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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일기: 3. 잃어버린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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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시로티나 연예인

1890년 12월 10일

지난 달에 겪었던 끔찍한 일들이 잠에서 깨어난 내 머릿속에 아직도 생생했기에 기분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어젯밤부터 내린 눈은 그쳤지만 환기를 위해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허드슨 부인이 차려준 아침을 대충 먹고 산책을 하기 위해 코트를 대충 겹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현관 우편함에 뭔가 들어있는 것 같아 열어보니 의사 친구인 존 왓슨이 나에게 보낸 전보였다. 환자가 찾아 왔는데, 나의 도움이 필요하니 가급적 빨리 와 달라는 부탁의 편지였다.

 

마차에서 내린 나는 왓슨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서둘러 걸어 들어갔다. 왓슨과 그 옆의 여자는 의자에 앉아 침대에 누워 있던 한 남자를 간호하고 있었다. 왓슨과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인사했고 왓슨이 말했다.

"어서 와, 셜록 홈즈. 부득이하게 여기로 불러야 해서 미안해."

"여기 이 사람이 나를 찾는 모양이군. 아, 메리 모스턴 양도 반갑습니다."

내 말에 왓슨과 같이 있던 여자가 고개를 숙이면서 나에게 말했다.

"홈즈 선생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니 정말 꿈만 같네요. 저와 왓슨은 결혼해서 현재 잘 살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왓슨에게 물었다.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어디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표정을 보니 끔찍한 일을 겪고 그 충격으로 여기 온 것 같은데."

"맞네, 홈즈. 지금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이네. 마음이 진정되면, 이 사람이 자네를 무슨 일로 찾는지 설명해 줄 것이네."

그 말이 끝나자 누워있던 남자는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 소리쳤다.

"진정이라고요? 오, 홈즈 선생님! 저는 지금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주먹으로 침대를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왓슨의 아내인 메리 모스턴은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고, 왓슨이 나에게 무겁게 말했다.

"아침에 우리가 병원에 출근해서 막 들어오자마자 여기를 찾아오더군. 아직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도 창백한 얼굴로 우리를 보더니, 뭐라 한두 마디 잇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서, 놀란 우리가 허겁지겁 이 남자를 침대에 눕게 하고 브랜디를 몇 잔 타 주었지."

나는 불쌍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조금 진지해졌다.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왠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하얗게 질린 남자는 잠도 못 잔 듯한 매우 피곤한 표정에 지난 일에 대한 충격으로 야위기까지 해서, 눈동자가 없었다면 해골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갈색 머리이고, 콧수염이 난 남자는 아까보다는 진정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슬픔에 가득 차 있었다.

얼굴을 살핀 다음 이번에는 옷차림을 관찰해 보았다. 코트에 양복을 갖춰 입은 옷차림은 나름 고급스러웠지만, 흙인지 먼지인지 군데군데 묻어있는 듯 했으며, 무언가를 거칠게 잡기라도 했는지 손은 살짝 상처가 난 듯했다. 옷의 주머니는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꺼낸 듯한 황금 시계에 붙은 유리는 살짝 금이 간 듯 흠집이 나 있기까지 했다. 남자의 옆에 놓여있던 짐과 가방에 난 서류들을 살짝 보니 피고에 대해서 변호하는 듯한 글을 조금 알아볼 수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남자는 이번에는 물을 줄 것을 간절하게 호소했다. 왓슨은 얼른 일어나서 물을 한 잔 타서 남자에게 주었다. 한동안 살펴본 내가 왓슨과 모스턴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영국 출신의 변호사로군. 유창한 영어를 하는데 물이라는 단어를 굴리지 않고 똑바로 발음하니 미국인은 아니고, 또 법정에서 피고를 변호하는 직업은 변호사 말고 뭐가 있겠나. 고드프리 노턴 박사님, 실례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 아내 문제 때문에 오신 게 아닌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왓슨이 놀라면서 마에게 말했다.

"아는 사람인가? 이름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노턴이 신음을 하면서 말했다.

"일 정도가 아닙니다. 커다란 사고라고요. 내 아내가 사라졌어요!"

"아이린 애들러 양이 사라졌다고요?"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왓슨은 그 말을 듣고 놀라더니 뭔가 생각하다가 곧 나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아이린 애들러의 남편이라는 말인가?"

"맞아, 왓슨. 내가 마부로 위장하고 아이린 애들러와 남편의 결혼식 때 증인으로 섰던 것을 기억하겠지. 그리고 내가 보헤미아 국왕의 의뢰에 따라 애들러의 사진을 찾으려고 했지만, 애들러는 기지를 발휘해 나를 따돌리고 신랑과 같이 대륙으로 빠져나갔지. 그런데 남편이 이렇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급하게 찾다니, 고드프런 노턴 씨. 아이린 애들러가 사라졌다는 게 실종되었다는 말입니까?"

내 물음에 고드프리 노턴이 흐느끼듯이 대답했다.

"네, 선생님. 제발 도와 주십시오. 선생님은 제 아내의 사진도 찾아내고,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라면 제 아내도 반드시 무사히 되찾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원하는 만큼 보상해 드릴 테니, 제발 살려주세요! 흑흑!"

노턴은 말을 마치고 다시 통곡했다. 나는 그를 다독이면서 노턴에게 말했다.

"사건을 맡겠으니 슬픔을 멈추시고 마음을 진정 시키세요. 제 하숙집이 아닌 여기 병원으로 오신 사정이 있나요?"

"선생님을 통해 왓슨 박사님의 병원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밤에 아내를 잃었고, 밤새 아내를 찾느라 잠도 자지 못 하다가, 홈즈 선생님 생각이 나서 날이 밝자마자 허겁지겁 런던으로 와서, 망가진 몸을 치유하고 피로도 풀 겸 여기 병원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영국을 찾으신 사정이 있으신가요?"

"두 번 다시 영국 땅을 밟을 일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아내와는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서 영국 버크셔의 서닝데일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사건 당일 우리는 크리스티나 호텔에 머물고 있었죠. 어느 날 저녁 애들러는 잠시 드라이브를 하겠다면서 차를 타고 혼자 떠났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아내가 돌아오지 않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저는 마을 인근을 샅샅이 수색하다가, 멀리 떨어진 다른 마을의 석회 광산에서 아내의 차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그곳에도 없었고 나는 아내가 죽었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것을 느꼈고, 10일이 되도록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결국 미칠 지경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렇게 어젯밤에는 성난 사자처럼 날뛰면서 밤을 새 버렸고, 다음 날이 밝자마자 나는 런던으로 와서 왓슨과 홈즈 선생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말을 마치면서 노턴은 한숨을 짙게 내쉬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고드프리 노턴 씨. 지금 바로 움직이기로 하죠. 아이린 애들러는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니 염려 마시고 용기를 내십시오. 왓슨, 같이 갈 수 있겠나?"

왓슨이 망설이며 아내를 보자 모스턴이 말했다.

"저는 걱정 말아요, 여보. 환자는 앤스트러더 씨가 대신 봐 줄 거예요."

그러면서 아내는 기침을 했다. 왓슨과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걱정스러워하자 모스턴이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가벼운 감기일 뿐이니 염려 말고 잘 다녀오세요."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장티푸스의 증세를 알아차리지 못한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내가 모스턴의 증상을 알아차리고 제 때 적절한 조치를 했더라면, 한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으면 왓슨도 더 활기차게 나와 같이 모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때의 생각을 하니 너무 마음이 아플 뿐이다.

 

우리 일행은 모스턴을 병원에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밖에는 낡은 옷을 껴 입은 한 남자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긴스!"

베이커 가의 특공대 대장인 위긴스는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요즘은 왜 저와 친구들을 잘 동원하지 않는 거예요?"

그 말에 나와 왓슨은 남자아이를 안타깝게 내려다 보았다. 나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위긴스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응, 요즘은 별다른 사건이 딱히 생기지 않네. 날씨도 추운데 우리를 만나고 싶어서 찾아왔구나."

"반갑기는 해요. 하지만 사실 심부름이 있어서 들른 거예요."

그러더니 나에게 전보를 내밀었다. 내가 편지를 보고 살짝 놀라자 왓슨이 물었다.

"무슨 편지이길래 그런가?"

그러자 내가 대답했다.

"형이 나를 부르는군."

이에 왓슨도 놀랐다. 나는 1실링을 위긴스에게 주면서 말했다.

"고맙다, 위긴스. 추운 겨울에 수고했다."

우리는 위긴스와 헤어져 마차로 향했고 나는 뒤를 돌아보면서 어딘가로 사라져 가는 위긴스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고드프리 노턴 씨가 나에게 물었다.

"잘 아는 아이인가 보군요."

"제가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어린이들 중 한 명입니다. 저의 한 사람이 12명의 경관들보다 낫지요. 요즘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잘 고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왓슨에 나에게 물었다.

"자네 형이 무슨 일로 부르는 것이지?"

"아마 이 사건과 관련이 있을 지도. 아, 화이트홀로 가기 전에 식당으로 들르도록 하죠. 저야 식사를 했지만 노턴 씨는 아직 아침도 드시지 못한 듯 하니까요."

그러자 노턴이 침울하게 말했다.

"뭘 먹을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의욕도 없고요."

"그래도 잠시만 들릅시다. 먹고 힘을 내야 아내도 찾고 이겨낼 수 있지요."

이에 왓슨이 나에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 설마 자살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네. 당찬 미국인 여성인데 그렇게 쉽게 죽을 인간이겠나."

 

우리가 도착한 화이트홀에는 한 건장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형에게 말했다.

"전보 받고 왔어, 마이크로프트. 여기 이 분은 내 의뢰인인 고드프리 노턴 씨라고 해."

"아, 그래. 아이린 애들러의 남편이지. 사실 오늘 저 사람이 너를 찾지 않아도 너를 부를 작정을 하고 있었다. 차 좀 마실래?"

"고마워, 형. 수사는 아직도 진전이 없는 거야?"

"있지 않으니까 너를 부른 거 아니겠냐. 이건 우리 정부에 있어서도 적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린 애들러를 찾아내지 못하면 유명인 하나도 찾지 못 하는 유명무실한 국가라고 손가락질을 받게 될 지도 모르고, 또 애들러와 갈등을 빚었던 보헤미아 왕국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지도 모르니 진지하게 하는 말이다. 어제 오후에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높으신 한 분이 나를 만나자고 디오게네스 클럽까지 찾아와, 나에게 상황이 이러하니 무슨 수를 써서 아이린 애들러를 찾아야 한다고 질책을 하시더구나. 그래서 네 생각이 났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자마자 일찌감치 여기로 출근한 것이다."

"형은 나보다 추리를 잘 하는데 내 도움까지 청할 줄이야."

"이러나 저러나 영국, 아니 세계 최고의 탐정은 너 셜록 홈즈라고 생각한다. 네가 나에게 조언을 청하듯이, 나도 문제가 생기면 널 찾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냐. 게다가 타인을 만나는 것을 꺼리는 내가 런던을 떠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고. 여러 번 강조하겠지만, 이건 영국의 위신이 달린 일이다. 고드프리 노턴 씨는 사람들로부터 이혼을 할 예정이었는데 합의가 되지 않아 살인을 했느니 그런 식으로 의심을 받고 있으니, 네가 난처한 저 사람의 일을 잘 해결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동안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던 내가 말했다.

"이리 중요한 일이라면 런던 경시청에서도 사람을 보냈을 것 같은데."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서닝데일로 떠났지. 실종 당시 아이린 애들러 부부가 묵었던 호텔을 수색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도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나도 답답하다."

그러자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잘 알겠어, 형. 꼭 해결할 테니 걱정 말아. 자, 왓슨, 노턴 씨. 그럼 이제 같이 출발합시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차를 타면서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나는 상념에 젖어 있었고, 왓슨은 창밖을 보고 있었고, 노턴 씨는 침울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눈만 겨우 뜨고 있었다.

긴 여행 끝에 우리는 서닝데일에 도착했다. 마차를 타면서 내가 노턴 씨에게 말했다.

"아이린 애들러 씨와의 이혼 설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별 거 아닙니다. 딱히 애들러와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사랑하는 아내라는 점은 변함 없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갑자기 집을 나간 것도 서러운데 괜한 용의자로 몰리기까지 하니까 너무나 속상하군요."

이번에는 왓슨이 노턴에게 물었다.

"부부 싸움을 하고 아내 분이 마음이 삐쳐서 적당히 둘러대고 나가 버린 것 아닐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싸운 일은 없었지만, 이렇게 충격적인 일이 현실로 일어나니까 진짜,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너무 막막합니다."

이에 내가 대답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애들러 부부가 묵었다는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경찰 몇 명이 모여서 수색을 하고 있었다. 런던 경시청의 조지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우리를 보고 걸어오더니 이번에는 노턴을 쏘아보면서 말했다.

"아, 이제야 오셨군요. 고드프리 노턴 씨. 아내를 어디에서 잃어 버리셨는지 아직도 기억 안 나십니까?"

지극히 의심하는 말투가 다분했다. 이에 격분한 노턴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말했다.

"저는 아내를 해친 적이 없어요. 진짜 당신까지 너무합니다!"

그러자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맞받아쳤다.

"네? 저는 딱히 뭐라고 한 적이 없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역시 뭔가 숨기고 있는 듯 합니다. 뭔가 인정을 하시는 가 보군요. 잘 생각해서 기억을 하시는 것이 당신 아내나 당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입니다."

왓슨이 걱정스럽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노턴이 화날 듯하면서 말했다.

"정말 경찰까지 저를 이렇게 억압하시는군요. 이 나라에는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죄수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법률이 있는데, 제발 적당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에게 내가 끼어들어서 말했다.

"자, 자. 둘 다 그만 하시지요. 레스트레이드 경감, 안으로 들어가서 그 때 아이린 애들러가 묵은 방이 어디인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크리스티나 호텔은 무난하게 큰 규모에 시설 관리도 상당히 잘 되어 있었다. 일행은 레스트레이드의 안내에 따라 애들러 부부가 묵었던 방에 들어섰다.

책상에는 잡다한 종이만 몇 장 놓여 있었다. 그 중 서류같이 꾸며진 종이에는 '파나르 르바소'가 써져 있었고 거기에 다른 사람이 쓴 듯한 글과 서명도 남겨져 있었다. 그걸 살펴본 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밖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자 레스트레이드가 소리쳤다.

"여기 와서 조사를 안 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

이에 내가 대답했다.

"여기에서는 딱히 알 만한 것이 없습니다. 차 열쇠가 안 보이는 것을 보니 애들러 본인이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간 게 맞는 듯 하니, 남편을 괜히 의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내를 죽이고 열쇠를 어딘가에 숨겼을지도 모르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혼자서 운전을 할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요? 그래서 수색을 해 보셨나요?"

"아무 데도 나오지 않았죠. 하지만 저는 노턴이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에 열쇠를 숨겼을 거란 생각을 접을 수 없습니다."

나는 레스트레이드의 말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섰다. 뒤따라 나온 왓슨 일행에게 내가 말했다.

"애들러는 나를 한 방 멋있게 먹인 당찬 여자입니다. 그런 여장부에게 운전 정도는 어렵지 않지요. 아까 경감님도 보셨겠지만, 책상에 놓인 종이들 중 하나는 자동차에 관해 작성된 서류입니다. 서류에 쓰인 '파나르 르바소'는 자동차 회사 이름입니다. 1년 전인 1889년 세계 최초의 자동차 제작 회사이죠. 필체 또한 제가 옛날에 봤었던 아이린 애들러의 필체와 같았죠. 따라서 그 서류는 아이린 애들러가 산 자동차에 관해서 작성된 것입니다."

이에 노턴이 동조하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셜록 홈즈 선생님. 제 아내가 차를 구입하면서 남겼던 서류입니다. 운전도 아내가 도맡아 했지요."

말이 다 끝나지 않았음에도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약 올라서 대꾸했다.

"그래도 저는 제 주장을 굽히지 않겠습니다. 위조한 서류일지도 몰라요. 아니면 뇌물을 주고 만들어낸 것이겠지요. 잉크를 잘 보면 틀림없이 무언가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이 남편이 아내의 글씨체를 따라해서······."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길가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아내의 차를 발견했다는 석회 광산으로 갑시다."

 

서리 주 뉴렌즈 코너의 석회 채굴 광산에는 버려진 차가 한 대 놓여져 있었다. 내가 주위를 둘러 보니, 광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기차역도 있었다.

나와 왓슨은 노턴이 가리킨 자동차를 살펴보았고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한번 대충 보면서 혀를 차면서 말했다.

"젠장, 이게 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모든 증거가 한 쪽을 가리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셜록 홈즈 씨?"

그러자 내가 대답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신기루는 허상일 뿐이고, 공기와 양심 또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경감님은 '상식적이라면' 이런 말을 입에 다시던데, 그렇게 상식적으로 따져 본다면 범인이 완전 범죄를 위해서라면 경찰 상식에 맞춰 움직여 줄 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 말에 레스트레이드는 분해서 씩씩거렸다.   

"아니, 뭐 그야 그럴 듯한 말일 수도 있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아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이 먼 곳에 차를 버려두고 아무 데도 모르는 곳으로 감쪽같이 사라질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차를 면밀히 살펴보던 내가 주위의 발자국들을 돋보기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뭔가 발견한 듯이 기뻐서 말했다.

"발자국들 중 하나가 뭔가 다르네요. 잘 보세요."

왓슨도 보고 놀라서 말했다.

"뒤쪽 부분이 동그랗게 떨어져서 나와 있군. 이건 뭐란 말인가?"

"뭐기는, 구두이지. 말하자면 하이힐 같은 것이지. 노턴 씨, 아내가 그 날 무엇을 신고 밖을 나갔는지 기억 나십니까?"

그러자 노턴이 생각하더니 답했다.

"제가 생각해도 구두가 맞습니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다른 발자국들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는군요."

"저기입니다."

나는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일행이 바라보니 거기에는 기차역이 있었다.

그것을 본 왓슨이 말했다.

"저건 기차역이군. 그렇다면 애들러는 기차역으로 갔다는 말인가?"

"그렇지. 차에 연료가 부족했든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차를 타기 위해 차를 여기에 놔 둔 거야."

그러자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답하오. 애들러가 살아 있는 게 분명하다면, 이 넓은 영국에서 어디로 기차를 타고 갔다는 것인지 알 겨를이 없지 않소."

이에 내가 대답했다.

"그 여자가 내릴 만한 역을 생각해서 찾아내야 합니다. 제 예상이 맞다면, 아이린 애들러는 분명 그 기차역 근처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나는 기차역 근처를 부지런히 살폈다. 표를 파는 직원을 만나서 애들러의 외모를 설명하면서 애들러가 어디 표를 샀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광고가 실린 신문을 손에 잡고 살펴 보기도 했다. 신문을 살펴본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그건 그냥 광고일 뿐이지 않소. 음, 보니까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 글 같은데. 아이린 애들러의 사진은 없소. 남편은 아이린 애들러를 찾는다는 글도 실지 않았는데 그 점 또한 의심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노턴은 그 말을 듣고 겨우 분을 참고 있었다. 참다 못한 왓슨이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 항의했다.

"너무하시오, 경감. 이 사람은 밤늦게 충격 때문에 잠도 자지 못 하고 아침 일찍 런던으로 들어와 내 병원을 찾아서 피곤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통곡까지 했단 말이오."

그 말을 듣자 레스트레이드가 노턴을 살짝 불쌍하게 보고 말했다.

"아, 그렇소? 그렇다면 노턴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을 조금 수긍할 수 있을 듯 하겠군요."

이때 내가 일행을 불러서 광고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 흥미로운 광고가 있소. '보헤미아에서 온 클로틸드 가족들은 연락해 주세요' 라고 쓰여 있군. 클로틸드는 우리를 찾아온 귀한 의뢰인인 보헤미아 국왕 오름슈타인과 약혼한 스칸디나비아 왕국의 둘째 공주 이름입니다."

그러자 왓슨이 말했다.

"그렇군. 그런데 왜 애들러가 이런 광고를 낸 것이지? 클로틸드라는 공주와는 아무 관계 없지 않나?"

"내 생각에, 아이린 애들러는 스트레스에 의한 '해리성 둔주'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듯 하네. 이건 강한 스트레스를 입었을 때 기억을 부분적으로 잃게 되는 기억 상실증을 유발하게 되지. 아마 애들러는 그 질병으로 인해 남편을 찾는다는 것을 잘못 기재했을 수도 있지."

그러면서 왓슨은 서류에 찍힌 직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 이 직인은 호텔에서 찍은 것이네. 호텔에서 광고를 실으면서 서명을 할 때 호텔 직인으로 찍은 것이지. 난 이 직인을 언제 본 적 있는 것 같네."

그러자 노턴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그럼 선생은 제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신 것입니까?"

"알 것 같소. 자, 우리 표를 끊고 4백 km 떨어진 그 문제의 호텔로 어서 가 봅시다."

 

우리는 한 마을의 역에서 내렸다. 나는 일행과 함께 길을 걷다가 휴지통에 갓 버려진 종이들을 보았다. 나는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향수 냄새가 얕게 나는 것을 보고 그 종이를 꺼내서 열어 보았다.

"근처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나온 영수증이군. 엄청난 돈을 들여 쇼핑을 함으로서 본능적으로 강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겠지. 내 예상이 맞다면 그 여자는 저 호텔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맞은편 호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에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저건 헤러게이트 호텔이라고 합니다. 확실한 것 맞소?"

"물론이오. 우리를 보고 혹시 도주를 한다든가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꾸물거려서 좋을 건 없으니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나는 일행을 재촉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을 지키던 지배인이 우리를 보고 크게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들! 30파운드이면 여기서 하룻밤을 아주 멋지게 묵고 갈 수 있는 좋은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방을 찾으러 온 게 아니요. 노란 머리의 미국인을 찾으러 왔는데 아주 중요한 국가적 문제이니 당장 알려 주는 게 좋을 거요."

지배인은 문제에 엮이는 것을 귀찮다는 듯이 한 마디 했다.

"3층 가운데 쯤에 있는 312호로 올라가시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3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한참 기다리자, 마침내 안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익숙한 얼굴의 그 여자는 우리를 한번씩 돌아보고 낯설어 했다. 남편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나를 보더니 뭔가 기억을 더듬는 듯하며 어색해 했다. 그러자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아이린 애들러 씨, 정말 오랜만에 뵙게 되어 진실로 반갑습니다. 저는 베이커 가 탐정인 셜록 홈즈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더니 모든 것을 알아차린 듯 감탄을 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이제 기억이 나는군요. 아, 그 옆의 남자 분은 같이 다니는 존 왓슨이고, 옆의 제복 입은 남자는 잘 모르겠지만 그 옆의 남자는 제 남편 고드프리 노턴, 이제 알겠네요."

이에 노턴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애들러에게 말했다.

"그렇게 사라져 버리면 나는 어떡하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죽는 줄 알았잖아요."

둘은 한동안 서로를 슬프고 어색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시곗줄에 달린 1파운드를 애들러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제가 중매를 섰을 때 부인께 받은 1파운드 기념으로 잘 가지고 있습니다. 잘 대화하셔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셨으면 싶습니다만."

"이제는 힘들 거예요. 셜록 홈즈 씨. 순간적으로 참지 못 하고 뛰쳐 나오기는 했지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네요."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악수를 하자 애들러가 말했다.

"이렇게 찾아와 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5천 파운드 정도면 충분할까요?"

"아, 감사합니다. 충분한 보수라고 생각해요. 부디 같이 힘내셔서 다 이겨 내셨으면 합니다."

애들러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노턴이 나와 왓슨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내를 찾아주신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레스트레이드가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서 말했다.

"섣부르게 의심한 점은 죄송하게 생각하오."

노턴이 표정을 펴면서 레스트레이드의 손을 마주잡으며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나는 왓슨과 더불어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레스트레이드와 함께 호텔 밖으로 나왔다. 레스트레이드가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홈즈 선생의 그 능력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소. 선생이 범죄자가 되었다면 얼마나 세상이 끔찍해졌을지 생각도 하기 싫소."

왓슨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조하자 내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제가 범죄자가 아닌 탐정을 하는 것이지요. 다 운명이자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겁니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왓슨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오늘 저녁은 베이커 가에서 허드슨 부인과 함께 식사하도록 하세."

 

내 일기는 끝났다. 사실 공개하지 않은 몇 가지 이야기들이 더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에 나오는 몇몇 사람의 명예도 생각해야 하고, 또 더는 일기를 이어갈 의욕도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기에 나는 이것으로 일기를 마무리 지었다.

밖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짙어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왓슨의 그리운 얼굴을 그렸다. 그러자 나를 반겨 주던 왓슨은 물론, 허드슨 부인과 베이커 가의 그리운 모습도 다같이 그려졌다.

왓슨은 내 인생 최고의 친구였다.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 그에게 마음 속으로 한 마디 말을 올려 보내본다.

"사냥이 시작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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