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0.25%P 인하했다. 중국의 금리인하는 7월 이후 석달 만이며 올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앞서 중국인민은행은 지난달 24일 시중은행의 지급준비율을 0.5%P 낮춰 금융시장에 1조위안(약 191조원)을 공급했다. 이달 17일에는 자금난에 빠진 부동산업체에 연말까지 1조7700억위안(약 340조원)을 긴급 투입하기로 했다.
이달 말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향후 3년간 6조위안(약 1150조원)의 특별 국채 발행에 나설 것이라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인하, 양적완화, 재정투입 등 전방위로 돈을 퍼 나르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경기 부양에 사활을 거는 것은 올해 5% 경제성장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4.6%에 그치면서 지난해 1분기 4.5%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2분기에도 4.7%에 그친 바 있어 연간 성장률 목표인 5% 달성이 어려워졌다.
내수는 물론, 부동산 시장 침체까지 장기화하는 데다 물가상승률까지 0%대에 그치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저물가)에 빠져들고 있다는 진단이다. 수출마저 꺾이면서 성장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여기에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서방 기업들이 중국 투자를 꺼리면서 외국인 직접투자(FDI) 역시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1000억달러에 달했던 FDI는 올해 1분기 200억달러로 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중국의 경우 경기 침체가 오면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통해 경기를 부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방정부의 막대한 부채 때문에 이러한 부양책도 쓰기 어려운 상황이다. 장기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대두되는 까닭이다.
로이터통신은 올해 중국의 성장률이 4.8%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면서 내년에는 성장률이 4.5%로 추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4%대 성장은 가볍게 여길 수치가 아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2.2%), 2022년(3.0%)을 제외하면 '천안문 사태' 직후인 1990년(3.9%) 이후 가장 낮다. 2010년(20.6%) 이후 하락세가 지속한 점을 고려하더라고 성장률이 6~9%대를 오르내리던 때와 비교하면 충격적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와 지방재정 부실화의 그림자가 그만큼 짙게 드리워진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일본의 장기 불황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부동산 등 자산가치 폭락, 소비 부진, 실업률 급증 등 중국 경제 전반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일본의 장기 불황 직전과 비슷하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도 성장률 5% 목표 달성 실패보다 일본식 장기 불황을 더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중국의 부진이 남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 경기 침체로 가장 타격을 입는 나라가 사실상 한국이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25%에 육박했던 과거보다는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제1 교역 상대다.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 산업의 대중 수출의존도는 40%를 웃돈다. 중국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대중 수출이 20% 급감한 2023년에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2% 줄어드는 부정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수출액(5086억달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2%다. 정부가 올해 초 야심 차게 내건 '최초로 수출 7000억달러,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 수출국 달성' 목표의 전제는 중국 시장에서의 선전이었다.
지난해 10월부터 12개월 연속 수출이 플러스 행진을 이어가면서 기대감을 키웠으나, 중국의 경기 침체라는 복병을 맞닥뜨린 것이다. 이달 20일까지 수출은 전년대비 2.9% 줄었다. 남은 두달여 동안 연간 수출 목표의 25%를 채워야 하지만, 중국 경기가 반등하지 못하면 국내 경기도 함께 가라앉을 수밖에 없어 악전고투가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굴기', '조선업 굴기' 등 공격적으로 기술격차 좁히기에 나서고 있는 만큼 기술 측면에서도 위협받고 있다. 실제 중국의 R&D 집약도는 GDP의 2.64%로, 유럽연합(EU)의 평균을 웃돈다.
무엇보다 반도체 굴기가 무섭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전통적인 메모리 시장뿐만 아니라 파운드리(위탁생산)와 차세대 분야에서도 성과가 뚜렷하다.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는 4년간 생산능력을 5배나 키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강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 최초 232단 낸드 양산으로 충격을 준 양쯔메모리(YMTC)도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중신국제(SMIC)도 어느새 대만의 UMC까지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세계 D램 생산능력에서 중국 비중은 2022년 4%에서 올해 11%로 급증했다. 모건스탠리는 중국의 메모리 생산능력이 내년 말에는 16%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은 "기술은 이제 경제성장의 도구를 넘어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며 "첨단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이고,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 또한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세계 2위의 거대 시장인 중국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과거 자동차, 스마트폰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주력 수출품목 발굴에 업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중국의 중간재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중국이 한국 최대 무역흑자국에서 적자국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도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차이나 쇼크'가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려면 대중 수출 침체 장기화에 대비한 다각적 대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한 국가와의 교역이 전체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신흥 시장으로 부상 중인 인도를 비롯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공략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에서는 기술과 품질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지금 중국의 경기 침체는 장기 침체의 서막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 큰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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