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12·3 쿠데타와 미국 1·6 사태 비교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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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미국 ‘1·6 사태’를 복기해보면 한국의 비상계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윤석열과 트럼프는 부정선거를 고리로 움직였다. 이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민주적 방법을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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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 의사당에 난입했다. ©EPA
12월3일. 평범하게만 흐르던 한국 정치의 시계가 멈추고 위기와 불확실성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일상에도 균열이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현재와 미래를 다루려던 이번 기고도 그의 과거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미국 시민이 한국의 비상계엄을 보며 떠올렸을, 4년 전 2021년 1월6일을 돌이켜보면 현 한국의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진입하던 모습은 2021년 1월6일 미국의 폭도들이 의회 의사당의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군인, 미국은 시민이었다. 시민들이 계엄을 막아달라고 국회 앞에 모인 모습을 보고, 미국 언론인들은 ‘역1·6 사태(Reverse January 6)’라고 평했다. 미국 시민 그리고 언론인들은 한국 국민의 위대함을 칭송하며, 마음 한편으로는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6 사태의 주역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하는 일의 반복 말이다. 미국 시민에게 충격을 준 1·6 사태를 이끈 트럼프는 어떻게 백악관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1·6 사태 이후 미국 국민이 느낀 충격은 상당하다. 1812년 미·영 전쟁에서 의회 의사당이 영국에 점령당한 이후 의사당이 폭력적 침공을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퓨리서치 센터가 1·6 사태 며칠 뒤인 1월8~12일 여론조사로 미국 국민의 반응을 물어보았다. 충격과 공포 35%, 나라에 대한 우려 14%, 트럼프와 공화당 비난 13%, 불법 테러와 쿠데타 시도 8% 등 부정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1·6 사태의 실체를 부정하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트럼프 지지자가 아니’라는 의심 8%, 민주당 탓 5%,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와 같은 시위와 다름 없음’ 4%와 같은 반응도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었다.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비율이 10%, 비상계엄이 내란이 아니라는 응답이 24%인, 12월10일 발표된 한국갤럽 설문조사 결과와 유사한 면모가 있다.
1·6 사태 직후 나온 트럼프의 책임을 둘러싼 반응도 트럼프가 4년 뒤 정치적 면죄부를 받을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고했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 트럼프에게 1월6일 사태 책임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매우 크다(52%)’와 ‘어느 정도 있다(23%)’를 합친 75%가 트럼프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하지만 상당히 큰 비중인 24%는 트럼프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를 정당 지지별로 보면 차이가 매우 극명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95%가 트럼프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52%만이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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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가 부각한 트럼프의 존재감
12월10일 발표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90%가 내란이라고 본 데 비해 국민의힘 지지자는 63%만 내란이라고 보았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권한을 행사한 정당한 행위’라는 항목에 국민 전체 중 16%만 공감했는데, 국민의힘 지지자는 52%가 공감한 것도 비슷한 양상이다. 민주 질서를 뒤흔든 각각의 사건을 두고 미국과 한국 모두 정당 지지자 간 인식의 양극화가 명백히 드러난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1·6 사태 사태 직후에도 유지하고 있었던 집단은 누구일까?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도 지지를 철회한 사람과 유지한 사람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트럼프를 계속 지지한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버드 대학의 이태구, 키아라 헤르난데스, 마르셀 로만의 연구에 따르면, 인종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백인의 우월적 지위를 잃을 것이라고 위협감을 느끼는 시민과 그렇지 않은 시민을 1·6 사태 전후로 비교해보았다.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 ‘백인이 당하는 역차별이 전혀 없다’고 응답한 공화당 지지자는 1·6 사태 이후 트럼프 호감도와 국정 지지도가 11~12%포인트 정도 하락했다. 그런 반면 ‘백인이 당하는 역차별이 매우 심하다’고 응답한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호감도와 국정 지지도에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1·6 사태 이후 〈시사IN〉 기고(제697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인종주의야’ 기사 참조)에서 다룬 바와 같이 인종적 적대감이 높을수록 반민주주의적 태도에 동의한다는 연구와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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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태에 많은 시민들이 가담하게 한 원동력은 트럼프가 제기한 선거 부정 의혹이었다. 총선에서 선거 부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윤석열 대통령 및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믿었다는 점도 미국의 1·6 사태와 유사하다. 선거 부정 의혹은 1·6 사태와 비상계엄 선언의 이유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트럼프가 지난 4년간 공화당 내 존재감을 부각해준 촉매제가 바로 선거 부정 의혹이었다. “2020년 대선 때 누가 승리했습니까?” 지난 4년간 공화당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바이든이 승리했다면서 2020년 대선이 부정 없이 치러졌다고 말하면, 트럼프에 대해 충분히 충성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2년 미국 중간선거의 공화당 경선에서도 많은 후보가 이 질문에 ‘잘못’ 답해서 떨어졌다. 많은 공화당 정치인이 선거 부정 의혹에 동조하면서 자연스럽게 1·6 사태를 비판하지 못하게 되었다. 부통령 당선자인 J. D. 밴스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2020년 대선 승리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다섯 번이나 회피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난 4년간 미국에선 선거 부정에 대한 여론조사가 수없이 이뤄졌다. 지난달 트럼프의 승리 전까지 부정선거에 대한 여론은 (트럼프 입장에서) 안정적이었다. 1·6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서 않은 2021년 5월 로이터-입소스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민 28%가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응답했다. 공화당 지지자로 좁히면, 응답자 59%가 부정선거였다고 믿었다. 2년이 지난 2023년 6월 몬머스 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미국 시민 전체 중 30%, 공화당 지지자 중 68%가 2020년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보았다. 공화당 지지자는 지난 4년간 어느 조사에서나 절반 이상이 트럼프의 패배를 부정선거 탓이라고 봤다.
한국은 어떨까? 2020년 총선 이후 일부 보수 유권자 사이에서 부정선거에 대한 믿음이 확산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의혹이었지만 일부 학자의 문제 제기로 이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미시간 대학의 월터 미베인 교수가 2020년 한국의 총선 개표 데이터를 분석하고 민주당 득표의 약 10%가 부정에 기인했다고 발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가 외국에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객관성과 부정선거 연구자라는 권위에 힘입어 의혹에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 같은 착시효과를 낳았다. 미베인 교수의 이름을 담은 언론 기사가 312편이나 쏟아질 정도로 파급력은 막강했다. 미베인 교수가 한국 개표 결과 데이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분석해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의 연구 결과는 대중에게 널리 공유되었다.
국민의힘 강성 지지자를 뭉치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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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베인 교수가 한국 선거관리의 신뢰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을까? 부정선거 논란이 많았던 2020년 총선에 대한 여론조사는 그리 많지 않다. 여론을 유추해볼 유일한 방법은 내가 성균관대 이동성 교수와 연세대 이인복 교수와 함께한 연구를 통해서다. 미베인 교수의 연구 결과가 한국 여론에 미친 영향을 밝히기 위해 진행한 연구다. 우선 대중이 얼마나 미베인 교수 연구에 노출되었고 관심을 보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네이버 검색량을 확인해보았다. 〈그림 3〉에서 ‘미베인’과 ‘민주당’을 비교해보니 미베인 연구가 알려진 그해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미베인을 검색한 양이 민주당을 검색한 양을 상회했다.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을 검색한 양보다 많은 검색량을 보였다는 사실 자체에서 미베인 교수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미베인 연구가 얼마나 많은 유권자의 마음을 바꿨을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 설문 실험을 시행해보았다. 2020년 6월 초에 성인 178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 응답자를 무작위로 셋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정보를 주었다. 통제군에게는 선거 부정 논란이 있다는 사실만 밝힌 반면, 2개 처치군(treatment group)에게는 미베인 연구와 유사한 연구 요약을 제시했다. 처치군은 실험에서 연구진에 의해 적극적인 개입을 받는 집단인데, 백신 실험의 예를 들자면 백신을 처치받는 경우라 할 수 있고, 본 연구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소개받은 집단을 일컫는다. 두 처치군에게 연구 결과를 다르게 제시했다. 한 처치군에게는 선거 부정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한 반면, 다른 처치군에게는 희박하다고 소개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정보를 보여준 후, 응답자들이 2020년 총선에 선거 부정이 있었는지 물었다.
실험을 분석한 결과 선거 부정의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연구 결과를 읽은 처치군의 응답자들은 통제군에 비해 12%포인트 더 높은 확률로 2020년 총선이 부정이었다고 답했다. 통제군의 22%만 선거 부정이었다고 응답한 것과 비교하면 52%나 상승한 수치다. 그렇다면 이러한 효과가 주로 어떤 유권자에게 나타나는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국정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유권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15%포인트 더 높은 확률로 2020년 총선이 부정이었다고 응답했다. 국정 평가가 긍정적인 유권자들은 4%포인트만 증가하고, 이조차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이 연구 결과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처치군 응답자들의 34%, 처치군 중 국정 평가 부정적 응답자의 53%가 선거 부정이 있었다고 동의하는데, 이는 지난 4년간 미국 여론조사에 나타난 ‘선거 부정론’ 공감층의 비율, 미국 시민의 30%, 공화당 지지자의 60%와 매우 유사한 수치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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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 대선에서 당선한 트럼프. ©AP Photo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민주적 방법을 동원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에서 1·6 사태 이후 트럼프를 버티게 해준 것은 극단적으로 인종적 태도를 가진 트럼프 핵심 지지자들이었다. 이들은 선거 부정이라는 데 깊은 믿음을 갖고 있었고, 트럼프는 이들을 중심으로 4년간 공화당의 중심을 차지했다. 향후 한국에서도 만약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정당 양극화가 유지되고, 미국의 인종이나 선거 부정 같은 어떤 동기가 일부 국민의힘 강성 지지자들을 뭉치게 한다면, 비상계엄에 대한 수정주의적 태도가 만연하게 될 위험이 적지 않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자 간 정서적 양극화가 향후에도 지속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