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의 탄핵 적법성이 가려지지 않은 시점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가 단행한 헌법재판관 후보자(정계선·조한창) 임명은 '악수'(惡手)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임인 한 전 권한대행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이 인용되면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가 무효가 되고 최 권한대행의 지위와 그의 헌법재판관 임명도 원천 무효가 되므로 혼란만 더 키운 셈이 됐다는 지적이다.
◆崔 결정, 국무위원 전달 못받아 '무리수'
최 권한대행은 31일 사회주의 지하 혁명조직인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보류하고 정계선·조한창 후보자 2명을 임명했다.
최 대행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경제와 민생 위기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로 결정했다"며 "계엄 이후 확대된 경제 변동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임명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임명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지만, 해당 결정은 국무회의 참석자 대부분이 사전에 전달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져 논란을 키웠다.
이 때문에 이어진 비공개회의에서 다수의 국무위원이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위원들은 “왜 상의도 없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했느냐” “한덕수 총리가 결정 내렸어야 할 일”이라고 따져 물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치적으로 중차대한 사안인데, 여야(與野)와 어떤 사전 협의가 있었느냐”고 묻자, 최 권한대행은 “혼자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김태규 방통위원장 대행은 “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국무위원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한 처사”라며 “총리와 달리 국회 동의조차 필요없는 장관급 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최 권한대행은 “내가 무리한 일 하는 것은 잘 안다”며 “무안 공항 사건만 아니었어도 이미 사직하려고 했다”고 했다. 김 대행은 최 권한대행의 결정에 반발해 1일 사직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한 총리도 내리지 못한 결정을 최 권한대행이 내릴 수 있느냐”며 “한 총리가 탄핵 심판에서 승소해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한 총리가 고심 끝에 헌법재판관과 관련된 여야 합의를 해달라고 하면서 탄핵소추까지 당했는데, 어떻게 며칠 만에 뒤집을 수 있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고성이 나오며 논쟁이 격화되자 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 종결을 선언하고 회의장을 떠났다.
◆'경제' 명분 불구 화 키워…與 "崔, 절차적 공정성 훼손"
최 대행의 결정은 여야 모두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31일 "야당의 탄핵 협박에 굴복해 헌법상의 적법절차 원칙을 희생시킨 최 대행의 결정은 잘못된 선례로 남을 것"이라며 "대통령 탄핵심판의 절차적 공정성을 훼손하는 선례"가 될 것이라면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검사 출신인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 탄핵 심판은 국가 중대사다. 어느 때보다도 재판 과정에서 적법 절차의 완결성이 중요하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기각과 인용 중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 사회는 극심한 대립과 혼란을 겪을 것이다. 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길은 절차적 공정성에 만전을 기하는 것뿐"이라며 "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은 헌법상의 '소추와 재판 분리'라는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탄핵소추안인 국회가 탄핵 판결의 주체인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정을 수습하고,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따라서 국정의 현상유지를 기본으로 해야 하고, 권한의 범위를 현상변경까지 확대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그런데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은 중대한 현상변경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최 대행이 국회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최 대행이 민주당이 요구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보류하고 '쌍특검법'(내란 일반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위헌적이라는 논리를 폈다.
◆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 崔 대행에게 집단 사의 표명
최 대행의 독단적인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진 전원의 집단 사의 표명으로 이어졌다.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장호진 외교안보특보 등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진 전원이 1일 최 대행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실은 31일 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이례적으로 입장을 내고 "권한 범위를 벗어난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권한대행의 대행 직위에서 마땅히 자제돼야 할 권한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 "韓 총리의 지조를 무너뜨린 崔 대행 사퇴하라"
최 대행의 결정에 대한 고위 공직자들의 공개적인 비판도 이어졌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기 전에는 헌법재판관 임명도 절대 안 된다고 호소해온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1일 페이스북에 "사랑하는 후배 최상목은 즉각 사퇴하라. 대통령의 목을 졸랐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길을 걷지 않고 민주당의 편에 섰다. 나라 망치는 길을 선택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 없다. 누가 해도 더 나을 것이다. 즉각 사퇴하라"고 적었다.
김성회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종교다문화비서관도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 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으면 탄핵하고 내란죄로 기소하겠다는 야당의 겁박에 굴복한 것"이라며 "이는 한덕수 권한대행이 탄핵을 당하면서까지 대통령의 국정기조를 바꿀 순 없다며 지조를 지킨 것을 무너뜨린 것"이고 비판했다.
장시정 전 카타르 대사도 31일 페이스북에 "우선 이 사람은 자신의 '대행'이라는 법적 지위조차 아직 그 합헌성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 아닌가. 더욱이 한 총리가 보류 의사를 명확히 밝힌 재판관 임명 문제로 탄핵을 당하고 그 후임이 된 입장에서 그것을 번복한 것이다.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신의조차 저버린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 韓 총리 권한쟁의심판 인용되면 崔 대행의 임명 원천무효
최 대행의 결정은 한 전 권한대행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결과에 따라 원천적으로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향후 혼란의 불씨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여소야대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위한 의결정족수(재적의원 3분의 2 이상)가 아닌,국무총리 탄핵을 위한 의결정족수(재적의원 과반)로 한 전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헌재 산하 헌법재판연구원이 2015년 발간한 '주석 헌법재판소법'는 "권한대행자의 탄핵안 의결정족수는 대행되는 공직자의 정족수를 기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대목을 집필한 김하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무총리 시절 행위로 뒤늦게 탄핵 소추될 경우 기존 국무위원 신분 기준인 151석을, 반면 권한대행 직무 중 탄핵사유가 발생했다면 200석이 기준이 된다. 즉, 탄핵 소추 사유가 언제, 어떤 직책에서 발생했는지에 따라 두 가지 기준이 모두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장 전 대사는 "지금 6명 체제로 가면 최소한 1명의 탄핵 반대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8명 또는 9명 체제로 갈 경우 탄핵 인용의 확률이 훨씬 커진다는 점에서 이것은 자신을 발탁해 준 윤 대통령에 대한 배신임에도 틀림없다"며 "만약 한 총리 탄핵소추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최 대행의 헙법적 지위가 원천 무효가 되고 그러면 그에 의한 헌재 재판관 임명도 원천 무효가 되는 게 맞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불가피한 임명이라 하더라도 이런 졸속은 안 된다"고 비판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1/01/20250101000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