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통령을 맞이하고 싶다
- 기자명 이동식 논설위원
- 입력 2022.05.09 06:06
- 수정 2022.05.0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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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 해설위원실장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지난 2월 말 서점에 들렀을 떼 한 잡지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월간 문화전문지를 표방하는 이 잡지의 표지 카피가 '문화대통령'이어서 "엇!"하고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 것이다. 내용을 보니 테마기획이라는 제목 아래 평론가나 문화 쪽 기자 등 5명이 선정한 5명의 스타를 소개하는 코너였다. 대중음악가 서태지, 성악가 조수미, 농구스타 허재, 최근에도 활약을 하는 MC 유재석, 그리고 특별히 어린이들의 친근한 벗이 된 뽀로로를 문화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모두 30여 년 전에 시작해서 이제 정상을 넘어 전설로 자신의 분야를 이끌고 가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획이었다. 농구대통령, 예능대통령 등의 수식어가 붙기는 했는데, 이들이 문화 전반을 골고루 대표한다고 하기도 그렇지만,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기획으로는 조금 성공한 듯싶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모두 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초미의 관심을 가졌던 시기에 문화대통령이라는 개념으로 광고를 띄웠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어떤 대통령을 맞이하는 것인가? 문화대통령을 맞이하는가? 문화의 중요성을 잘 아는 대통령일 것인가?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혹시 국짐이 만든 기사단인가
잡탕정부를 원하는대 먼 문화임
내일이면 윤석열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그런데 문화강국을 표방하던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 이후 인수위원회 시기, 취임 준비 시기를 거쳐 드디어 취임하는 날까지 이 새 정부 입에서 문화의 '문' 자도 들어본 기억이 없으니 앞으로 이 정부 아래서 문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걱정이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문화 전문가가 없었다는 지적은 많이 나왔다. 새로 문화정책을 맡을 장관 후보자도 문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문화라는 것이 꼭 순수예술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순수예술이나 공연예술, 영상예술이 기초과학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 대한민국의 문화가 국가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화정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를 적어도 누군가는 제시하고 이를 서로 협의하고 공유해야 할 터인데, 전혀 그런 과정이 없이 새 대통령을 맞이하는 것이다.
선거전이 한창이던 올해 2월 중순에 새 대통령의 문화예술 관련 일곱 가지 약속이라는 것이 발표되었다. △우리 국민 누구나 차별 없이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문화예술인의 권익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K-컬처가 세계 문화를 지속적으로 선도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받쳐주는 한편 △전통문화를 보존해 우리 문화의 저변을 단단하게 다지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한 실행계획으로 1)지역별 문화격차 해소 및 지역 중심 문화자치시대 개막 2)전 국민 문화향유시대 확립으로 문화기본권 보장 3)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맞춤형 지원 4)K-컬처를 세계문화의 미래로 발전 5)K-컬처 스타트업 지원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문화산업 선진국 도약 6)전통문화유산을 미래의 문화자산으로 보존하고 가치 제고 등이 제시되었다. 이를 보면 문화 전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듯하지만 사실은 그동안 나왔던 여러 과제를 일괄해서 모아놓은 느낌, 곧 참고서에서 답안을 베껴 제시한 느낌이 강하다.
여러 계획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4번의 K-컬처를 세계문화의 미래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인데 그 실행방안은 "한복 한식 등의 우리 민족 고유한 정체성이 담긴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시행하고 있거나, 시행하면서 문제가 드러난 일들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또 외국의 저작권 침해행위에 단호히 대처해 문화예술인들의 권익과 저작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계획이란다. 우리 문화의 국제적 위상에 상응하는 ‘문화안보’와 ‘문화주권’을 확립해 국민적 자존심을 높이고, 문화가 국민들의 삶에 자긍심과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란다. 이런 계획을 보면 구체적인 것은 없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계획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수위의 일곱 가지 약속 이후 구체적인 방안 모색이나 정책 협의 같은 고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부의 보고 내용도 공개가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새 대통령의 문화에 대한 인식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새 정부의 안착을 위해 급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안다. 청와대를 개방하는 문제,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문제, 그리고 가장 큰 이슈로 검찰의 수사권을 다 박탈하는 입법횡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점, 또 코로나로 위축된 국민들의 삶을 어떻개 지원해 주어야 하는가, 경제는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 등등 문제가 첩첩산중임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난관을 넘어서서 새 대통령은 진정한 ‘문화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 정치 논리로만 바라봐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문화는 더는 경제의 부수적인 부분이 아니다. 이제는 연관산업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다. 또 문화예술은 사회통합의 길을 이끈다. 그러한 길을 새 대통령은 천명하고 실천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세계 무대를 흔들고 있는 우리의 음악, 영화, 출판 등의 문화자산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가 숨을 쉬고 살아나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목표여야 한다. 지난해 BTS가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인 아메리칸 뮤직어워즈 대상을 받고,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 넷플릭스 드라마가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자 신한류의 소프트파워를 키워 K-콘텐츠를 육성한다는 데에 모두가 깊이 공감했다. 문제는 문화정책 비전과 실현 가능성이다. 새 대통령의 문화정책은 문화공약이라는 출발선상에서 이제 실질적이며 구체성이 있는 실천계획으로 그것을 어떻게 펼칠 것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 당선인은 말했다. "오로지 국익만을 위해 공정과 상식, 그리고 실용을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다."
맞는 말이고 과거 정리를 위해 꼭 필요한 국정운영 방침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를 극복하는 방법의 차원일 뿐이다. 새 정부는 새 정치를 열어갈 목적, 목표를 밝혀야 한다. 그것은 문화의 진작을 통한 우리 삶의 향상이어야 한다. 문화는 한 나라의 품격이고 그 원천이다. 문화예술은 인간적인 삶의 기초이자 즐거움과 보람, 소통과 통합, 발전과 번영의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건전한 문화가 뿌리를 내림으로써 우리들이 후손들과 함께 품격있고 편안하고 멋진 미래로 가는 문화정책의 비전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내일 새 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