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지와 대국민 여론 그리고 사법부 판단까지 의료개혁의 지향점은 의대증원을 향하고 있다. 집행정지가 기각돼 분수령을 맞았기 때문에 2025학년도 의대증원은 번복이 어렵다. 이제 의료계는 계속해서 투쟁할 것인지, 수긍하고 유리한 정책을 만들어갈지 갈림길에 서 있다.
전자로 중지가 모아지고 있으나 명분이 부족한 반대 논리를 고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간 정부보다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반대했다고 판단했겠지만, 이는 의사사회 내에서만 통용됐던 부분이다. 더는 환자 피해가 발생해선 안 되고 도산 직전에 놓인 수련병원 정상화를 위한 의사들의 입장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공감대 없는 투쟁이 심화할 경우에는 '의사 악마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애초에 정책을 반대하며 떠난 전공의들의 행위는 환자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고 그런 전공의를 보호한다며 환자보다 제자가 우선이라는 의대 교수의 발언은 상처를 남겼다.
특히 번 아웃을 호소하며 휴진을 결정한 후 의대증원 반대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한 것을 두고 의료계 내부에선 '전문가의 고민과 노력'으로 해석했지만, 진료가 밀린 환자들에게 거부감을 들게 했다. 생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데도 환자를 배려하는 모습이 없었던 것은 석 달간의 의료대란이 남긴 의사에 대한 공포 이미지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에게 편이 돼달라는 호소가 통할 리는 없었다. 그것을 바랐다면 욕심에 불과하다.
다양한 분석과 비판이 나오겠지만 현재로선 인구절벽과 고령화 시기에 접어들수록 건강보험 곳간이 축소되는 구조여서 기득권, 직역 이기주의, 고소득을 위한 반대라고 읽힐 수밖에 없다. 사법부 결정에 수긍하고 대국민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태의 심각성 속에서도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사가 대다수였다. 특히 집단 내 따돌림을 각오한 상태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들이 의사라는 직업적 가치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며, 비판 여론을 불식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의료계는 전향적 입장 전환이 필요하고 신속히 대화의 장으로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정부와 마주 앉아 건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인력 구성에 문제가 있는 의료개혁 특별위원회라고 할지라도 일단 참여해 필수의료 살리기를 위한 제도적 지원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어쩌면 의대증원을 인정하고 수가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정부의 정책 기조는 의사 확충만 이뤄지면 요구조건을 최대한 들어주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왜곡된 생태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일각에선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로 인해 사태가 일단락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오히려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졌음을 인지해야 한다. 의료계의 대법원 재항고가 남았고 숱한 소송이 얽혀있는 것은 물론 가장 중요한 의료공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전공의 없이 병원을 얼마나 운영할 수 있을지 위태로운 상황이다. 일선 병원장들의 호소처럼 지역의료부터 대형병원까지 줄도산 우려가 있기에 환자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승적 결정과 조치가 발동돼야 한다.
타 직역의 반발이 거세겠지만 국민 생명권 보호차원에서 전공의 이탈과 관련한 행정처분을 멈추고 복귀를 위한 구제책을 펼치는 것도 정부가 선택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일단 환자부터 살려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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