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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법은 필요한 법을 약화시킨다.”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정치철학자 몽테스키외의 저서 ‘법의 정신’의 한 구절이다. 1748년 쓰인 이 문장은 300년 가깝게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섬뜩한 현실이 돼 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2일 이동통신3사의 번호이동 가입자 조정 담합 행위에 대해 총 114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비롯됐다.
공정위 제재에 대해 기업이 반발하는 경우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이통사는 물론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까지 반대하던 상황에서 공정위의 제재 판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통3사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을 준수하기 위해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와 함께 시장상황반을 운영하며 담합을 추진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시장상황반은 어디까지나 단통법 준수를 위해 방통위 주도로 설립된 곳이다.
당시 이통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이통3사는 단통법 위반으로 방통위로부터 제재 받은 횟수만 32회, 누적 과징금 부과액만 총 1464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이번에 공정위가 이런 방통위의 규제를 따른 것을 두고 담합이라고 제재하면서다. 이통사는 그야말로 황당한 처지에 몰렸다. 방통위의 단통법을 따르면 공정거래법 위반이 되고 공정거래법을 따르면 단통법을 위반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공정위는 이통3사가 방통위 공무원이 함께 있는 장소에서 담합했다고 판단하면서 정부가 사실상 담합의 공범이 되는 웃지 못 할 상황에 놓였다. 방통위와 과기부는 수차례 공정위에 담합 처벌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정위의 무리한 처벌이 다른 정부부처를 공범(?)으로 만드는 사이 이통3사는 단통법 위반으로도 과징금을 냈고, 담합으로도 과징금을 내야 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이통3사는 즉각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예고한 상태지만 이 불확실성이 시사하는 불안은 당분간 잦아들지 않을 모양새다.
무엇보다 이통3사는 향후 방통위의 규제나 법집행에 대해 순수하게 이행하더라도 다른 정부기관으로부터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됐다. 혹은 정부기관의 규제가 담합으로 판단되는 근거를 제공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하소연까지 나올 정도. 이쯤 되면 기업과 정부부처간 신뢰와 연속성, 정당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처지가 됐다.
공교롭게 단통법은 이제 낡은 법안이다. 오는 7월 22일 효력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때문에 공정위의 담합 제재가 딱히 이통3사의 가입자 경쟁을 촉발시킬 요인도 없다. 무엇을 위한 제재인지, 무엇을 처벌하는지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정부부처가 담합과 단통법을 두고 다투는 동안 이통3사는 미래 성장의 가능성을 AI 산업에서 발견하고 투자경쟁이 한창이다. 재원 마련을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자산매각, M&A가 이뤄지고 있다. AI의 ‘골드타임’으로 꼽는 이 시기에 기업을 몇 년이나 행정소송으로 발을 묶게 하는 것이 과연 IT 강국 대한민국 정부의 최선이었을까.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3/12/20250312002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