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직을 공식 수락하면서 11월 대선구도가 확정됐다.
종전 유력 후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토론에서 참패하면서 침체한 민주당 분위기를 다잡으면서 반전에 성공, 한때 재선이 유력해 보였던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결도 '초박빙'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양당의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정책 기조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만큼 누가 당선되더라도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다층(多層)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반도체와 2차전지, 자동차 등 산업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가 확대되고 있어 산업계가 법인세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양당 체제에 대응한 두 전략을 모두 세워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날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공식 수락한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서로 극명하게 대조되는 대외정책 기조를 갖고 있다.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보는 글로벌 정세 판단이나 군사력 증강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대동소이하지만,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인 동맹과 관계에 있어서 정반대의 접근법을 취하고 있어서다.
글로벌 문제 대응을 위해 소(小) 다자동맹 네트워크를 다층적으로 구축한 바이든 정부를 계승하는 해리스 부통령은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힘을 통한 평화' 공약을 내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동맹관계에서도 미국 국익 우선 및 동맹의 책임분담을 부각하고 있다.
나아가 여성 검사 출신인 해리스 부통령이 대외 문제에서도 인권 등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빅딜' 경험을 가진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안 해결 측면에서도 독재 국가의 수장인 이른바 '스트롱맨'과의 개인적 친분에 더 집착하는 것도 대외정책 기조 측면에서 큰 차이점이다.
이는 이날 해리스 부통령의 수락연설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을 버리지 않고 우크라이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우리의 우방국과 함께할 것"이라며 "트럼프와 친하게 지내고 아첨하는 편지를 써서 (미국 대통령을) 이용하려 하는 김정은 같은 독재자, 폭군과 가깝게 지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각)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의 대담에서 "나는 푸틴(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중국 국가주석)을 잘 안다"면서 "나는 그들이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터프하고 총명하며 사악한 사람들이며 자기들 게임의 정상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 재임 중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잘 지냈으며 푸틴 대통령의 침략 행위를 자신이 억제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정은 위원장과 싱가포르, 베트남에서 회담하고 판문점에서 그와 함께 북한 땅으로 넘어가기까지 했다고 소개한 뒤 "놀라운 시기였다"면서 김 위원장과 자신의 좋은 관계로 인해 미국에 북한발 위험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불안정성이 커진 글로벌 정세가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인세율은 대조적-자국 우선주의는 판박이…政, 우리 기업 위해 다층전략 마련해야경제정책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큰 틀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식료품 폭리 제한, 중산층 세제 혜택 확대 등 빈곤층과 중산층 유권자를 겨냥한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규제 완화와 감세, 기술혁신 장려 등에 방점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증세 대 감세'로 맞붙은 법인세율이 가장 눈에 띈다. 해리스 캠프는 정부 수입을 늘리고자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법인세율이 28%로 오를 경우 영국, 프랑스의 25%보다 높아지는 것으로, 서방 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법인세율을 15%로 내리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는 2017년 임기 첫해 법인세율을 최고 35%에서 21%로 낮춘 바 있다. 이 세율은 내년 말 만료된다.
다만 세율 변동은 의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만큼 11월5일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연방 상·하원 선거에서 민주, 공화 중 어느 당이 의회 권력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최종 법인세는 달라질 전망이다.
김봉만 한국경제인연합회 국제본부장은 "한국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법인세 인상·인하 여부는 국내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양당의 정강·정책을 보면 인프라 투자, 공급망 재건, 제조업 부흥 등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공통적이다.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기술분야의 공급망 재건, 대중국 수출 통제 강화 등을 통해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AI, 반도체, 양자 컴퓨팅 기술을 포함한 첨단기술분야는 물론, 철강과 전기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 대중국 관세 인상 조치로 예고하고 있는 만큼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반도체를 포함한 자국 첨단기술산업 강화와 보호는 예고된 셈이다.
이에 수출을 기반으로 내수부문 온기 확산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 내 투자 압박과 대중 수출 등에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대중 관세가 오르면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중국이 보복에 나서면서 글로벌 무역질서가 흔들려 불안정성이 가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가 미국 및 중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만큼 '다층전략'을 마련해 어느 쪽이 정권을 잡던지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봉만 본부장은 "양당의 정책기조가 지난 대선보다 더 확연한 차이를 포여 플랜 A, B 모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특히 반도체, 2차전지, 자동차 등 업종별 맞춤형 준비가 필요한 만큼 정책변화에 따른 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도 미국 대선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양병내 통상차관보 주재로 미국 대선 대응을 위한 주요국 상무관 화상회의를 열고, 미국 대선과 관련한 현지 동향과 주요국 대응 동향, 통상 이슈 등을 논의했다. 기획재정부도 현재까지 회의체 소집 등 당장 움직임은 없으나, 내부적으로 시나리오별 대응전략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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