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난룽입니다. 나는 대만의 독립을 주장합니다!(我叫作鄭南榕. 我主張臺灣獨立!)"
鄭南榕
1947. 9. 2 ~ 1989. 4. 7
대만의 민주운동가, 독립운동가
1968년 국립대만대학에 입학했지만, 1971년 쑨원을 국부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해 졸업하지 못함.
이후 1972년 아내 예쥐란(葉菊蘭)과 결혼하고 섬유 사업가로 활동함
1980년, 메이리다오 사건(반국민당 성향의 메이리다오 잡지가 가오슝에서 민주화 시위를 했고, 국민당 정부가 강경진압한 사건) 주동자 야오자원(姚嘉文)의 아내 저우칭위(周清玉)를 도우면서 언론 자유에 관심을 가졌고, 1984년에는 직접 잡지 '자유시대주간'을 창간해 대만 민주화 운동에 본격적으로 동참함.
이후 대만 독립운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였고, 1988년에는 '대만공화국 신헌법초안'을 작성해 자신의 잡지에 발표함
1989년 1월, 국민당 정부가 대만 독립 헌법 작성을 반역행위로 규정하고 구속결정을 내리자, "국민당은 내 시체만 잡아갈 수 있지, 나 자신은 못 잡아 갈 것이다!"라고 선언했고, 그해 4월 경찰이 그의 사무실을 급습하자, 그 자리에서 분신 자살함.
그리고 이 때 경찰을 이끈 사람이 현재 신베이시장인 허우여우이.
사후 '대만 건국 열사', '대만의 영혼'이라 불리며, 존경받고 있음.
生為台灣人,死為台灣魂。
태어나서는 대만인, 죽어서는 대만의 영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시 민주, 독립진영은 생전에는 외성인이라며 첩자로 의심한 흑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때 범록은 본성인 중심이었고, 본/외성인 갈등이 극심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