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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열흘 전인 지난 9일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언급하면서 그 배경에 궁금증을 자아냈다.
사실 그들은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직접 수사를 지휘한 '사법농단' 사건으로 구속한 인물들이었다. 윤 대통령은 석방 당시 "과거 구속 기소당했던 분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런 분들 생각이 많이 났다"며 "과거 구속됐던 분들 얼굴이 많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아마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영장 쇼핑'이라는 희대의 편법으로 자신을 구속시킨 것을 견주어 양 전 대법원장과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으로 생각된다.
양 전 대법원장과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도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인권법) 출신 오동운 공수처장에게 억울하게 체포돼 구속 수감된 측면이 있어서다. 체포영장을 발부해 준 판사도 우리법연구회(이하 우리법) 출신 판사였고 공수처가 선택한 법원 역시 우리법·인권법 회장을 지낸 정계선 헌법재판관이 원장으로 있던 서부지법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의 '판사 쇼핑'으로 구속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양 전 대법원장은 시종일관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영장 청구를 반복했다.
이 와중에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이 세 명이던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 판사를 네 명으로 늘렸다. 추가된 한 명은 10년 정도 검사 생활을 하다 전직한 명재권 부장판사로, 그가 양 전 대법원장 관련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그는 당시 사법농단 수사팀을 이끌고 있던 한동훈 3차장 검사와는 연수원 동기였다. 게다가 2019년 조국 법무부장관의 동생 조모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기도 했다.
마치 윤 대통령을 체포·구속한 공수처의 행태를 '법원 쇼핑'이라고 한다면 전담 판사를 달리하며 영장을 발부받았던 당시 김명수 사법부는 '판사 쇼핑'으로 불러도 무방할 듯 싶다. 명 부장판사는 이후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까지 발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후 법정에서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 쪽에 달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고 항변했다. 법원은 지난해 1월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탄희 의원에서 시작된 '사법농단'…김명수 대법원장이 마무리사법농단 사태는 2017년 당시 인권법 판사였던 이탄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았다 취소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법원행정처가 양 전 대법원장에 비판적이었던 인권법 학술대회를 축소하라고 지시했지만 이 판사가 항의해 발령을 번복했다는 내용이다. 이 판사는 당시 사직서를 제출했다.
논란이 커지자 양 전 대법원장은 2017년 3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체 조사에 나섰다. 조사가 진행되던 그해 4월 대법원이 인사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특정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법원은 블랙리스트 의혹은 허위라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의 자체 조사가 '부실 조사'라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전국 법원의 대표 판사들이 처음으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구성해 재조사를 요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이 퇴임하고 우리법·인권법 회장을 역임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취임하면서 블랙리스트 의혹을 추가 조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법원은 2018년 1월과 5월에 2차, 3차 조사를 진행했고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문건과 판사 사찰 문건을 발견해 공개했다. 다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블랙리스트 문건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추가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민중기 부장판사는 우리법 창립 멤버였다. 조사위원도 성지용 서울고법 부장판사, 최한돈 인천지법 부장판사, 최은주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안희길 서울남부지법 판사 등 4명이 인권법 소속이었다. 나머지 김형률 부장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 간사였다.
이후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는 2018년 6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사건을 재배당하며 개시됐다. 검찰은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꼽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네 차례 소환조사한 뒤 2018년 10월 구속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다. 그 다음달 임 전 차장을 구속기소했다. 이어 12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2019년 1월 헌정 사상 최초로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당시 김명수 사법부는 영장 전담판사 추가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고 그해 2월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2019년 3월에서야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등 전·현직 판사 10명을 추가로 기소하고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 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다.
하지만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14명은 대부분 무죄를 선고 받았다. 법원행정처 법관들이나 수석부장판사 등에게 일선 재판부의 판단에 개입할 권한이 없고 각 재판부는 법리에 따라 합의를 거쳐 판단했을 뿐이어서 권리행사를 방해받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수적인 색깔을 띠고 있던 '양승태 사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무리한 수사였던 것이 증명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이 피해를 본 것이다.
◆'사법농단' 통해 물러난 자리에 인권법 출신들로 대폭 물갈이이를 계기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인권법 출신들은 사법부 핵심 그룹으로 떠올랐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던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장으로 발탁됐다. 민 법원장은, 임기 2년을 채운 법원장은 일선 재판업무로 복귀하는 법원장 순환보직제 관례를 깨고 3년간 유임됐다. 당시는 문 정부의 적폐 청산 관련 사건이 중앙지법으로 쏟아질 때였다.
민 법원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성지용 중앙지법원장도 인권법 회원이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1차 조사 때 조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를 지낸 고연금 부장판사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1차 조사위원이었다. 이들이 중앙지법 핵심 직책에 있는 동안 정치 편향 논란이 더욱 고조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맡았던 윤종섭 부장판사도 인권법 출신이다. 윤 부장판사는 중앙지법에서 6년간 유임되다가 이 사건에서 유일하게 유죄 판결을 내린 뒤 서부지법으로 전보됐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도 김 대법원장 취임 후 대폭 물갈이가 이뤄졌다. 2021년 2월 정기인사때 대법원 재판연구관 97명 중 33명이 인권법 소속으로 분류됐다. 법원의 인사·예산 등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도 이때부터 인권법 소속 법관들이 요직에 올랐다. 당시 전국 지방법원장 41명 중 10명이 인권법에 몸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법관대표회의 통해 인권법 세상 만들어…윤 대통령이 처한 현실
김 전 대법원장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과 제도,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인권법 출신 법관들을 적극 활용했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상설기구가 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대표적이다.
2018년 전국 각급 법원 판사 119명으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최기상 당시 북부지법 부장판사를 의장으로, 최한돈 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부의장으로 선출했다. 윤 대통령 국회 측 탄핵소추단을 이끌고 있는 최기상 현 민주당 의원은 우리법 출신으로,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판사 동향 파악,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를 앞장서 공론화했다.
부의장인 최한돈 부장판사는 인권법 출신으로, 추가조사위원회에 소속돼 판사 동향 문건의 존재를 밝히는 데 기여했다. 그밖에 구성원의 절반 가량이 인권법 출신들로 알려졌다. 아무런 권한이 없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 때부터 사법행정에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상설기구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법원행정처의 비법관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 법원장 추천제 등을 제도화하면서 자신들과 이념 성향이 비슷한 인사들을 요직에 앉혔다. '고위 법관'을 꿈꾸는 판사들이 자력으로 승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사라지면서 유능한 법관들이 줄줄이 퇴직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결국 윤 대통령이 맞닥뜨린 사법부가 지금의 모습이다. 인권법 출신들이 공수처, 각 급 법원, 법원행정처, 법제처, 헌법재판소까지 포진하며 윤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비록 자신이 수사했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양 전 대법원장을 떠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계 한 인사는 "윤 대통령과 변호인단이 법적 절차를 문제삼으며 '영장 쇼핑'이라는 말로 공수처를 비난할 때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떠올랐다"면서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이래서야 국민들이 사법부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3/18/20250318002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