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잇달아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2부(부장판사 지상목 박평균 고충정)는 22일 이미 사망한 강제노역 피해자 정모씨 자녀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일본제철이 유족에게 총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씨는 지난 1940∼1942년 일본 이와테(岩手)현의 제철소에 강제 동원됐다고 진술했고 유족은 이를 바탕으로 2019년 4월 일본제철에 2억여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날 같은 법원 민사항소7-1부(부장판사 김연화 해덕진 김형작)도 이미 고인이 된 강제노역 피해자 민모씨의 유족 5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일본제철이 유족들에게 총 8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민씨는 1942년 2월 일본제철이 운영하는 가마이시 제철소에 강제로 끌려가 약 5개월간 일했다. 민씨의 자녀 등 유족은 사망한 민씨를 대신해 2019년 4월 일본제철을 상대로 약 1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두 사건의 1심은 유족들이 일본제철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만료됐다고 보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지만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민법 제766조에 따르면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가 있었던 때로부터 10년 이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다만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시효가 정지된다.
강제노역은 이미 시효가 지난 사건이지만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인정돼 이를 해소된 시점부터 3년이 지나기 전까지 소송 청구 권리가 인정된다. 두 사건에 대한 판결이 뒤집힌 것도 '장애사유 해소 시점'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강제노역 피해자 4명은 2005년 일본제철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심 패소 후 2012년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돼 2018년 재상고심에서 최종 승소했다.
각 1심은 '장애 사유 해소 시점'을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2012년으로 보고 유족 측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이날 항소심은 재상고심에서 사건이 확정된 2018년 10월로 인정해 유족 측의 청구권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강제노역 피해자 유족을 지원하는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이날 선고 뒤 기자회견을 열고 "계속해서 강제동원과 관련한 청구서가 쌓여간다"며 "하루빨리 강제동원 기업들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배상할 수 있도록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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