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새벽에 쓰는 개인적 소견의 담론
없다면 뚜렷한 증거 제시해 의혹 불식시켜야
무신정권(武臣政權)은 잘 알려졌다시피 고려(高麗) 중기인 1170~1270년에 딱 100년 동안 유지된 군사정권이다. 이들은 당초 을(乙)의 서러움을 풀겠다며 일어섰으나 일부는 새로운 갑(甲)이 돼 피아(彼我) 가리지 않고 피바람을 일으켰다. 종래에는 ‘비선조직’을 운영하면서까지 남가일몽(南柯一夢)을 꿈꿨다.
18대 국왕 의종(毅宗) 재임 당시 고려는 철저한 문치주의(文治主義)를 추구했다. 무신들은 문인(文人)들로부터 거의 하인 취급을 받았다. 대표적 사건이 1170년의 ‘대장군 불꽃 싸닥션 사건’이었다.
그 해 8월 의종은 문무백관들과 함께 수도 개경(開京) 인근의 고려 최대 사찰 흥왕사(興王寺)에 놀러 갔다. 그는 무신들에게 수박(手搏) 시합을 열도록 명했다. 고구려(高句麗) 고분벽화 등에도 그림으로 남아 있는 수박은 고대 맨손 격투기의 일종이다.
어명(御名)이니 무신들은 웃통 까고서 엎치락뒤치락 했다. 한창 흥이 오를 무렵 환갑이 넘었던 대장군 이소응(李紹膺)은 젊은이들의 체력을 감당 못하고서 중도 포기했다. 그런데 대장군보다 한참 품계도 낮고 나이도 어린 문관 한뢰(韓賴)가 냅다 달려 나오더니 이소응의 ‘뺨’을 후려 갈겨버렸다. 또 “명색이 대장군이란 양반이 부하장수 하나 이기지 못하니 이 얼마나 한심한가” 조롱했다. 의종은 이를 보고 ‘박수’치며 나뒹굴었다.
눈이 뒤집어진 정중부(鄭仲夫) 등 무신들은 기어이 무신정변(武臣政變) 일으켜 문벌귀족(門閥貴族)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용상(龍牀) 밑에 숨었던 한뢰는 이소응의 철퇴 한 방에 머리가 으깨져 즉사했다. 천민 출신의 무신 이의민(李義旼)은 맨손으로 의종의 등뼈를 분질러 살해했다.
무신들은 명종(明宗)을 새 임금으로 추대하고서 이의방(李義方)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무단통치(武斷統治) 시대를 개막했다. 허나 이들 중 일부는 무신의 처우개선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갑으로 등극했다. 그 정점은 무신정권 3대 수장 경대승(慶大升)의 도방(都房) 설치였다.
경대승은 1179년 전대 정중부 일파를 제압하고 새로운 집권자가 된 터였다. 자연히 ‘적군’ 문관들은 물론 ‘아군’ 무신들 상당수도 경대승을 적대시했다. 신변에 큰 위협을 느낀 경대승은 100명의 가병(家兵)을 모아 숙위군(宿衞軍)으로 활용했다.
경대승의 도방은 호위임무뿐만 아니라 ‘정보수집 및 반대파 숙청’ 등도 은밀히 실시했다. 이들은 든든한 백만 믿고서 약탈‧학살 등도 자행해 만백성의 원한을 샀다. 이들을 체포하더라도 관부(官府)는 “몰라 뵈었습니다요” 손을 싹싹 비비며 풀어주기 일쑤였다.
도방의 규모‧권한은 경대승과 마찬가지로 전임 집정(執政) 이의민을 죽이고 새 권력자가 된 최충헌(崔忠獻) 대에 이르러 대폭 커졌다. 1200년 최충헌은 문‧무관 및 한량(閑良‧무뢰배)‧군졸들 사이에서 월등하게 힘 센 자들을 선발해 6번(番)으로 나누고서 교대로 자기 집에 숙식시켰다. 그가 외출할 때마다 6번이 함께 움직여 그 위세가 마치 출정하는 군대 같았다고 한다.
최씨정권(崔氏政權)의 2대 당주(當主) 최우(崔瑀) 시절에도 도방의 위용은 줄어들기는커녕 한 층 높아졌다. 최우는 도방 병력을 대폭 키워 내‧외도방으로 개편한 뒤 내도방(內都房)은 숙위임무를 맡고 외도방(外都房)은 사저 외부경비나 첩보‧암살 등을 맡도록 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1229년 최우가 도방을 사열할 때 그 안마(鞍馬‧안장을 얹은 말)‧의복‧궁검(弓劍)‧병갑(兵甲) 등이 호화롭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이를 볼 때 도방은 가병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위법적 예산 전용(轉用)’을 통해 운용됐던 듯하다.
최씨정권은 아예 또 다른 사병집단 삼별초(三別抄)를 새로 조직했다. 이를 통해 도방이 절대 무신정권이나 나라를 위해 쓰이는 일이 없고 오로지 최씨 집안에만 충성토록 완벽히 조치했다. 도방 규모도 36번제로 무지막지하게 확장했다.
그러나 최씨정권의 1인 독재 꿈도 결국엔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마지막 수장인 최의(崔竩)는 대기근에도 불구하고 구휼(救恤)에 인색했다. 게다가 선대의 측근들도 핍박했기에 1258년 일부 야별초(夜別抄) 병력을 이끌고 불시에 들이닥친 무리에 의해 살해됐다. 그를 지키고자 막아섰던 도방도 이 때 함께 죽임당하거나 쿠데타 세력에게 흡수된 것으로 알려진다.
더불어민주당 비명계에서 이재명 대표 ‘비선조직 경기도팀’ 존재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표 측은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사실일 경우 ‘을 코스프레’를 하면서 ‘갑 중의 갑’이 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위법적 도방까지 운영하면서 정보수집(여론조사)‧정적제거(공천학살)를 일삼은 최씨정권이 연상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온다.
필자가 경기도팀을 직접 본 적은 없으니 존재여부를 단정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나회‧미림팀‧최서원(최순실) 등을 신나게 욕했던 과거에 빗대 내로남불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당 내 사조직(私組織)은 없다는 증거를 분명히 제시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필자와 많은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칼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