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된 지 한 달여 만에 '드론받이' 신세로 전락해 대규모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북한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파병 사실조차 숨긴 채 추가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 '인민대중 제일주의'와 '이민위천'(以民爲天)이라는 표어를 선전·선동 수단으로 내세워 내부 결집과 단속에 몰두한 김정은 정권이다. 이에 전쟁 범죄자인 김정은에 대해 추후 국제형사재판소(ICC)나 국내 법원에서 침략 범죄, 전쟁 범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 "북한군 1만1000여 명 중 1100여 명 사상 … 추가 파병 가능성"
21일 외교가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지난 19일 국회 정보위원회를 상대로 연 비공개 간담회에서 "쿠르스크에 배치된 1만1000여 명으로 추정되는 북한 군 일부가 12월 들어서 실제 전투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최소 1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부상자는 1000명 가까이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많지 않은 교전 횟수에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배경으로 개활지라는 낯선 전장 환경에서 북한군이 전선 돌격대 역할로 소모되고 있는 점, 드론 공격에 대한 북한군의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러시아군 내에서도 '북한군이 드론에 무지해 오히려 짐이 된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은 "북한의 파병 여력은 충분하다. 폭풍군단은 10개 여단·4만6000명 규모로, (기존에 파병된) 1만1000명을 고려해도 추가 파병 여력을 갖고 있다"며 "폭풍군단 내에서 추가 병력 차출설이 돌고 있고, 김정은의 훈련 참관 준비 정황도 포착됐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까지 쿠루스크를 탈환하기 위해 대규모 소모전에 나선 상황에서 북한군의 추가 파병 가능성은 높다고 점쳐진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한국군도 베트남전에 1964년부터 1973년까지 32만 명이 파병됐다"며 "이 베트남전은 게릴라전이기에 전사자가 5000명 정도였다. 북한군은 러시아에 1만1000명이 파병됐는데 하루 평균 1200명씩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1만1000명이 가서 수백 명이 사망한다면 전력이 금방 소모된다"며 "보충병이 없으면 정상적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므로 추가 파병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망했다.
◆北 김정은, '인민대중 제일주의' 내걸고 내부 단속 주력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파병 사실을 숨긴 채 관영 매체를 통해 '인민대중 제일주의'와 '이민위천'을 부각하며 내부 결집과 단속에 주력하는 등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 압록강 유역 수해를 입은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수재민들이 넉 달간 평양살이를 마무리한 후 최근 김정은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며 노동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와 관련, 김인애 통일부 부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수해 직후부터 김정은이 수재민을 최우선으로 챙기고 수해 피해 지역의 복구 현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모습을 연출했다"며 "애민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인민대중 제일주의는 '인민 중시', '인민 존중', '인민 사랑'을 원칙으로,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옹호·보장하고자 복무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계속해서 제시하고 강조하는 일종의 표어다. 이민위천은 중국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표현으로, '백성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이다. 사실상 인민대중 제일주의와 같은 뜻이다.
인민대중 제일주의와 이민위천은 김정은 체제가 활용하는 핵심적인 체제 정당화 기제, 민심을 장악해 권력을 안정화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인덕정치'를 강조함으로써 위로부터의 시혜를 강조했다면, 김정은은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이민위천을 통해 모든 정책의 우선순위가 주민의 생활 개선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민대중제일주의라는 표현은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 처음으로 포함됐다.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 계기 개정 당규약은 "인민대중 제일주의 정치를 사회주의 기본 정치 방식"이라고 규정했다.
김정은은 지난 10월 '일군들은 당의 이념과 정신을 체질화한 공산주의 혁명가가 돼야 한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수해 이재민을 평양에서 보호했고, 공장 중심의 지방발전 20×10 정책을 보건시설·과학교육 및 생활문화시설·양곡관리시설 건설로 확대했다고 언급하며 "창당 이념, 창당 정신의 진수는 인민대중 제일주의"라고 강조했다.◆인민대중 제일주의 역효과 날 가능성 … "파병·사상자 알려지면 주민 동요할 것"
그러나 북한의 불법 핵무장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대한 파병 사실이 알려지면 김정은이 내세우는 인민대중 제일주의와 이민위천은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키우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조 석좌연구위원은 "북한 경제가 아주 안 좋은 상황이다. 환율도 몇 배 폭등했고, 올해 농촌진흥청 발표에 따르면 식량 생산량도 감소했다"며 "김정은은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자신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내세우며 인민을 사랑하고 위한다는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러시아 파병 소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소문이 돌고 있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 파병돼) 대규모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주민들에게 알려지면 내부 동요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도 뉴데일리에 "북한 병사들이 투항하도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도하고, 김정은 정권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파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북 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은 군인을 소모품처럼 파병하며 죽음으로 몰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추후 국제형사재판소(ICC)나 국내 법원에서 김정은에 대해 침략 범죄, 전쟁 범죄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우리 정부도 국제사회에서 계속해 문제를 제기하고 우방국과 성명을 내는 등 노력을 계속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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