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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058 서울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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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4대 세종

 

조선시대까지 왕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하늘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이었다. 

 

하늘은 왕을 평가하는 상징적인 주체였으며, 농업을 진흥하기 위해서도 천문을 아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세종도 예외일 수 없었다. 1422년(세종4년), 일식이 일어날 것이란 서운관의 보고에 세종은 신하들과 소복을 입고 하늘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일식이 서운관이 예측한 시간보다 15분 늦게 나타나자, 세종은 담당 관리를 처벌했다. 

 

세종이 즉위할 당시 조선은 원의 역법인 수시력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로 인해 시간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많은 오차가 발생하자, 세종은 우리나라에 맞는 역법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 

 

1430년(세종12년), 세종은 역법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정초(?~1434년)를 칭찬했다. 역법을 바로 세우는 일이 명과의 사대 관계를 벗어나는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신하들에게 인식시키는 동시에, 뛰어난 관리를 역법 계산에 참여시키려는 의도였다.

 

그 후 왕의 관심 아래 정초와 정인지가 중심이 되어 1442년(세종24년)에는 비로소 서울을 기준으로 하는 역법을 담은 <칠정산내편>이 편찬되었다.

 

이로써 조선은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정확한 시간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444년(세종26년)에는 김담과 이순지가 아라비아역법(회회력법)을 연구해 <칠정산외편>을 편찬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1년(365일 5시 48분 45초)보다 1초 짧게 계산되는 <칠정산>은 조선의 과학 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 

 

세종 때 이처럼 뛰어난 역법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이 간의, 혼천의, 양부일구, 자격루 등 열다섯 가지의 천문 관측기구를 제작하고 사용했기에 가능한 이ㅣ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서울을 기준으로 계산한 역법을 일제강점기 이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가 침략을 위한 철도 부설 과정에서 서울 표준시보다 30분 빠른 동경 표준시를 우리나라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서울을 기준으로 하는 표준시를 잠시 사용한 적이 있지만, 1912년 1월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의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써글? 진짜? 왜 바로 안 잡는거냐?

 

 

https://namu.wiki/w/%EB%8C%80%ED%95%9C%EB%AF%BC%EA%B5%AD%20%ED%91%9C%EC%A4%80%EC%8B%9C

<나무위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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