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chosun.com/opinion/journalist_view/2023/01/09/CD5M5YP6A5EMRITBDQS6UAZYUE
2015년 1월 국회에서 ‘세월호 피해 지원법’이 통과됐다. 여야가 모두 뜻을 모았다. 재석 181명 중 171명이 찬성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 등 피해자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자는 법안이었다. 이 법안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과 기업이 지갑을 열었다. 정부와 경기도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유족이 사는 안산시에 2017~2022년 6년간 지원한 세월호 피해 지원금만 110억원이다. 안산시 외 4·16 재단 등 관련 단체에 지원된 비용을 다 합치면 수백억원이다. 특정 사건 피해자 지원에 이렇게 많은 국비를 투입하는 건 드문 일이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로 겪은 국민적 충격과 아픔이 컸다.
세월호 피해 지원비로 요트 여행을 한 시민단체도 있었다. 이 여행에 세월호 희생자 유족은 없었다.
그런데 희생자 추모와 유족의 눈물을 닦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써야 할 국비 일부가 지난 6년간 엉뚱한 데 쓰인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자금 횡령, 부정 회계 처리 혐의도 포착됐다. 안산시에서 세월호 피해 지원비 수천만원을 타 낸 일부 시민 단체가 그 돈으로 수영장이 딸린 호화 펜션으로 놀러 갔다. 성수기에 요트를 타고 바다에서 먹고 마셨다. ‘현장 체험’ 명목으로 전주 한옥 마을, 제부도, 제주도 등에 외유성 출장을 갔다.
사건을 취재하며 끝까지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확인한 게 있다. ‘현장 체험에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모시고 가진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설마 다른 돈도 아니고 세월호 피해 지원비를 유흥비에 썼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 단체들이 간 풀 빌라(pool villa)에 유족은 없었다. 한 단체는 지원금으로 북한 김정은 신년사, 김일성 항일 투쟁의 진실 등과 같은 주제로 세미나까지 열었다. 세월호와 김정은이 무슨 관련이 있나. 안산시가 선거 목전에 세월호 예산을 아파트 부녀회나 ‘ㅁㅁ 공방’ ‘ㅁㅁㅁ 모임’ ‘ㅁㅁ동 지킴이’ 등 동네 소모임이나 자치위원회에 집중적으로 100만~500만원씩 뿌린 정황도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정의를 부르짖고 피해자를 위해 모든 걸 다 내줄 것처럼 큰소리친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상하게도 세월호 지원금 부당 지출 사건에는 분노하지 않는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건가, 뭔가 찔려서 말을 못하는 건가.
세월호 추모 사업 재단법인인 ‘4·16 재단’은 지난해 내부 감사에서 연간 30억~4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헤프게 쓰고 회계 처리도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내부에서도 “돈 문제가 계속되면 재단 신뢰성은 물론 참사 피해자들의 명예도 실추시킬 수 있다”는 자성 목소리가 나왔다. 지금이라도 정치권은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을 정쟁의 불쏘시개로 삼으려는 생각을 접고,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노석조 기자
시간이 좀 지나더라도
순차적으로 감사를 진행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