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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박원순과 오버랩된 비극 뒤에 가려진 건 '피해자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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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윤수호

장제원, 박원순과 오버랩된 비극 뒤에 가려진 건 '피해자의 고통'

n.news.naver.com

다른 길 걸었지만 '권력형 성범죄' 오점 남긴 끝자락은 같아
"자살은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다…명예로운 죽음도, 면죄부도 될 수 없어"


진보와 보수로 각기 다른 길을 걸었지만 끝은 같았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고(故)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민운동의 대부'와 '정통 보수 국회의원'이 살아온 궤적은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권력형 성폭력을 저지르고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종착점만은 같았다. 두 정치인의 죽음을 마주하는 정치권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직 대통령이 추모하고,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그의 공적을 기린다. 여기에 피해자는 쏙 빠져 있다는 점까지 닮았다.
 

고(故)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연합뉴스원본보기

고(故)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연합뉴스

대통령이 추모하고 정치권은 공적 기려

박 전 시장은 '사회개혁가'로 통했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검사로 임용됐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썼다.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법복을 벗은 그는 여성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1990년대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등 대한민국 여성운동사의 큰 획을 그은 사건을 도맡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는 일왕의 처벌과 배상을 주장했다.

'변호사 박원순'은 돌연 시민운동계에 투신했다. 이번에는 사회 변화를 위해 구성원의 참여와 실천이 절실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1994년 참여연대를 만들고 2000년 아름다운재단,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하는 등 굵직한 시민단체를 남겼다. 자신이 꿈꿔왔던 사회 혁신 정책을 펼치기 위해 박 전 시장은 대중 정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서울시장이 된 그는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의 정책을 펼쳐나갔다.

반면 장제원 전 의원은 '엘리트 보수'로 꼽힌다. 부친은 부산 동서학원을 설립한 고(故)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이다. 부친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공천을 받아 부산 사상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때 장 전 의원의 나이가 만 40세였다. 총선을 앞두고 아들 논란과 공천 탈락이라는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입지는 굳건했다. 20대에선 무소속으로, 21대에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소속으로 출마해 사상구에서만 3선을 지냈다. 지역구에서 92대의 관광버스를 동원한 일은 그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장 전 의원은 날개를 달았다. 윤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캠프 종합상황실 총괄실장을 맡았고 대선 이후에는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대표주자였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인 자유시장주의·친기업·성장 기조를 주도했다. "청년 세대 혹은 서민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자유는 빵을 살 돈을 지급해 얻어지는 '의존적 가짜 자유'가 아니라 경제적 자유와 기회를 확대해 얻어진, 빵을 살 능력에 기반하는 '진짜 자유'"라며 기본소득 정책을 정면 반박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마지막은 모두 불행했다. 박 전 시장은 2020년 7월8일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고, 다음 날 실종됐으며 7월10일 서울 종로구 북악산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장 전 의원은 9년 전 비서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지난 3월 알려지고, 피해자가 사건 당시 촬영한 영상이 공개되자 3월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서로 진영은 달랐지만 각각의 정치권은 사회개혁가와 정통 보수주의자의 죽음을 애도했다. 당시 현직 대통령도 뜻을 보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 전 시장의 빈소를 직접 찾지는 않았지만 비서진과 근조화환을 보냈다. 윤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열심히 온 힘을 다해서 나를 도왔던 사람"이라고 장 전 의원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같은 부산 지역 정치인인 하태경 전 국민의힘 의원은 "동료 정치인, 제 짝지였던 장제원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명복을 빌었다.

추모 물결에 떠밀린 피해자 목소리

문제는 이들의 추모 물결에 정작 피해자의 목소리는 떠밀려갔다는 점이다. 장 전 의원의 죽음으로 피해자 A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4월1일 예정된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공교롭게도 김 변호사는 박 전 시장 사건 때도 피해자의 변호를 맡았다. 생전 장 전 의원이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며 성범죄 의혹을 부인했던 터라, A씨 측은 증거자료를 공개해 허위 폭로가 아님을 증명하려 했다. 죽음과 추모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 건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 B씨도 마찬가지였다. B씨는 당시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피해호소인'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사실관계를 밝히려던 그들의 의지도 꺾였다.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수사가 종결되기 때문이다. 경찰수사규칙 제108조에 따르면,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리게 돼 있다. 검찰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린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115조에 따라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피해자 지위를 부여받으려던 노력마저 짓밟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진실 규명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는 장 전 의원이 사망한 날, 페이스북에 5년 전 박 전 시장 사망 당시 작성한 글을 공유했다.

"부탁드린다. 고(故) 박원순 시장이 느꼈을 인간적 고뇌와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피해 여성의 마음도 헤아려봐 달라고. 한 소시민이 서울시장이라는 거대 권력을 고소하는 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뤘을지에 대해서. 그리고 고소장이 접수되자마자 피고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녀가 느낄 충격이 얼마나 클지에 대해서 말이다."

자살이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미화돼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나 교수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유일한 탈출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위해서라도 자살이 명예로운 죽음으로 포장되고 모든 것의 면죄부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는 지양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허 조사관은 말했다. "가해자의 자살은 반성이 아니다.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공격이다. 정치 지도자를 죽게 했다는 2차 가해에 피해자가 노출될 수도 있다. 이런 나쁜 선례들이 쌓이면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위축돼 버린다. 법적이든 정치적이든 책임을 지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 먼저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가장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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