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예산안을 볼모로 잡고 권력기관 길들이기에 나섰다. 정권 퇴진 집회에서 물리력을 행사한 경찰의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삭감하겠다면서 현 정부 관련 수사를 맡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예산은 증액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표의 1심 재판을 앞두고 대법원 예산은 증액, 검찰 특활비는 전액 삭감한 것과 같은 '정략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전날 비공개회의에서 경찰 특활비 30억 원가량을 삭감하는 방안에 의견을 모았다. 경찰이 지난 주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열린 정권 규탄 집회에서 '과잉 진압'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민주당·조국혁신당·기본소득당 등 야 3당 행안위원들은 입장문을 통해 "경찰청장의 사과가 없다면 경비국 관련 예산 전액과 특활비 등을 꼼꼼히 따져 공권력이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행안위원들은 "민주당이 행안위 예산안을 볼모로 잡고 경찰청장의 일방적 사과를 강요했다"고 반발했다. 민주당이 사실상 경찰을 상대로 '협박'을 한 것이라는 문제 제기다.
앞서 민주당은 검찰 특활비와 특정업무경비(특경비)도 전액 삭감하기로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8일 검찰 특활비 80억900만 원과 특경비 506억9100만 원을 전액 삭감하는 예산안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이를 두고 권력기관을 길들이기 위한 감액 예산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그간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해 검찰과 대립각을 세운 민주당이 이번에는 예산 심의권을 무기로 압박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를 수사한 검사를 탄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검찰 보복성'으로 활동 예산을 다 깎아 버렸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대법원 예산을 240억 원 넘게 증액한 것을 두고는 "국가 예산을 무기로 재판 거래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가 각각 오는 15일과 25일 진행되는 가운데 법원 회유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현 정권을 겨눈 각종 수사를 진행 중인 공수처에 대한 예산 증액도 눈에 띈다. 민주당은 법사위에서 정부 원안보다 4억5900만 원 증가한 공수처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공수처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수수 사건과 해병대원 순직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민주당이 정부 예산에 대한 대대적 손질에 나선 사이 미래 먹거리 산업의 활로를 개척할 '반도체특별법'은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11일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 근거 등을 담은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이철규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보조금 지원 외에도 반도체 지원기구 구성, 반도체 클러스터 인허가 의제, 근로 시간 유연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당이 당론으로 정할 만큼 반도체특별법에 사활을 건 이유는 트럼프 2기 정부를 앞두고 반도체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 53조 원, EU 64조 원, 일본 23조 원 등 주요 경쟁국들이 반도체 기업에 쏟아붓는 보조금에 대응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민주당도 반도체 산업 지원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근로 시간 유연화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근로 시간 문제 등 다른 이슈를 (반도체특별법에) 연계하면 (법안) 처리 속도만 늦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 통과를 위해 민주당의 협조를 부탁했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반도체 패권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며 "특별법이 무분별한 유연화를 막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 민주당도 수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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