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식시장 정상화를 명분으로 상법 개정에 착수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결정한 뒤 당 안팎에서 쏟아진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일환으로 '기업 손보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 여당과 재계는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법인세 인하 등 대대적 감세와 규제 철폐 등 친기업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는 상황에서 우리 야당은 기업 옥죄기에 나서는 것이 합당하느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정기국회 안에 반드시 상법 개정을 해서 지배주주들의 지배권 남용을 막고 주식시장이 정상화되는 길을 찾도록 하겠다"며 "그 외에도 주주들이 공평하게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주들이 회사의 주인으로 제대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각종 소수 주주권 보호를 위한 장치도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소액 주주의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이다. 이 외에도 집중 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재계는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노란봉투법'(파업 노조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과 '횡재세'(기업의 초과 이윤 일부 환수) 등과 마찬가지로 이번 상법 개정안이 기업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소액 주주들의 소송 남발로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 때문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4일 펴낸 '미국 M&A(인수합병) 주주대표 소송과 이사충실의무' 보고서에서 "상법에 강행규정으로 주주와 이사 간 직접적인 책임 관계가 생기면 M&A나 기업 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주주들이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주주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미국에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상장회사 인수합병 거래(1억 달러 이상) 중 3분의 2 이상이 주주대표소송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도 상법 개정에 부정적인 반응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기업의 주주는 외국인투자자, 기관투자자, 사모펀드, 소액 주주 등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주주들이 있는데 이들의 이익을 위한 충실 의무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상법 개정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금투세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한 이후 당 안팎에서 불거진 반발 여론을 달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 대표가 '폐지'로 못을 박은 뒤 진보 진영에서는 "표를 의식해 원칙과 가치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금투세 시행'을 강경하게 주장해 온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도부가 결단한 만큼 저도 당인으로서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정치적 여건이나 주식시장 상황을 봐서 재입법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당장은 '금투세 폐지'라는 당론에 따르겠지만, 추후 금투세를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민주당 최대 의원 그룹인 '더좋은미래'는 입장문을 내 이 대표의 금투세 폐지 결정에 "우려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금투세는) 상법개정과 함께 다시금 시행해야 할 제도"라고 강조했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등 정당들은 금투세 폐지를 골자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상정되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했다.
야권 유력 대선 후보인 이 대표의 상법 개정안 추진을 두고 포퓰리즘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결국 경제 논리보다는 진보 진영 및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 논리가 우선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서울 소재 한 경제학과 교수는 "주주는 주가가 올라가면 이득을 보는 게 목적이지 경영에 참여하는 게 아니다"며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면 투기 자본도 사실상 주주인데 회사가 성실한 의무를 다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대표가 금투세 폐지를 빌미로 상법 개정이라는 미끼를 던진 것"이라며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포퓰리즘"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은 자국 기업을 키우기 위해 올인하는 국제적인 흐름과도 배치된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이 기업 투자에 대한 대대적인 보조금 지급과 규제 철폐에 나서는 마당에 한국은 외려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모래 주머니 법안'을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의 법인세율은 35%에서 21%로 대폭 떨어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유세에서 법인세를 6%포인트 인하하겠단 공약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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