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도로 결국 야권발 '탄핵 열차'가 출발했다. 여권에서는 탄핵 정국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과 개헌 등의 논의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본격적인 탄핵 절차에 시동을 걸었다. 조국혁신당·진보당·개혁신당·사회민주당·기본소득당이 공동으로 발의했다. 민주당은 5일 0시10분 국회 본회의를 열어 탄핵안을 보고했으며 이르면 6일 표결을 진행하겠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할 예정이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위헌적, 위법적 비상계엄을 내란죄로 단죄하겠다"며 "윤 대통령,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내란죄로 고발하고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재직 시 형사 소추를 당하지 않지만, 내란과 외환 죄는 예외로 하고 있다. 고발되면 수사기관이 즉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24분쯤 대통령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가지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당한 1979년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계엄이다.
윤 대통령은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국회는 비상 체제로 돌입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명의로 국회의원 전원 소집령이 내렸다. 그 사이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했다. 국회로 모이는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회 직원들이 뒤엉키며 소란이 일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를 위한 표결이 진행됐다. 재석 190명,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령 해제요구안이 통과됐다. 계엄 선포 2시간 37분 만이다. 같은 날 오전 4시 30분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가 의결되면서 6시간의 계엄 소동은 종료됐다.
비상 계엄의 후폭풍으로 윤 대통령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여야는 모두 윤 대통령의 다음 메시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통령실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은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며 곧장 여론전에 나섰다. 하야·퇴진·탄핵 등의 구호가 뒤엉키며 윤 대통령을 곧장 끌어내릴 기세다.
윤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추가 계엄령과 북한과의 교전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본관에서 열린 비상시국대회에서 "계엄은 상황이 정비되고 호전되면 또다시 시행할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북한을 자극하고 휴전선을 교란해 무력 충돌로 이끌 위험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계엄상황실을 구성해 향후 윤 대통령의 추가적인 움직임을 주시하기로 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비상계엄이 또 이뤄질 수 있고, 전날 있었던 계엄에도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요소가 있는지 상황 파악과 추적을 하기 위해 구성됐다"고 했다.
민주당에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호재 중의 호재다. 이미 지난 9월 민주당 지도부에서 계엄설을 제기해 왔던 만큼 본인들의 주장에 설득력이 더 커졌다는 계산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격앙된 분위기 속에 화기애애한 모습이 꽤 많이 연출되고 있다"면서 "이제 윤 대통령의 퇴진이 눈앞에 왔다는 분위기가 당을 지배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수습책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일단 의원총회에서 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해임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는 재논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이후 당·정·대 회의를 가졌다. 2시간여 걸친 회의를 마치고 한 대표는 용산 대통령실로 이동해 윤 대통령을 직접 만나 계엄령 선포 과정과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도 "대통령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이제 국민께 나와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당내에서는 야권의 기세를 꺾을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우선 김건희특검법을 받고, 탄핵에는 반대하는 기조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5개의 재판으로 피고인 신분인 이 대표가 집권할 틈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친한(친한동훈)계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야권이 탄핵안을 발의하더라도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탄핵에 반대한다면 탄핵안은 통과될 수 없다. 탄핵소추안은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2(200석)가 찬성해야 통과된다.
친한계로 불리는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우파 진영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 범죄자 이재명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야당이 발의한 특검은 받더라도 대통령 탄핵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과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을 먼저 선(先)제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백가쟁명식 의견 개진을 차단하고 개헌으로 여권 분위기를 묶어야 한다는 논리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스스로 임기를 줄이겠다는 결단을 통해 여론을 일단 달래야 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영남 지역의 한 여당 중진 의원은 "어찌 됐든 지금 윤 대통령이 정해진 임기를 모두 마치기는 어렵게 되지 않았나"라며 "그렇다면 타의에 의해 물러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대통령의 힘을 빼는 개헌이라는 방법을 통해 정국을 돌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갈 길이 바쁜 여당에서는 이미 윤 대통령 퇴진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여야 대표가 조속히 만나 거국중립내각 구성과 새로운 정치 일정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며 "윤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질서 있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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