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가져올 험난한 지각변동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를 주창하면서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를 골자로 하는 트럼피즘(Trumpism)이 더욱 강력하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회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장악한 '레드 스위프(red sweep, 공화당 상징색인 붉은색에 빗댄 표현)' 시나리오까지 완성돼 의회의 지원까지 받으면서 더욱 강력한 대내외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무역 관세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등을 망라하는 모든 분야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넘어서는 패권주의가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면서 여러 국가의 과도한 긴장을 동반하는 트럼프 포비아(phobia)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다.
트럼프 시즌2는 기본적으로 관세를 최대의 무기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미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 부과를 선언했고, 특히 중국에는 60% 이상의 고율 관세 부과를 공언했다.
심지어 오랜 우방인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서는 무역협정 재조정까지 언급하면서 25% 관세를 추가 부과하는 강수를 뒀다. 보호주의 앞에는 피아(彼我)가 따로 없음을 선포한 셈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여기에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가입한 경제 협력체 브릭스(BRICS)를 향해서도 관세 100%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들 국가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경우 100% 관세로 미국 수출 자체를 아예 막아버리겠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이렇게 모든 국가에 대해 높은 무역장벽을 쌓으면서 트럼프 시즌2에서는 더 이상 세계화나 시장경제 바탕의 자유주의 질서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 보호무역주의와 고관세 정책을 통해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경제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사실상의 경제 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를 선언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관세 위협은 그가 세계 무역을 뒤집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며 "트럼프의 위협이 궁극적으로 거래자로서의 그의 능력을 보여주든, 그저 혼란을 일으키든, 그것은 트럼프가 미국에 대한 무역 이점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관계를 뒤집고 싶어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고 진단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도 퇴조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미 '세계의 경찰' 역할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미국을 위한 외교를 추구해 나가겠다는 구상을 여러 차례 밝혔다.
전임 정부가 추구했던 민주주의 가치나 다자주의 제도 확대가 아니라 미국의 국가 이익 관점에서 동맹국이나 여타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재편하려고 할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구했던 제국으로서의 미국을 재건하려는 세계관을 가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을 기초로 유럽연합(EU)이나 일본, 한국 등에 대해서도 이른바 '안보 무임승차'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GDP 대비 방위비 증액이나 미군 주둔비용에 대한 분담금 제고를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CNN은 "트럼프는 다른 대통령들이 수십년간 쌓아온 동맹을 무시하고, 양쪽 모두에게 맞는 타협에 저항하기에 미국의 우방국들은 그가 집권하면 미국과 정상적 관계를 관리하기 어렵다"며 "이러한 자세는 두 번째 임기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지명자는 상대국의 보복 관세에 대해 '안보동맹'을 무기로 활용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보다 한층 강경하고 노골적이다.
미란 지명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나 한국, 일본 등 동맹·우방국이라도 대미 보복관세로 응한다면 "공동 방위의무나 미국의 안보 우산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선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권위주의 국가의 정상과도 개인적 친분을 내세워 담판을 통해 분쟁이나 갈등을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지속해서 밝혀왔다.
최근에는 '영토 확장 주의'까지 드러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린란드를 두고 덴마크와 갈등을 빚고 있다. 캐나다에는 미국의 51번째 州로 편입하라는 조롱을 던졌다. 파나마가 소유한 파나마운하에 대해서는 미국이 통제권 확보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불법이민에 강한 불만을 토로해온 트럼프 당선인은 '멕시코만(Gulf of Mexico)'의 명칭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겠다면서 멕시코를 자극했다.
이 같은 공세적 대외 행보는 각국의 내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사퇴를 선언했다. 트럼프 2기 실세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유럽 극우 성향 정당에 지지 의사를 밝혀 영국, 독일, 스페인에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제 미국은 동맹국이나 전통적 우방국도 철저히 거래의 관점에서 극단적 이익 추구에 나서며 관계를 재정립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미국 우선주의이며 세계 패권주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으면서 안보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한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나타날 국제질서 변화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대통령선거 기간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을 "Money Machine(현금인출기)"으로 표현하며 압박했다. 언제든 한국에 큰 부담이 될 카드를 뽑아 들 수 있다고 전제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에 한국의 정치 리더십은 사실상 공백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12.3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여파로 대미 정상외교를 통한 선제 대응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의회 산하 싱크탱크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관세, 주한미군 감축,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의 측면에서 한국에 강한 압박이 예상된다면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한국이 일방적으로 휘둘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CRS는 보고서에서 "2024년 12월 한국은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정책 등 미국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영국 경제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도 지난달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한국 기업들이 대응체계 미비로 인한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경제 영역 전반에 걸쳐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경쟁력 강화, 대외협력 확대 등을 통해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또한 한국경제가 회복되는 데 관심을 두고 총력을 기울여야 하며 대기업들도 기술 혁신과 시장 개척 다변화에 더욱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1/16/20250116000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