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 1심 선고가 임박하자 민주당이 전선 정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유력 대권 주자이자 170석 거대 야당 대표의 재판 결과에 따라 정국이 요동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 든 이 대표가 승복할지는 미지수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는 본인의 범죄 방탄을 위해 무법천지의 사회적 대혼란을 일으키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다"며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 대표는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선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불법 폭력 시위에 법대로 매뉴얼대로 엄정 대응할 것을 당부드린다"며 "아무리 여론을 선동해도 본인이 저지른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친명(친이재명)계는 오는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모여 여론전에 나설 방침이다. 친명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혁신회의)는 전국의 상임위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 대표 강성 지지자 수천 명이 법원 앞에 집결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검찰독재위원회'(검독위)도 현장 회의를 진행해 검찰 수사에 대한 규탄을 쏟아내겠다는 각오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재판을 시작으로 오는 25일에는 위증교사 혐의 재판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대장동·성남FC 사건과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재판도 남아 있다. 야권 내에서도 논란이 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진행되는 15일 1심 선고는 여야 공통 관심사다. 공직선거법 관련 송사는 정치인에게 가장 까다로운 재판으로 꼽힌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 무효가 된다. 피선거권도 5년간 제한돼 출마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 대표에게는 정치생명이 걸린 기로의 순간이다. 민주당이 당 조직을 총동원해 여론전을 펼치는 이유다.
이 대표의 대권 가도 걱정과 별개로 민주당은 당의 재정도 걱정해야 한다. 이 대표가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으면 지난 대선 때 보전받은 선거보전금 434억 원을 반납해야 한다. 아무리 제1야당이지만, 당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큰 액수다.
당내 역학 구도에도 균열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연임을 통해 이재명 일극체제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미 집권플랜본부가 가동돼 차기 집권 준비를 하고 있다. 집권플랜본부장인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조직을 "이재명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당선 무효형 선고는 이런 상황의 반전 모멘텀이 될 전망이다. 현 체제에서 비명(비이재명)계가 숨 쉴 공간조차 없었다는 게 당내 전언이다. 국회 안에서 현안에 관해 어떤 의견을 내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이 대표의 당선 무효형은 이들에게 더 없는 호재다. 당장 1심 선고를 가지고 이들의 정치적 운신이 넓어지지는 않지만, 원외 인사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결집 시나리오가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30명가량의 비명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원외의 중량급 인사들과 연대하면 이 대표의 리더십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3총 3김'으로 불리는 야권 원외 인사들의 정치 행보가 빨라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총리를 지낸 이낙연·정세균·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두관 전 의원 등이 각각 어떤 방식으로든 만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비명계 한 의원은 "물밑에서는 이미 교감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동력이 훨씬 커지기에 이전 만남과는 다른 수준의 논의가 오갈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지지율 폭락으로 위기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에도 당선 무효형은 큰 호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를 '범죄자'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해 온 정부·여당은 공세를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사법부의 인증을 받은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반납해야 할 선거보전금 434억 원을 가압류해 목을 옥죄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이 대표가 벌금 100만 원 미만을 선고받으면 민주당이 웃는다. 불법 행위는 인정되지만 피선거권 제한이 없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출마 길만 막히지 않으면 '만사형통'이다.
친명으로 통하는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런 미미한 사례로 재판한다는 것 자체가 의아할 정도지만, 당선 무효형만 아니라면 어떤 정치적 타격도 받지 않을 것"이라며 "판결문을 트집 잡아 여당에서 공세를 펼치겠지만, 그 정도로는 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다"고 했다.
비명계와 여당의 공세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법리를 따져가며 '설명식 공세'를 할 수밖에 없다. 공세 줄기가 복잡해질수록 여론 호소력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 현 일극체제에 날개를 달게 된다. 탄핵 정국을 고조하려는 작업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 이 대표 스스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윤 대통령 퇴진 공세에 변화를 줄 전망이다.
임기 단축 개헌 모임과 탄핵 모임 등으로 야권 의원들이 윤 대통령 퇴진의 군불을 때는 상황에서 김건희특검법 공세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걱정을 털어버린 이 대표와 달리, 사법리스크를 기대하던 비명계의 앞날은 더욱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와 맞설 동력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심과 대법원 선고가 남겠지만, 그전까지 재판부의 입만 바라봐야 한다.
윤 대통령의 레임덕도 가속화될 수 있다. 김건희특검법을 전력으로 방어하던 상황에서 여당 내에서도 회의론이 고개를 들 가능성이 있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를 앞두고 잠시 봉합 국면에 접어든 친윤(친윤석열)계와 친한(친한동훈)계가 본격적으로 정치 투쟁을 벌일 수도 있다. 그만큼 현재 당내 분위기는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지금 재판 결과를 앞두고 있어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지금도 서로 눈을 흘기는 상황"이라며 "여기서 이 대표가 사법부의 면죄부를 받게 된다면 어떻게 당을 수습할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이미 공직선거법 재판의 고비를 한 차례 넘긴 경험이 있다. 2019년 공직선거법 재판 2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은 이 대표는 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로 극적으로 생환했다.
여당은 사법부가 법대로 판결해 준다면 무죄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가 친야 성향의 여론전을 의식하지 말고 '법에 따른 판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거리낌 없이 입법 독재를 자행하는 민주당의 겁박과 회유를 이겨내고 민주주의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는 걸 국민에게 입증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14일 이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 씨 공직선거법 1심 선고에서 김 씨가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자 날카롭게 반응하고 나섰다. 김 씨는 이 대표가 2021년 8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선언을 한 후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전·현직 국회의원 배우자 3명과 자신의 운전기사, 수행원 등 3명에게 10만 상당의 식사를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터무니 없이 높은 벌금형이 나왔다"며 "이 대표의 재판에도 이런 식이라면 전 국민적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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