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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6·25 개전 초 인민군과 서울까지 내려와… 1946년에는 김일성 대면

뉴데일리

광주광역시가 혈세 48억원을 들여 기념공원을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정율성(1914~1976)이 6·25전쟁 개전 초 인민군과 함께 서울로 내려 온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문 전 대통령의 방중 준비를 하면서 정율성 서훈 방안을 검토했다. 서훈 절차는 문 전 대통령 방중 2주 만인 같은 달 29일 정율성의 조카인 박모씨가 경기남부보훈지청에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심의는 신청 접수 넉 달 만인 2018년 4월24일 열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공적심사위원회는 정율성의 행적과 관련, 1946년 2월 정율성이 북한 김일성을 대면했고 6·25전쟁 발발 후 개전 초기에는 서울까지 내려온 사실을 확인했다.

보훈부 자료를 살펴보면, 정율성은 해방 이후 황해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취임했으며, 1946년 2월에는 부부 동반으로 북한 김일성을 대면했다. 1947년 봄에는 평양으로 이주해 조선인민군 협주단을 창설해 초대 단장으로 취임하고 전국 순회 공연을 했다. 1950년 6·25 발발 후 정율성은 개전 초기 인민군과 함께 아내와 서울까지 내려왔다가 그해 10월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듬해에는 북경예술극원 합창대 부대장이 돼 중공군 군가를 작곡했다. 1956년에는 귀화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12월 15일 중국 베이징 대학교에서 "광주시에는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한국의 음악가 정율성을 기념하는 '정율성로'가 있다. 지금도 많은 중국인이 '정율성로'에 있는 그의 생가를 찾고 있다"면서 정율성을 중국과의 연결고리로 삼으려 했다.

또한 문 정부는 2019년 6·25 남침 주범(主犯)으로 북한에서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국가유공자로 추서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의열단장이자 조선혁명간부학교장이던 김원봉은 본명이 정부은인 정율성에게 '음악으로 성공하라'는 뜻으로 '율성(律成)'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가리켜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이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만들기 위해 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해방 이후 북한 김일성 정권 수립 및 6·25전쟁 개입 이력 등을 확인한 당시 보훈처는 난색을 보였고 문 정부의 김원봉·정율성 서훈 시도는 불발에 그쳤다.

보훈부 관계자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문 정부 때 정율성·김원봉 서훈을 추진했으나 친북 행적이 너무 뚜렷해 내부에서 반발 목소리가 나왔고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08/25/20230825000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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