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칼럼] 총선압승 필수조건은 ‘청정수’다

오주한

‘고인물’ 걷어내 하백신앙 일소했던 위문왕

‘고인물’에 악화된 민심, ‘새 물’로 정화해야

 

고대의 大재앙 홍수

 

수년 전 ‘하백의 신부’라는 드라마가 방영돼 인기를 끈 바 있다. 하백(河伯)은 한 때 동아시아에서 모셔진 물(水)의 신(神)이다. 우리 역사에서는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 주몽(朱蒙) 탄생설화와 얽혀 전승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압록강의 신 하백에게는 하유화(河柳花)‧하위화(河葦花)‧하훤화(河萱花) 등 세 명의 딸이 있었다. 유화는 어느날 강에서 목욕하던 중 천신(天神)의 아들 해모수왕(解慕漱王)과 마주쳤다. 해모수를 흠모하게 된 유화는 부친 허락 없이 해모수와 동침했다.

 

분노한 하백은 해모수에게 결투를 신청했지만 패해 혼인을 승낙했다. 그러나 해모수가 훌쩍 승천(昇天)해버리자 홀로 된 유화는 그를 가엽게 여긴 동부여(東夫餘)의 금와왕(金蛙王)에 의해 거둬졌다. 유화는 크기가 닷되만한 알을 낳았으며 거기서 주몽이 태어났다.

 

출중한 능력으로 금와왕의 일곱 아들의 시기를 받은 주몽은 어머니 및 오이(烏伊)‧마리(摩離)‧협보(陜父) 등 세 친구와 동부여를 탈출했다. 그러던 중 엄리대수(淹利大水)가 앞을 막자 주몽은 “나는 천제(天帝)의 손자이자 하백의 외손자다”고 외쳤다. 떠오른 자라‧물고기를 다리 삼아 도강(渡江)한 주몽은 졸본(卒本‧지금의 중국 랴오닝성 오녀산성으로 추정)에 정착해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건국했다.

 

중국신화에서의 하백도 물과 연관 깊다. 일부 고대인들은 황하(黃河)에 정착해 장강문명(長江文明)과는 별개의 사회를 이뤘다. 강은 농수(農水)‧식수 등 풍요로움을 선사했지만 한편으로는 홍수라는 대재앙도 야기했다. 치수(治水)기술이 부족했던 터라 한 번 강이 범람하면 논밭이 침수되고 사망자가 속출했으며 역병 또한 돌았다.

 

실제로 대홍수 신화는 지구촌 각 문명에서 구전(口傳)되고 있다. 우리나라 목도령(木道令) 설화도 홍수가 주제다. 어느날 선녀는 계수나무 정령(精靈)에 반해 동자를 낳았다. 동자가 7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하늘로 돌아가자 폭풍우가 몰아치며 몇 달 동안 비가 내렸다. 계수나무는 동자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나는 곧 쓰러지게 되지만 너는 내 등에 타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계수나무에 올라탄 뒤 물결 따라 떠돌던 동자는 백두산에서 신선이 됐다.

 

잘 알려졌다시피 구약성경 창세기(創世記)에도 노아(Noaḥ)의 방주(方舟) 이야기가 나온다. 수메르(Sumer)의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 등 타 문헌에도 ‘강이 넘치니 온 천하가 물에 잠겼다’는 식의 표현이 등장한다. 고대 성읍(城邑)국가‧도시국가 영토는 오늘날의 일개 마을 정도 크기였다. 때문에 소속 성읍‧도시가 곧 ‘온 천하’였던 고대인들에게 거주지 침수는 만천하의 수몰(水沒)을 뜻했다.

 

이렇듯 재앙을 야기한다 해서 강을 떠나 살 순 없었다. 지금처럼 멀리서 물을 끌어 쓰는 상수도(上水道)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은 담수(淡水)를 못 마시면 얼마 안 가 목숨이 끊어지고 만다. 한반도에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벼농사는 막대한 농수를 필요로 한다. 2008년 농촌진흥청 농업다원기능평가팀에 의하면 1ha 농지에 벼를 재배 시 연간 20.4명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쌀은 밀 등 타 농작물에 비해 인구부양력이 높다(성인 1인당 하루 필요 칼로리 3000㎉ 가정 기준).

 

생사(生死)가 달린 일이기에 고대인들은 치수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하(夏)나라 신화가 이를 보여주는 흔적 중 하나다.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하나인 제요(帝堯) 도당씨(陶唐氏) 집권 시절 불덩이 같은 태양(폭염)이 오더니 태양이 가고 대홍수가 들이닥쳤다. 이에 제요는 먼 친척인 곤(鯀)을 불러 치수공사를 맡겼다.

 

하지만 9년 간의 공사는 지지부진했다. 제요의 이성(異姓) 후계자 제순(帝舜) 유우씨(有虞氏)는 곤을 처형했으며 곤의 시신에서 아들 우(禹)가 태어났다. 부친의 뒤를 이어 공사를 감독하게 된 우는 13년 동안 매진한 끝에 기어이 성공시켰다. 제순은 우에게 왕위를 넘겼으며 우는 하나라를 창업해 세습군주제(世襲君主制)를 확립했다. 동아시아 선사시대인들이, 실존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최초 국가라 주장하는 하나라 탄생배경에 ‘치수’가 있을 정도로 고대인들은 물(황하)을 다스리는 것을 중시했던 것이다. 중국에서 하백은 황하와 동일시된다.

 

‘고인 물’ 부정부패 악용된 하백신앙

 

하지만 현대적 시각으로 봤을 때 조잡한 기술의 둑은 대번에 무너지곤 했다.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고대인들은 종종 미신(迷信)에 기대곤 했다. 유학자 등 식자(識者)들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멀리해야 한다고 설파했지만 사람은 절박할수록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게 되기에 좀처럼 먹혀들지 않았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위(魏)나라 업(鄴) 지역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황하의 물줄기에 기대고 있던 이들은 독수공방(獨守空房)에 지친 하백이 심사가 꼬여 홍수를 일으킨다고 믿었다. 이들은 하백을 진정시킨다면 홍수도 막을 수 있다 여기고서 젊고 순결한 처녀를 산 채로 강물에 던져 넣는 ‘인신공양(人身供養)’, 즉 하백취부(河伯娶婦) 의식을 매년 행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명군(明君) 문후(文侯‧생몰연도 기원전?~기원전 396년)는 어느날 서문표(西門豹‧?~?)라는 인물을 새 업성태수로 발탁했다. 서문표는 공문십철(孔門十哲) 중 한 사람인 자하(子夏) 밑에서 수학한 유학자였다. 자연히 서문표는 괴력난신을 경계하고 실리를 추구했다.

 

악습을 타파하리라 벼르면서 임지에 부임한 서문표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상하리만치 성내가 한산하고 백성들은 하나같이 누렇게 뜬 얼굴이었던 것이다. 궁금해진 서문표가 부로(父老)들에게 묻자 이들은 긴 탄식을 쏟아내며 이같이 답했다. “매년 하백을 장가보내느라 등골이 빠져 못 살겠다”

 

부로들의 증언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하백취부 의식은, 그 자체만으로의 해악은 별도로 하고서라도, 심각한 민생악화를 야기하고 있었다. 의식은 어느새 무당‧관료‧유지(有志)들의 부정축재(不正蓄財)‧‘부모찬스’ 수단으로 변질돼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제물로 바쳐질 처녀는 제비뽑기 등 공평한 방법으로 선출해야 했다. 그러나 유지들은 무당‧관료에게 산더미 같은 뇌물을 먹여 제 여식(女息)들은 열외시켰다. 무당은 힘없고 돈 없는 일반백성 여식들 중 제물을 택했으며, 관료들은 ‘제사비용’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강탈했다. 딸을 살리고 세금폭탄을 면하고자 논밭마저 버려두고 달아난 백성들은 자연히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대로(大怒)한 서문표는 인신공양‧부정부패 일망타진을 위해 즉각 수하들을 풀어놓으려 했으나 멈칫했다. 부모찬스‧세금폭탄과는 별개로 하백신앙은 상당수 현지백성들 사이에서 여전히 성행했다. 만약 서문표가 무당 등을 잡아넣거나 의식을 막으려 하면 무당‧관료 등은 “외지인이 (신계와 인간계 매개체인) 무당을 해쳐 하백을 노엽게 했다” “외지인이 제사를 막아 하백을 노엽게 한다”며 백성을 선동할 수 있었다. 서문표는 하백을 진심으로 믿던 백성들로부터 몰매질당하기 십상이었다.

 

한 발 물러서서 ‘공평한 제물취사’만을 종용(慫慂)하려 해도 무당이 “내가 아니라 하백이 (힘없고 백 없는) 저 처녀를 택한 것”이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관료‧유지만 체포한다 해도 이들과 뇌물커넥션으로 얽힌 무당이 신탁(神託)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석방을 압박하면 그만이었다.

 

이에 서문표는 인신공양도 막고 부정부패도 척결할 일거양득(一擧兩得)의 묘책(妙策)을 생각해냈다. 무당과 만난 그는 “다음 제사에는 나도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부정부패 속 시원히 일소한 ‘청정수(淸淨水)’

 

의식이 시작되자 그간 가축 여물 먹이듯 술‧밥을 강제로 먹고서 어여삐 단장한 가여운 처녀가 끌려나왔다. 재궁(齋宮)에 갇힌 처녀가 오들오들 떨며 익사할 그 순간만 기다리는 사이 무당들은 신나게 풍악을 울려댔다. 주머니 두둑한 관료들은 유지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이를 쑤셨다.

 

그런데 서문표는 대뜸 “얼굴을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그래도 명색이 임금이 파견한 태수였기에 무당 등은 “설마 무슨 일 있으랴”며 선선히 승낙했다.

 

처녀 얼굴을 살핀 서문표는 큰일 났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짐짓 “처녀가 아름답지 못하니 큰일 났다”고 외쳤다. 식은땀을 흘린 그는 “이 아이를 바쳤다간 사달이 나니 수고스럽더라도 큰 무당께서 하백을 만나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시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건장한 수하들을 시켜 늙은 무당을 강물에 냅다 집어던져버렸다. 큰 무당은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성난 급류(急流)에 휩쓸려갔다.

 

풍악이 멈추고 모두가 경악하는 사이 서문표는 정말로 하백의 답변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안절부절 못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 큰 무당이, 돌아올 리 없지만, 돌아오지 않자 서문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아무래도 큰 무당은 늙어서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너희들이 가서 어서 재촉도록 하라”고 외치며 젊은 무당들도 집어던졌다. 이들도 급류 타고 광란(狂瀾)의 수중서핑을 하며 떠내려갔다.

 

남은 관료‧유지들 사이에선 이제는 경악을 넘어 공포가 들끓었다. 이들로서는 서문표에게 따질 꼬투리가 없었다. “왜 무당을 강물에 던져 죽이나”라고 했다간 하백의 존재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간 “하백을 달래자”며 실컷 이용하고 약탈했던 백성들로부터 맞아죽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태수인 네가 들어가라” 할 수도 없었다. 태수는 임금의 대리인이기에 이는 곧 나라에 대한 반역이었다.

 

“아름답지 못한 처녀라 해도 괜찮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이는 아름다운 여인을 신부로 맞아야 할 하백의 신성(神聖)한 권리를 부인하는 꼴이 된다. 유권해석(有權解釋) 내릴 무당들이 모두 사라진 이상, 서문표가 태수 인수(印綬)를 들이밀며 “저놈이 아무 여인이나 바쳐 하백을 노엽게 하려 한다” “태수로서 명하노니 저놈의 아리따운 여식을 바치자”고 선동하면 할 말이 없었다. 서문표는 정말로 하백을 믿듯 진지한 표정이었기에 그의 태도를 걸고넘어질 수도 없었다.

 

그 때까지도 자못 심각하게 하백의 대답을 기다리는 척하던 서문표는 “신분이 낮은 무당들이라 (대화가) 안 되는가 보다. 너희들이 한꺼번에 가 봐라”며 부패 유지들도 강속구로 모조리 투척했다. 유지들은 강변 넝쿨 붙잡고서 반항했지만 “무슨 잔말이 그리 많나 이놈” “하백 곁에 보내드리니 영광인 줄 알아라 이놈” 꾸짖으며 꾸역꾸역 차 넣었다.

 

유지들도 인어공주가 되자 서문표는 급기야 부패 관료들 머리채도 잡아 끌어내려 했다. 지옥 같은 요단강이 눈앞에 펼쳐지자 그제야 관료들은 머리 깨지도록 엎드려 절하며 살려달라고 빌었다. 서문표는 장사(壯士)들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관료들에게 “앞으로 하백을 장가보내려거든 너희가 먼저 들어가 중매부터 서라”고 태연히 말했다.

 

무당‧관료들 자산은 관아(官衙)에 모조리 압류됐으며 부패한 하백신앙은 자취를 감췄다. 서문표는 대신 선진적 치수기술을 도입해 업 지역을 부흥시켰다. 사마천은 이러한 통쾌한 부정부패 척결전을 사기 골계열전(滑稽列傳)에 실어 특별취급했다. 일부 실책 및 인격과는 별개로 선정(善政)을 베풀려 노력했던 수백년 뒤 조조(曹操)는 “내가 죽으면 업 서쪽 언덕의 서문표 사당 곁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총선압승 위한 黨 지도부 결단 필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등 정치권이 분주하다. 특히 당협위원장 인선(人選)에 많은 국민 눈길이 쏠린다. 당협위원장 임명장은 높은 확률로 총선 공천장(公薦狀)을 의미한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물갈이론’이 뜨겁다. 서울 강남3구, 대구‧경북(TK), 부산‧울산‧경남(PK) 등지를 두고서 더더욱 그렇다. 이들 지역은 공천장이 곧 재선‧다선(多選) 등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자연히 ‘고인물’도 발생하기 쉽다. 이곳 일부 재·다선자들로선 지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할 필요성이 타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지기에, 지역 세도가(勢道家) 등과 결탁하고 부정부패 일삼을 여지가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민심이반(離叛)으로 직결된다.

 

상술한 위나라 업 지역 하백신앙 일화처럼 고인 물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다. 고인 물은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 서울 서초를 사례로 썼듯 그 원망은 고스란히 소속당에게로 향하게 된다. 쌓인 분노는 차기 대선에서의 심판으로 귀결(歸結)된다. 철옹성(鐵甕城)도 방심하면 무너지게 된다. 강남‧송파를 비롯해 서울 25개 자치구 중 24곳을 더불어민주당에게 빼앗긴 7회 지방선거가 대표적 사례다.

 

쇄신(刷新)은 진정성이 있어야 유권자에게 어필 가능하다. 쇄신의 첫걸음은 고인 물 걷어내고 신선한 물을 채워 넣는 ‘물갈이’다. 지금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위태롭다. 서울 강남갑을 사례로 들자면 해당 지역 현역의원은 갖은 구설수에 오른 상태다.

 

필자를 포함한 평범한 재야(在野)의 여당 지지자·당원들은 다시는 서울 강남 등 안방에서의 충격패 재현을 원치 않는다. 고루(固陋)한 태수 대신 젊고 패기 있는 신예(新銳)태수를 투입해 부정부패를 일소(一掃)한 위문왕의 결단, ‘외지인’으로서 곤혹 치렀던 서문표의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결단이 총선을 앞둔 작금의 국민의힘 지도부에 요구된다.

 

20000.png.jpg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1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 오주한
    작성자
    2023.07.08

    본 칼럼의 요지는 능력본위대로 능력있으신 분들은 전국 곳곳 어디든 국민과 당원을 위해 헌신해주시길 바라고 또 적극 지지이지만,

     

    능력 없으면서도 강남3구 tk pk 등 단물산지만 찾아 다니는 고인물 자처하는 일부 분들은 물갈이가 필요하지 않을까가 요지입니다. 감사합니다.

  • INDEX
    2023.07.08

    으휴 너거들이 평생직장 찾아댕기는 9급 공무원이랑 다른게 뭐고! 포부가 없으면 금뱃지작 때려치우고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라

  • INDEX
    오주한
    작성자
    2023.07.08
    @INDEX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정치 공무원은 봉사자 희생자의 자리인 줄 압니다. 재산증식 재벌하려면 사업가를 해야죠. 최소한의 가족 먹여살릴 깨끗한 봉급만 주어진다면 감사히 여기고, 정치인은 근본적으로는 명예로 사는 자세가 근본에 있어야 할 줄 압니다.

  • 오주한
    작성자
    2023.07.09

    그리고 본 칼럼은 혹여라도 여성분들께 불쾌함을 드리려는 목적은 아닙니다. 이 땅의 많은 여성분들도 이성의 외모가 아닌 내적인 면을 우선시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홍 시장님을 지지하는 상당수 대한민국 남성분들도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혹여라도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ydol7707

    문제는 새로 갈은 물이 당에 해를 끼치는 독극물이라는게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도 있으니 가려서 물갈이를 해야 합니다.

    또한 고인물이 지지를 많이 받아서 무소속 출마해서 당선되는 경우도 있으니 이들은 복당을 불허해야 합니다.

  • ydol7707
    켈켈켈
    @ydol7707 님에게 보내는 답글

    ㅇㅈ

  • ydol7707
    오주한
    작성자
    2023.07.09
    @ydol7707 님에게 보내는 답글

    국민의힘에서 능력없는 일부는 지양해야 하지만, 능력있는 백전노장분들 신예분들은 적극 지향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 켈켈켈

    레이건 대통령의 정신을 잇는 새로운 우파 분들이 영입됐으면 좋겠네요

  • 풀소유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 삼선 사선하면

    지역 카르텔과 결탁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대 재선까지만 허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삼선 제한도 너무 깁니다.

  • 풀소유
    오주한
    작성자
    2023.07.11
    @풀소유 님에게 보내는 답글

    말씀하신 것을 포함해 여러 방책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