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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데일리TV] 중공 감옥에 갇힌 목사님··· 담당검사를 사위로 받아들여

뉴데일리

작년 6월 22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중공이 전국 곳곳에 설치한 감시카메라는 5억 대라고 합니다.중공은 감시카메라로 주민들의 사진과 목소리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습니다.여기에 중공은 범죄자 추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홍채, 뇌파, 염색체 등 주민들의 생체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게다가 중공은 올해 말까지 감시 카메라 6억 대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보도했습니다.이처럼 촘촘해진 중공 감시망 탓에 재중 탈북민 구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일례로 2019년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 목적으로 중국 동북 지역에 파견된 한 북한 엔지니어는 자신의 삶을 '새장 속에 같인 새'에 비유하며 "(탈북하다가)죽더라도 하루라도 자유를 느끼고 싶다"며 천기원 목사에게 탈북을 요청했습니다.천 목사는 이에 안면인식 기술(AI)과 감시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차를 갈아타는 계획을 세웠습니다.그러나 탈출을 돕던 브로커와 엔지니어 모두 중공 감시망을 결국 피하지 못하고 체포됐습니다.이에 대해 천 목사는 "24년간 탈북민을 구출해왔지만, AI기술 발달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최근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한탄했습니다.

천기원 목사는 1999년 두리하나선교원을 설립해 지금까지 1300명 가량의 탈북민을 구출했습니다.이 과정에서 천 목사는 2001년 12월 탈북자 12명을 데리고 몽골 국경을 탈출하다가 공안에 붙잡혀 8개월 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영하 40~50도의 추운 겨울 12월에 붙잡혀, 열악한 감옥 생활을 했던 그는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그러나 그의 두터운 신앙심으로 그를 취조하던 공안검사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꿔놓았습니다.천 목사를 취조하던 자전 검사는 매일 6개월 동안 "당신은 비법월경죄, 불법종교죄를 저질렀다. 교사한 자가 누군가"라고 같은 질문을 반복했습니다.그때마다 천 교사는 이렇게 맞받아쳤습니다."하나님이 교사했다.중국어 성경책에도 적혀 있다.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도우라'고 돼 있다.탈북자들이 모두 고아고 과부고 나그네다."

중국 공산당 형법에 따르면 공무원이 종교활동을 할 경우 면직될 수 있습니다.그럼에도 자전 검사는 천 교사의 신앙심에 감동해 어느 날 갑자기 "당신 성경책을 읽어봐도 되냐고"고 물어볼 정도로 변했습니다.이후 자전 검사는 공안 검사의 옷을 벗고, 천 교사의 딸과 결혼했습니다.자신이 취조했던 사람의 사위가 된 것입니다.천 목사도 수감 생활 220일 만에 풀려 나왔습니다.중국 공안 검사와 1300명 가량의 탈북민 삶을 바꿔 놓은 천기원 목사.<뉴데일리>는 천 목사를 만나 중공의 안면인식기술과 반간첩법으로 힘들어진 탈북민 구출 실태와 24년 사역활동 등 자세한 내막을 들어봤습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두리하나교회 천기원 목사입니다."

-구출한 탈북민은 몇명인가요?

"2000년 초부터 지금까지 구출한 탈북민은 1300명 가량입니다."

-중국 반간첩법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탈북민 구출이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탈북민 구출하는 브로커나 중국 사람들이 나서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우리들도 두려움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습니다.탈북민 구출을 막겠다는 중국의 조처인 것 같습니다. 심각한 사안입니다."

-중국의 안면인식기술로 탈북민 구출이 더욱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감시 카메라를 곳곳에 설치했습니다.중국 입국하면, 화면에 얼굴과 지문을 찍어야 합니다.의심이 가는 사람을 AI에 입력해두면, 그 사람의 동선이 쉽게 파악됩니다.어디를 가던, 위치가 노출됩니다.사람이 했을 때 잡기 어려웠던 동선을 AI가 쉽게 파악합니다.예컨대 5억 명가랑의 동선을 단 1초 만에 위치를 표시할 수 있는 AI 기술이 있다고 합니다.얼마 전에 붙잡힌 탈북민도 AI 기술에 덜미가 잡힌 것입니다.북한 간부들이 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탈북자 여권 정보를 중국 공안에 넘기면, 이후 AI가 그 사람을 추적합니다."

-중국 공안에 잡혀 중국 감옥에서 8개월 생활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심정은요?

"환경이 열악했습니다.콘크리트 바닥과 영하 40~50도의 추운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외국인인 경우,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가족과 연락하게 해줘야 합니다.그런게 전혀 없었습니다.중국 공안은 제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한국 정부에 알려주지 않고 저를 오랜 시간 감금했습니다.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탈북민 구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요?

"생명을 담보로 구출하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힘들었습니다.모든 것이 막혀 있습니다.AI 기술이 발달했는데 인력은 부족합니다.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습니다."

-탈북민 구출과정 중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요?

"실패한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제가 감옥에 갔을 때, 같이 붙잡힌 탈북민이 북송됐습니다.미국 요청으로 2명은 한국에 왔는데 나머지 10명은 북한에서 처형됐다고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습니다.또 차인표 씨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크로싱>의 철민이가 몽골 사막을 넘다가 탈진해서 숨지는 사건이 있습니다.구출해주지 못해 한국이나 미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한 것이 가장 큰 아픔입니다."

-왜 남들이 가지 않는 이 힘든 길을 걷게 되었나요?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원해서 하는 일은 아닙니다.1995년 사업 때문에 중국에 갔습니다.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던 탈북민이 얼음물에 빠져 죽은 것을 목격했습니다.그때가 북한 사람을 처음 만난 사연입니다.30분 후에 7~8살 꽃제비가 역전 열차에서 내린 저에게 구걸했습니다.주머니에 있는 동전 몇개를 줬습니다.꽃제비들이 동전 받고 좋아서 뛰어갔습니다.그런데 중국 공안이 갑자기 아이들을 끌고 가서, 곤봉으로 막 때려 충격받았습니다.그리고 몇 분 후 시장에 갔는데 여자 비명소리가 났습니다.중국 남자가 17~18살 어린 북한 여자를 끌고 가 차에 태웠습니다.제가 주변 사람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북한 사람은 막 잡아가도 되고, 데리고 살아도 된다는 말을 들어 충격받았습니다.3년 후 목회자가 되어 중국을 다시 방문했는데, 당시 똑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그래서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모색하다가, 지금 이 길을 24년 걷고 있습니다."

-대중들이 북한 인권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북한은 다른 나라와 달리 같은 민족입니다.이념 때문에 남과 북이 정치적으로 갈라졌습니다.가정에서도 가족이 아프면 마음 아파해야 하고 도와줘야 하는 것이 인륜입니다.대한민국은 이렇게 잘 사는데, 북한은 인권과 자유도 빼앗기고 억압당하고 가난하게 삽니다.정치인 잘못 만나 저렇게 힘들게 사는데, 우리가 관심을 안 가진다면 아픈 가족을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요?

"이전 정부에서는,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건드릴까 탈북민을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봤습니다.그런데 다행히 이번 정권에서 탈북민과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관점이 바뀐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고,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07/14/20230714000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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