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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아직 나라가 봄이 아니란 걸 아는지 70년을 살아오며 이렇게 봄이 더디게 오는 해는 처음입니다. 이 추위에 혼자였으면 절대 못 나왔겠지만 함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괜찮더라구요."
3일 새벽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 속에서도 노인부터 청년까지 수십 명의 시민들이 은박 비닐을 덮은 채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철야 시위에 나선 보수우파 시민들이다.
지난 2일 경찰이 헌재 일대를 차벽으로 둘러싸는 '진공상태화'를 완료하자 헌재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던 우파 시민들은 안국역 5번 출구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28일째에 단식을 중단한 후 철야 농성을 이어가는 전지영씨와 국민의힘 탄핵반대당협위원장모임(탄반모)까지 모두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며 안국역 5번 출구는 보수 연대의 새로운 거점이 됐다.
특히 경찰이 '진공상태 구역'을 기존 100m에서 150m로 확장하고 버스보다 높은 폴리스라인 가림막을 설치하면서 농성장은 마치 하나의 '우파 촌'을 형성한 듯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바닥에 얇은 비닐을 깔고 은박지를 이불 삼아 잠을 청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나라 걱정이 나와 앉게 했다"고 입을 모았다.
50대 여성 장모씨는 "선고가 코앞인데 집에 있다고 잠이 편히 오겠냐"며 "애국이 별것 아니다. IMF 때 금 한 쪽 내면서도 '이게 소용이 있나' 싶었지만 그게 나라를 살렸다. 지금도 '이게 뭐 별건가' 싶은 행동들이 나라를 살릴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새벽 6시가 지나 동이 트기 시작하자 바닥에 깔아두었던 비닐을 정리하며 출근 준비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비닐을 개고 있던 자원봉사자 40대 여성 김모씨는 "한밤중에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면서 "아침이 되면서 일터로 나가시는 분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농성장 한쪽에서는 검은색 패딩에 모자를 눌러쓴 20대 청년이 버너 위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컵라면과 커피믹스가 담긴 종이컵에 물을 붓고 있었다. 그는 "아침에 학교에 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청년끼리 당번을 정해 교대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에게 유자차를 건네받던 70대 여성 최미진씨는 "손주 같은 청년들이 이렇게 나와줘서 든든하다"며 "장정들이 옆에서 지켜주니 한밤에도 무섭지 않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생수병, 핫팩, 은박지 등 생필품과 함께 손 글씨로 적은 메뉴판까지 정리해 둔 한 시민은 "이것 더 필요하신 분 계세요?"라며 시민들을 챙기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이름을 묻자 그는 "이름 밝힐 필요가 뭐 있나. 그냥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봉사자들이 나눠준 라면과 농성 현장에서 만든 주먹밥을 먹으며 아침을 해결한 시민들은 함께 담요와 바닥에 깔렸던 비닐을 정리하고 낮 집회를 위해 다시 의자를 설치했다.
40대 여성 김모씨는 "복잡한 조직이 없어도 서로 알아서 챙기고 도와준다"라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밤새 서로 담요 덮어주고 찬바람 막을 판자도 같이 옮긴다"고 연대 모습을 설명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4/03/20250403000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