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이 '방어적 목적'으로 핵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파장이 일고 있다. '자위적 방어'를 명분으로 핵 개발을 정당화하는 북한의 논리를 답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문 전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한 하버트 R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날 공개한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 트럼프 백악관에서의 나의 임무 수행'에서 2017년 6월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후일담을 공개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북한 김정은은 방어를 위해 핵이 필요하다고 믿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핵을 포기한 뒤 축출됐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등과 비교하면서 나온 발언이었다고 한다.
미국 측 인사들은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펜스 부통령은 문 전 대통령에게 "이미 북한은 서울을 겨냥하고 있는 재래식 포를 보유하고 있는데 왜 추가로 핵이 필요하겠느냐"며 "우리는 김정은이 '공격적 목적'으로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문 전 대통령이 언급한 '방어를 위한 핵'은 북한이 대외적으로 밝힌 핵 개발 명분과 유사하다. 북한은 그간 미국 등의 강대국으로부터 자체 보호 수단을 갖기 위한 '방어적 핵 개발'의 정당성을 주장해 왔다.
주영철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참사관은 지난 3월 유엔 제네바사무소에서 열린 군축회의에서 "북한의 핵 억지력은 미국의 핵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지키려는 목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의 북핵에 대한 인식은 자신이 고집해 온 '대북정책'과 맞닿아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북한의 핵을 '체제 보장용'이나 '대미 협상용'으로 보고 그 위협을 과소평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으나 북한은 지금까지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해 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유사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의 말과 다르게 핵을 '공격적 목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민주당은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포용적인 대북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 GPS 전파 교란, 단거리탄도미사일 등 도발에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선언하자 민주당은 "정부 대응이 유치하고 졸렬하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현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을 반대하며 "더러운 평화가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는 말을 설파하고 있다. 이른바 '더러운 평화론'이라고 불리는 그의 대북관은 여권으로부터 "평화를 가장한 굴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울러 전쟁 아니면 평화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되레 전쟁 위기감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울러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으로 재판 중인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공모해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에게 자신의 방북 비용을 포함한 총 800만 달러를 북한에 대납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재명 경기도'는 유엔의 대북 제재 등 국내외 법과 규정을 피해 남북 교류 활성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이 대표도 민주당의 전통적인 대북 정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문 전 대통령의 '북핵은 방어용' 발언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북한에 핵이 있고 우리는 없는 상황에서 그 핵은 공포의 대상이다. 공격용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의 대북 정책 기조에 대해선 "지금처럼 남북 관계가 닫혀 있는 상황에서 대화를 통해 활발한 교류를 유도해야 한다"며 "대화를 통한 평화로 가는 원칙을 이 대표도 고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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