒷간 대들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경공은 중력(重力)‧인력(引力)의 힘 만끽하면서 “꾸엑”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방금 자신이 배출했던 근심들 위로 자유낙하(自由落下)하고 말았다.
마치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 지켜보며 만유인력(萬有引力) 법칙 발견했듯, 도성 백성은 근심들을 향해 별안간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 거꾸로 처박힌 이 자유로운 영혼 생중계로 시청하며 본의 아니게 지구의 위대함을 목도(目睹)해야 했다. 그렇게 경공은 차마 자신이 구릿한 메탄가스 즉 방귀향내 맡으며 죽을 줄은 모른 채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돼 2000년도 더 지난 현대 인류의 배꼽을 탈출케 하고 있다.
방패도 결국엔 뚫린다
방탄(防彈)도 그런 방탄이 없을 것만 같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전격 처리됐다.
여당 말마따나 이 대표는 그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당선을 통한 불체포특권 획득, 당대표 출마‧당선을 통한 당권(黨權)장악 등 몇 겹의 방탄조끼로 자신을 둘러싸는 듯 했으나 결과적으로 생존에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등 추가 과정은 아직 남아 있다. 또 쇼인지 정말인지 의견은 분분하지만, 자칫 자해(自害)로 치달을 수 있는 이 대표 단식(斷食)에 따른 동정(同情)여론 형성 가능성 앞에 그의 구속이 내년 총선에서 여당을 뒷받침할 수 있겠냐는 의문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다만 체포동의안 가결 자체만큼은 이 대표 정치생명에 적잖은 악영향 끼칠 것이란 시각은 여야(與野)‧조야(朝野) 공통이다.
제 아무리 정치9단 자처하는 고수(高手)라 해도 아닌 밤중의 홍두깨는 피해갈 수 없다. “위기는 없다” 안심하며 이제 차려놓은 보리밥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경공이 어처구니없게 이승과 작별한 것처럼 말이다. 만약 정말로 씻을 수 없는 죄가 있다면, 이 대표와 개딸방탄단은 단식 및 묻지마 지지와 같은 더 이상의 몸부림은 그만두고 진심으로 과거를 참회하길 바란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