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6차 한미안보협의회(SCM) 직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비핵화' 표현이 빠졌다. 2016년 이후 SCM에 "북한의 비핵화와 도발 중단",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등 '비핵화'가 기본문구로 포함됐으나, 9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정부는 "한미동맹에서 비핵화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면서 일부러 뺀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공동성명의 다른 문구를 넣고 빼다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번 SCM에는 '비핵화' 표현이 빠졌지만 '핵 억제', '핵 개발 단념과 지연' 등의 표현이 들어갔다. 단순 실수로 누락됐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핵 위협 축소에 집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북핵 용인이 전제라는 점에서 충격적이기도 하다.
이튿날 열린 양국 외교·국방장관 간의 '2+2' 회담 공동성명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포함됐지만, 앞서 SCM에 '비핵화'가 빠진 것을 두고 한국에서 우려가 커지자 양국이 수습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측 의도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올 들어 미국에서는 '북 비핵화' 표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올해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내놓은 정강·정책에 북한 비핵화가 포함되지 않았다. 3월 백악관 선임 보좌관은 "한반도와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조치'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게다가 북한은 31일 미국 대선을 코앞에 둔 '중요한 시점'에 신형 고체 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보이는 발사체를 쏘아 올렸다. 러시아와 동맹관계를 '혈맹'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곧 선출되는 새 미국 대통령을 향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북미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자칫 북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등 미국 외교정책이 급격하게 변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명분이 약해지고, 한국의 안보전략은 근본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된다.
더군다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속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브로맨스'를 과시해왔다. 백악관으로 복귀하게 되면 김정은 위원장과의 '직접협상'이 가능해질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우리가 빠진 상태에서 한반도와 관계된 중요 결정이 내려지는 '한국 패싱'이 발생할 수 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하면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큰 틀에서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버락 오바마 행정부부터 이어진 '전략적 인내' 정책이 유지되며 북핵 문제는 '방치'된 채 그로 인한 부담만 우리가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입장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국의 목표는 핵 비확산이다. 반면 한국의 지상과제는 북핵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결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미국은 북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하면 북한과 '핵 군축' 협상으로 전환하면서 한국의 핵 개발을 감시하게 될 것이다. 핵 군축은 김 위원장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대북 제재가 해제되는 상황을 뜻한다. 우리 안보에는 재앙이다.
이틀 남은 미국 대선 판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승세를 타고 있었으나, 승부를 결정지을 7대 경합주의 우열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우리 정부는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미국의 새 행정부가 양국 동맹 가치가 존중되고, 우리의 안보이익을 희생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이고 전방위적인 대미 외교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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