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고 했던가. 지난 대통령선거 직전,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가 공개됐을 때 '대장동 몸통은 이재명이 아니라, 윤석열'이라는 이재명 대선후보 캠프 측의 선전·선동에 넘어가는 이들이 꽤 있었다.
'비리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내뱉은 주장에 불과했지만 이들의 대화 녹취록이 기사화돼 양대 포털사이트(네이버·카카오) 메인 뉴스에 뜨고, 방송사와 유수의 메이저 언론사들이 시시각각 이 내용을 대서특필하면서 이 기사를 '가짜뉴스'로 의심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선 3일 전 대중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가짜뉴스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건, 기사를 작성한 매체가 공신력을 담보하는 포털 '뉴스콘텐츠제휴사(Content Partner, CP사)'의 기사였기 때문이다.
콘텐츠제휴사는 포털로부터 상당한 전재료를 받고 기사를 공급하는 언론사를 가리킨다. 검색 결과만 노출되는 '검색제휴사'보다 등급이 높아 '뉴스검색 알고리즘'에서 상대적으로 이득을 얻는다. 검색만 되는 게 아니라, 포털 홈페이지에도 등재돼 '뉴스 확산성'이 대폭 늘어난다는 이점이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뉴스제휴 업무를 공정하게 하겠다는 명분으로 2015년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를 공동설립하고 매년 상·하반기 '뉴스 입점·퇴출' 심사를 진행해 왔다.
뉴스제휴의 '진입 장벽'을 높여, 뉴스 신뢰도와 전문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 매체와만 제휴를 맺겠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이 기간 포털과 뉴스제휴를 맺은 언론사 수가 급감했다. 특히 최상위 계약인 콘텐츠제휴에 성공한 매체는 더 적었다.
2018년 네이버에 73개 매체, 카카오에 74개 매체가 콘텐츠제휴를 신청했는데, 합격한 언론사는 뉴스타파뿐이었다.
그만큼 어려운 관문을 뚫고 포털에 '입점'한 언론사였기에 대중의 신뢰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김만배-신학림 인터뷰'를 작성한 매체가 콘텐츠제휴사가 아니었다면 포털 메인 뉴스에 뜨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이를 인용보도하는 방송사도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콘텐츠제휴사가 됐다는 건, 포털과 제평위가 해당 언론사의 '기사 품질'을 보장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다수의 유수 언론이 뉴스타파 기사를 검증 없이 인용보도하고, 당시 이재명 대선후보가 <이재명 억울한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자신 있게' 뉴스타파 기사를 475만1051건 문자발송할 수 있었던 것도 뉴스타파가 포털이 인정하는 콘텐츠제휴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뉴스타파 퇴출" 요구에 네이버 '우이독경' 일관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대선 정국을 뒤흔든 '김만배-신학림 인터뷰'는 명백한 허위보도였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대장동 의혹의 책임을 당시 윤석열 대선후보로 돌리기 위해 2021년 9월 15일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을 만나 '허위 주장'을 했고, 두 사람의 대화 녹취파일을 입수한 뉴스타파가 특정 발언을 편집해 대선 사흘 전 터뜨린 것으로 판단했다.
뉴스타파는 "김만배 씨와 지인의 대화 음성파일을 입수했다"며 마치 제3자로부터 제보받은 녹취록을 공개하는 것처럼 보도했으나 당시 신 전 위원장은 '뉴스타파 전문위원' 신분이었다.
하지만 뉴스타파는 '지인'의 직함을 '신학림 전 위원장'으로 통일했고, 네이버에 송고한 기사 바이라인에서 신 전 위원장의 이름을 제외했다. 따라서 해당 기사를 네이버로만 접한 독자들은 녹취록 속 '김만배의 지인'이 '뉴스타파 관계자'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보도 이후 뉴스타파의 기사가 여러 논란을 빚자, 여권을 중심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린 뉴스타파를 포털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포털과 제평위는 요지부동이었다. '좌편향된 제평위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고, 기존 입점 언론사의 기득권만 보호하려 한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제평위 사무국은 지난해 5월 22일 '활동 중단'을 선언한 뒤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이후 침묵을 지켜오던 네이버는 지난해 말 제평위 재구성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뉴스혁신포럼'을 출범시켰으나, 해를 넘긴 지금까지 제평위 재구성 여부는커녕, 포털 입점·퇴출 심사의 시기와 방법조차 오리무중인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네이버의 경우 '포털뉴스의 공정한 운영 방안을 위해 공개간담회를 갖자'는 여권의 요청마저 뿌리쳐, 네이버의 오만과 독선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따가운 비판이 쇄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네이버-CP사 담합 카르텔로 언론 좌경화"
이상휘 국민의힘 미디어특위원장은 지난 7~8일 연속 배포한 성명에서 "지금 네이버는 네이버뉴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대한민국 어젠다세팅'을 주도하는 미디어권력을 누리고 있다"며 "이 권력을 통해 다시 빅테크 검색시장에서의 독점력을 가중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네이버는 자의적으로 구성한 뉴스 제휴평가위원회를 통해 기존 거대 언론사 위주로 일종의 '담합 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참여한 언론사들에는 '네이버뉴스'라는 플랫폼의 여러 권리를 향유할 수 있게 '가두리 양식'을 하고 있다"며 "여기에 참여한 70여 개의 언론사들은 '언론권력'을 통해 수많은 기업들의 광고와 협찬권을 독식하고, 네이버는 이들에 △네이버뉴스 플랫폼에서의 댓글 작성 기능 △기자 및 언론사 구독 기능 △랭킹뉴스에 대한 접근권 △알고리즘 추천과 클러스터링에 있어서의 우선적 접근권을 줘 이른바 '네이버 CP 왕국'을 건설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네이버의 'CP 선정'은 '좌편향된 정치적 지형'을 더욱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만 작동되고 있다고 분석한 이 위원장은 "초기부터 민노총 언론노조와 언론노조 MBC본부가 대주주인 '미디어오늘'이 CP사로 자리잡았고, KBS와 MBC 언론노조 해직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뉴스타파'가 CP사로 등재됐으며 대표적인 좌편향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과 좌편향 미디어 게릴라를 지향해 설립된 '오마이뉴스'도 CP사로 활동하고 있는 반면, 네이버 CP사 중에 '우편향 매체'라고 분류될 만한 인터넷 매체는 '데일리안'이 유일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네이버가 여전히 뉴스타파의 기사들을 유통 중인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날렸다.
이 위원장은 "네이버가 'CP사의 뉴스 편집권한은 뉴스타파에 있다'면서 명백한 오보인 신학림 녹취록 보도를 포털에 그대로 올려놓고 있다면, 네이버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며 "그것은 뉴스타파의 책임 이전에 네이버의 책임인데도 네이버는 '제평위'와 'CP 계약'의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과연 네이버 혁신포럼이, 어떤 진일보한 개혁방안을 국민에 내놓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며 "좌편향 논란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네이버 혁신포럼의 어떠한 결정도 올바른 변화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與 포털개혁TF, '제도개혁 현실화' 성과 내야
이 위원장의 '가시 돋친' 일성 후 국민의힘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2일 오전 '포털 불공정 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네이버 등 포털의 콘텐츠제휴사 제도 개혁 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한 것.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강민국 의원이 TF 위원장을 맡고 △정무위 강명구 의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최형두·김장겸·이상휘 의원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정하 의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고동진 의원 등 유관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여한 TF가 꾸려졌다. 원외인사로는 △이상근 서강대 교수와 △김시관 미디어특위 대변인이 참여해 '전문성'과 '영향력'까지 두루 갖춘 대규모 TF가 출범했다는 평가다.
TF는 거대 포털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 행위 등을 뿌리 뽑고, 보다 강도 높은 개혁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포털 뉴스 제휴 시스템의 불공정 이슈 점검을 시작으로 △개인정보·위치정보 등의 무분별한 수집 문제 △기타 포털의 불공정 행위로 인한 소상공인 피해 구제 등, 포털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각종 문제점을 짚어볼 계획. 이를 토대로 정책적 대안까지 마련한다는 게 TF가 내건 목표다.
그러나 언론계에선 이 같은 국민의힘의 시도가 이번에도 탁상공론(卓上空論)에 그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회기 때도 거대 포털의 독과점 폐해를 시정할 법과 제도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포털TF'를 출범·운영했으나, 훌륭한 '정책대안'들이 제시됐음에도 막상 이를 '정책화'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국정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약세 흐름을 보인 탓도 있지만, 소위 '보수 진영'이 거국적으로 의기투압해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게 뼈아팠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국민의힘 포털TF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김장겸 의원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포털에 공적 책무를 분명히 지워주는 입법절차, 혹은 행정지도가 필요하다"며 "'정치기구화'될 소지가 높은 제평위를 '법정기구화'하자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한마디로 언론을 '가두리 양식장'에 가두고 여론을 독점하는 포털에 높은 '사회적 책무'를 지게 하겠다는 것. 그것이 제평위 뒤에 숨어서 온갖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포털을 정화(淨化)하는 지름길이라는 지론이었다.
◆"포털-언론 간 1:1 계약으로 돌아가야"
정치 성향을 떠나 '포털에 공적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김 의원의 주장에는 언론계 모두가 동의하는 상황이다.
다만 보수 진영에선 김 의원의 주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제평위를 원점에서 재구성하거나 아예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 보수 진영 전체가 한몸 한뜻으로 움직여야, '거대 야당'을 등에 업은 거대 포털의 '독과점 횡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인터넷언론계 인사는 "네이버 뉴스혁신포럼이 논의 중인 제평위 2.0은 이전의 제평위와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제정 및 관리를 전담하는 위원회'와 '심사를 진행하는 풀단의 분리'라는 형식상의 변경에 불과하다"며 "좌편향된 언론지형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이 계속해서 제평위를 장악하는 한, 포털 뉴스의 편향성 극복은 요원한 숙제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포털과 언론의 상호 제휴 문제를 애매모호한 민간기구에 맡기는 것보다는 포털사업자 자체 시스템으로 시장 원리에 따라 자체적으로 심사·평가하고 제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공정한 언론지형 형성에 유리하다"고 제언했다.
현직 언론인 단체인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언총)'도 국내 언론지형이 정상화되려면 포털은 물론 제평위의 '환골탈태(換骨奪胎)적 변화'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수차례 관련 성명을 배포하며 이른바 '포털 권력'에 대한 비판 여론을 환기하고 있는 언총은 네이버와 제평위의 '독단적 운영'과 '좌경화'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기울어진 언론지형을 바로잡을 수 없고 △언론자유를 되찾는 일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포털 뉴스의 공정성을 회복하려면 △먼저 정치 편향성을 극복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포털이 서비스하는 뉴스 미디어의 좌편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언총의 주장이다. 제평위의 '재가동'이 불가피하다면 △언론 현업인 △수용자 △인터넷신문 △케이블방송의 대표성을 보완하고 △정치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제평위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 때부터 '공영방송 정상화 운동'을 벌여 온 한 방송계 인사는 "언론계가 '좌경화'된 지가 이미 오래된 상황이라, 그 안에서 아무리 중립적 인사를 제평위에 참여시킨다 해도 종국엔 좌파 진영에 끌려가는 모양새가 될 공산이 크다"며 "뉴스타파 같은 매체 하나도 퇴출시키지 못한 제평위를 '포털 개혁'의 선봉에 세운다는 발상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허황된 기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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