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성남시장 재직 시절 '대장동 사건'과 더불어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의 실체가 여전히 안개속인 가운데 뉴데일리가 개발업자 정바울과 사건 관련자들의 검찰조서를 단독 입수했다. 600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검찰 수사 기록에는 이른바 '내부자들의 거래'가 이뤄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보는 의혹의 눈초리가 이 대표를 향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 수사 내용을 토대로 의혹의 숨겨진 흑막(黑幕)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경기 성남시 백현동의 한 아파트 뒤편에는 높이 50m, 길이 300m의 거대한 수직 옹벽이 서있다.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를 개발해 건축된 이 아파트는 지난 2017년 1223가구에 분양돼 2021년 6월 입주를 시작했다. 아파트는 부지를 넓히기 위해 산을 수직으로 깎아내린 탓에 토사물 유입을 막기 위한 옹벽 설치가 불가피했다. 옹벽이 아파트의 삼면을 둘러싸고 있어 사실상 10층까지는 지하에 파묻힌 형태다. 옹벽과 아파트 간의 거리는 10m도 채 되지 않아 저층 세대는 '옹벽뷰'를 볼 수밖에 없다.
한눈에 봐도 위태위태한 '옹벽 아파트'가 건축된 배경에는 성남시와 토건비리 세력의 고루한 유착관계가 숨어 있다. 지난 2021년 온 나라를 뒤흔든 '대장동 사태'에서도 드러난 시행사의 과도한 수익과 횡령·배임, 인허가 로비 등 각종 불법 행위들이 백현동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해당 아파트 개발사업의 시행사인 '성남알앤디PFV'는 성남시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아 개발사업을 진행했다. 자연녹지보전지역이였던 부지는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나 용도가 상향됐고 개발 과정에서 공기업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배제되면서 사실상 사업이 시행사의 손안에서 움직이게 됐다. 시행사의 사주는 이를 기화로 자회사를 통해 수백억 원의 자금을 횡령했다. 성남시가 받아야 할 기부채납 비율도 재조정 돼 시행사의 수익성이 극대화됐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대표는 2012년 10월께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일원에 있는 한국식품연구원 부지가 8차례 유찰되는 등 매수자가 없다는 정보를 듣게된다.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자연녹지보전지역임에도 땅값이 비쌌기 때문인데 이에 정 대표는 성남시에 인허가 청탁을 해 부지의 용도변경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용도변경·공사 배제·기부채납 비율 조정 등 '특혜 종합세트'
본보가 단독 입수한 정 대표의 검찰조서 내용에 따르면 그는 2012년 늦가을께 용도변경을 위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인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에게 접근했다. 김 전 대표는 2006년부터 이 대표의 성남시장 출마와 재선 등을 도운 인물이다. 2008년~2010년에는 민주당 분당갑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이 대표,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정 대표는 이후 김 전 대표, 성남시 공무원들과 수시로 만나며 청탁을 했다. 특히 정 대표는 김 전 대표가 지난 2015년~2016년 '성남 빗물 저류조 공사 비리 사건'으로 구속돼 있는 상태에서도 부동산 업자인 김모씨를 통해 김 전 대표와 서신을 주고받거나 정 전 실장 등과 수시로 면회하며 사업 방향을 논의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정 대표는 지난해 4월11일 진행된 검찰의 1회차 조사에서 "김 전 대표는 이재명, 정진상과 친분이 두터운 관계로 성남시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다"면서 "백현동 개발사업에 각종 인허가 등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부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정 대표와 김 전 대표를 기억하는 개발업계 한 관계자는 "둘은 돈을 목적으로 '동고동락(同苦同樂)'한 동업자였다"며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와 사건 관련자들의 검찰조서 내용을 보면 정 대표는 매우 치밀하게 로비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확인된다.
정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김 전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김 전 대표는 자신이 성남시 공무원들과 수시로 통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내 앞에서 보여주기도 했다"며 "이후 거의 김 전 대표와 매일 만나면서 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용도변경 1차 제안이 반려됐을 때는 따져 물으니 김 전 대표가 '진상이(정진상 전 실장)가 잘해주려고 그랬대, 한 번만 더 서류를 맞춰서 넣어보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성남시는 이처럼 치밀하게 계획된 정 대표의 청탁과 김 전 대표의 로비에 따라 2015년~2017년 백현동 아파트 개발사업과 관련해 ▲성남도시개발공사 참여 배제 ▲단독 개발 시행 ▲주거용도 위주 용도지역 변경 ▲임대아파트 비율 및 기부채납 축소 ▲지구단위계획 및 주택건설사업 계획 등을 순차적으로 승인했다.
성남시의 용도 변경 허가로 성남알앤디PFV는 해당 부지에 고층 아파트를 건축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정 대표는 2014년 12월 시행사 '성남알앤디PFV'를 설립하고 2015년 10월 부지를 매입하면서 아파트를 건축을 본격화한다. 공기업의 사업참여가 배제되고 기부채납 비율이 축소되면서 시행사의 수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특히 아파트 단지 내 옹벽의 경우 법에 따라 설치 기준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이 아파트는 성남시의 용인 하에 규정을 피해갈 수 있었다. 산지관리법 시행 규칙에 따르면 옹벽의 수직높이는 15m를 초과할 수 없고 비탈면의 수직높이가 5m 이상일 경우에는 5m 이하 간격으로 너비 1m 이상의 소단(옹벽과 옹벽 사이 수평구간)을 설치해야 한다.
결국 성남알앤디PFV는 부지 11만1265㎡를 개발하고 아파트 1223세대(민간임대아파트 123세대)를 건설·분양해 2022년 말 기준 매출액 1조347억 원, 분양수익 3185억 원을 올렸다. 정 대표는 신탁 등을 통해 성남알앤디PFV 20%를 보유한 배우자와 함께 배당이익 약 700억 원을 얻었고 성남알앤디PFV와 자산관리 위탁계약을 맺은 아시아디벨로퍼를 통해 위탁수수료 약 365억 원을 챙겼다.
◆"김인섭, 로비 대가로 수익금의 50% 요구했다"
정 대표에 대한 검찰조서 내용에는 김 전 대표가 정 대표에게 로비 대가를 요구하는 대목들이 상세히 나와 있다.
정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당초 로비 대가로 200억 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 대표는 3회차 검찰 조사에서 "김 전 대표가 (백현동 부지가 개발하면)200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업지냐"고 물어봤다고 주장했다. 또 "김 전 대표가 대관작업 비용과 후배들에게 줄 떡값이 필요하다면서 로비 과정에서도 돈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고도 말했다.
이에 정 대표는 '현금 200억 원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다'며 대신 김 전 대표에게 성남알앤디PFV 지분 10%을 넘기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김 전 대표가 계속해 현금을 요구했기 때문에 정 대표는 소송을 통해 지분을 빠르게 현금화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주식양도 계약을 체결한 뒤 소송을 제기해 지분 대신 합의금 성격의 현금을 받아가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정 대표는 2016년 5월 김 전 대표가 출소하자 김 전 대표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는 김 전 대표에게 백현동 개발사업 시행사 성남알앤디PFV의 지분 25%(25만 주)를 주당 5000원(총 12억5000만 원)에 넘긴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약 체결 과정에서 둘 사이의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김 전 대표가 2016년 출소 이후 황당하게 지분의 50%를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정 대표는 아시아디벨로퍼가 보유한 성남알앤디PFV 지분도 전부 46%에 불과하다며 김 전 대표에게 호소했고 결국 지분 25%를 넘기는 것으로 합의했다.
정 대표는 당시 2016년 4월 25일 제출한 지구단위계획 수립 제안이 한 달여 동안 통과되지 않으면서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김 전 대표의 지분 인상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검찰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그는 "도시계획위원회 당시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 후 3년 이내에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실효되도록 됐기 때문에 사업의 존폐가 달린 상황이라 생각하고 김 전 대표에 매달리 듯이 이야기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대표는 2017년 12월 계획대로 정 대표를 상대로 주식양도 소송을 제기했다. 정 대표는 2020년 8월 항소심 과정에서 김 전 대표에게 지분 대신 합의금 성격의 현금 70억 원을 지급하기로 하고 두 차례에 걸쳐 로비 대가로 74억5000만 원을 전달했다.
정 대표는 2015년 9월~2017년 4월 김 전 대표에게 수시로 돈을 요구받아 7차례에 걸쳐 회삿돈 2억5000만 원을 넘기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김 전 대표에게 넘어간 액수는 총 77억 원에 달했다.
◆정바울, 자회사 등 활용해 482억 횡령
정 대표는 지난해 6월27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배임) 위반 등 12가지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2013년 7월부터 지난해 3월 공사·용역 대금을 과다지급하는 수법으로 아시아디벨로퍼와 성남알앤디PFV, 토목업체인 영림종합건설, 분양대행업체인 지에스씨파트너스 등 본인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법인들의 회삿돈 482억3974만 원 상당을 배임·횡령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정 대표는 지난해 10월 재판부로부터 전립선암 수술 전력과 재발 가능성을 이유로 보석을 허가 받아 현재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한편 정 대표가 사업을 진행할 당시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12일 김 전 대표의 청탁에 따라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사업에서 배제해 손해를 입히고 민간업자에 이익을 몰아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배임) 위반 혐의로 정 전 실장과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이 사건을 이 대표의 대장동·위례·성남FC 사건과 병합시켰고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총경 출신 곽정기 변호사와 임정혁 변호사 등에 대한 재판도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밖에도 검찰은 경기 용인 상갈지구 부동산 개발 인허가 청탁을 알선해주는 대가로 정 대표 소유의 부동산 개발회사 등 6개 업체로부터 수억 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전준경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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