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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폰지사기꾼의 일장찢몽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대권 꿈 무너졌던 희대의 폰지 사기꾼

 

“희대의 범죄자가 많은 무고한 이들을 삶의 절벽으로 몰아넣다가 행각이 발각되자 면피(免避)를 위해 정계에 진출하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꿈꾼다” 평일 아침에나 볼법한 이 막장드라마 시나리오와 비슷한 현상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분야의 선구자(先驅者)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세르게이 마브로디(Sergei Mavrodi‧생몰연도 1955~2018)가 주인공이다.

 

필자가 처음 마브로디 일당의 활극(活劇)을 접했을 땐 우리나라 A씨 사례를 본 따 만든 허구의 이야기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2007년 5월23일자 EPA연합뉴스 보도에는 모스크바 마트로스카야 티시나(Matrosskaya Tishina) 감옥에서 석방되는 마브로디의 소식‧사진이 적나라하게 실려 있다. 기사는 “MMM파이낸셜 피라미드 사건으로 체포(구속됐던) 이 파이낸셜 회사의 창업자 세르게이 마브로디”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MMM파이낸셜은 1989년 설립돼 2004년 폐업했다. 1993년부터 다단계(피라미드) 정확히 말하면 폰지(Ponzi)사기에 나서서 누적 최대 ‘2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폰지사기는 실제 이윤 창출 없이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의 돈으로 앞선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나눠주는 다단계 금융사기를 뜻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익이 전혀 없기에 결국 언젠가는 자금이 바닥나게 돼 있다.

 

러시아 출신인 마브로디는 소련이 붕괴될 무렵 동생‧친구와 함께 대미(對美) 무역회사로 위장한 MMM파이낸셜을 설립했다. 이들은 매년 투자금의 1000%를 배당금으로 주겠다는 파격적 조건으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사회주의에서 돌연 자본주의로 전환한 직후의 혼란 속에 미래를 염려하던 많은 러시아인이 마브로디 일당에게 꾀여 가진 재산을 모두 투자했다.

 

초기 자본을 모은 일당은 유명인을 고용한 공격적인 TV‧신문 광고 등을 통해 더 많은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심지어 모스크바 지하철 전(全) 노선을 통째로 빌려 프로모션하는 대담한 짓도 저질렀다. 자연히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 여기고서 너도 나도 지갑을 열었다. 폰지사기의 특성상 초기에는 돈이, 물론 후발(後發)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꼬박꼬박 입금되니 더더욱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얼마나 많은 자본이 쌓였으면 마브로디 일당은 모인 루블화(ruble)나 달러를 지폐 개수가 아닌 창고 단위로 세었다고 한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폰지사기임을 간파하고 1994년 7월 마브로디 일당을 탈세 혐의로 처벌하는 한편 MMM 금융거래를 모조리 동결(凍結)했다. 당시 러시아 형법(刑法)에는 폰지 관련 조항이 없었고 국가두마(State Duma) 등 의회는 입법(立法) 여력이 없었기에 궁리 끝에 러시아 검찰은 탈세 카드를 꺼냈다고 한다.

 

새로운 희생자를 끌어들여 그 돈으로 앞선 희생자에게 배당해야 했던 일당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입금이 뚝 끊기자 투자자들은 점차 일당을 의심하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독촉했다. 그러자 마브로디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내가 멀쩡해야 돈을 돌려드리든 말든 할 것 아니냐. 이렇게 된 건 다 이 썩어빠진 나라(러시아연방)의 법규(法規)가 원인이다. 내가 두마로 가서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식으로 수십만~수백만 투자자들을 선동했다.

 

놀랍게도 이게 먹혔다. 마브로디는 1995년 ‘하원’에 보무당당히 입성(入城)했으며 이듬해에는 무려 ‘대선’에 출마했다. 실로 타고난 사기꾼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체 국민은 바보가 아니었다. 대다수 러시아인은 마브로디의 실체를 똑똑히 꿰기 시작했다. 1996년 러시아 대선 1차 투표에서 더도 덜도 아닌 폰지사기꾼은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대선 1차 투표 득표율은 △무소속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35.32% △러시아공산당 겐나디 주가노프(Gennady Zyuganov) 32.03% △러시아인공동체회의 알렉산드르 레베디(aleksandr lebed) 14.52% △야블로코(Yabloko) 그리고리 야블린스키(Grigory Yavlinsky) 7.34% △자유민주당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Vladimir Zhirinovsky) 5.70% △노동자치당 스뱌토슬라프 표도로프(Sviatoslav Fyodorov) 0.92% △기타 미하일 고르바초프(0.51%)‧마르틴 샤쿰(0.37%)‧유리 블라소프(0.20%)‧블라디미르 브린찰로프(0.16%)‧아만 툴레예프(308표) 순이었다. 2차(결선) 투표에서는 옐친이 53.82%를 얻으면서 주가노프(40.31%)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일장찢몽(一場-夢‧한바탕의 찢어진 꿈)’에 좌절한 마브로디는 폰지사기의 교과서대로 그간 모은 억만금의 투자금을 들고 1997년 날랐다. 졸지에 전 재산을 잃고 원금(元金)조차 회수 못한 많은 러시아인이 차디찬 길바닥에 나앉았다. ‘잠수’ 탄 마브로디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도 폰지사기를 벌이다가 2003년 체포됐다. 출소 후인 2011년에도 MMM글로벌이라는 회사를 세워 사기를 일삼았다.

 

심지어 대한민국에도 마수(魔手)를 뻗쳐 조잡한 한글로 투자자를 모집한다고 써 붙인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선 ‘200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정치에도 미련을 못 버렸는지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MMM당(黨)이란 정당을 창당하고 각종 선거 후보도 냈으나 당연히 실패했다. 마브로디는 투자금 모아 ‘먹튀’하는 짓을 반복하며 잘 먹고 잘 살다가 2018년 3월26일 모스크바에서 62세 나이로 사망했다.

 

우리나라 유력 정치인으로서 대선주자로까지 언급되는 A씨가 최근 재차 기소됐다. A씨는 이로써 개발특혜 혐의, 대북(對北)송금 의혹 등과 관련해 네 개 재판을 동시에 받게 됐다. 그런데 A씨는 주요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심지어 정치권에선 A씨가 용산 입성 후 유죄가 선고되면 직(職)을 잃느냐 마느냐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지는, 무슨 제3세계에서나 볼 법한 웃지 못 할 풍경도 펼쳐지고 있다. 2020년대 우리 국민 수준이 1990년대 러시아 국민보다 못하리라 믿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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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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