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김정은이 집권 초기부터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정치범수용소는 4곳으로 줄었다. 기존 3곳(14·16·25호)은 확장됐고, 1곳(평양)은 신설됐다."
북한 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인 사단법인 '엔케이워치'(NK Watch)를 이끌고 있는 안명철 대표는 위성사진 분석과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정치범수용소는 4곳"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운영되는 것으로 보이는 정치범수용소는 평안남도 개천시 14호·18호, 함경북도 화성군 16호, 청진시 25호, 함경남도 요덕군 15호 등"이라는 통일부의 '2023 북한인권보고서'와는 엇갈리는 주장이다.
안 대표는 지난 25일 서울 중구에서 미국 국제민주연구소(NDI)와 외신, 외교관, 비영리기관 등을 대상으로 개최한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 관련 브리핑에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14호(평안남도 개천), 16호(함경북도 명간) 등 완전통제구역 2곳, 25호(함경북도 청진)와 평양시 승호구역 화천동수용소 등 교화소 2곳을 비롯해 모두 4곳이 운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완전통제구역이던 15·18호 등은 폐쇄됐으며 14·16·25호와 신설된 평양교화소만 운영되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15·18호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통일부의 북한인권보고서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본지는 28일 추가 인터뷰를 통해 안 대표의 설명을 더욱 자세히 들어봤다.
안 대표는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북한 경성(11호)·온성(13호)·회령(22호) 등에서 경비대원으로 근무해 정치범수용소, 특히 완전통제구역과 관련해 정확한 증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로 꼽힌다.
1994년 10월 국내로 망명한 뒤 정치범수용소에 구금된 가족의 생사를 현재까지 확인할 수 없다는 안 대표는 스스로를 가리켜 "한때 '가해자'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피해자'"라고 언급했다.
2013년 12월부터 엔케이워치 대표 직을 맡아 분기마다 수용소 정보를 업데이트해온 안 대표는 "국제사회가 정치범수용소 문제를 계속해서 지적하자 이에 부담을 느낀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15호 내 혁명화구역과 제가 근무했던 22호(완전통제구역)를 해체했다. 2018년에는 또다시 15호 내 완전통제구역도 완전히 해체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완전통제구역(Total Control Zone)과 교화소(Correctional Labor Camp for Political Prisoners) 등으로 구성된다. 완전통제구역은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정치범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종신수용소로, 한 번 수용되면 사회로 복귀할 수 없고 처참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수용소에서 죽게 된다.
3년간 강제노동과 '혁명화'라는 정치사상교육 과정을 통해 정치범들을 사상적으로 재무장한 뒤 심사 결과에 따라 사회로 복귀시키고는 했던 혁명화구역(Revolutionary Zone)은 김정은 집권 초기 완전히 폐지됐다고 한다.
안 대표는 "북한인권보고서는 2002년에 해체된 18호, 2012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해체된 15호가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명시할 정도로 내용이 엉망이다. 2002년에 18호가 해체되면서 탈출한 수감자들이 현재 한국에 40~50명 정도 살고 있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수용소 현황뿐 아니라 16호 소재지인 함경북도 화성군이 명간군으로 '개명'된 사실도 반영하지 못해 민간 북한인권단체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와 관련, 안 대표는 "보고서 내용이 엉망인 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며 '문재인 통일부'가 지난 5년간 발표하지 않았던 북한인권보고서가 윤석열 정부 들어 5년 만에 발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가 1979년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체를 최초로 폭로하자 크게 당황한 북한 당국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구조조정을 벌여 정치범수용소를 12개에서 6개로 축소했다. 김정일에 비해 국제사회를 많이 의식하는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6월부터 나머지 6개 수용소에 대한 해체를 시작했다. 혁명화구역에서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생존자들이 탈북해 국제사회에서 그 실상을 증언하자 부담을 느끼고 혁명화구역을 완전히 폐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김정은 집권기에 15호와 22호 등이 해체됐지만, 완전통제구역인 14호와 16호, 25호는 확장됐다"며 "완전통제구역에 갇혀 있던 정치범들은 다른 수용소로 이동 수감시키는 등 그들에 대한 석방조치는 절대 이뤄지지 않았다. '회생 불가능'한 수감자들을 사회로 내보낼 수는 없고 강제노동도 시켜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감옥을 새로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대표에 따르면, 평양시 승호구역 화천동수용소에 신설됐다는 교화소에는 고위층이 수감된다.
안 대표는 "원래는 화천에 고위층 수용소인 26호가 있었는데, 1990년대 초 정치범수용소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자 해체됐다. 이후 평양으로 옮겨 소규모 교화소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3년부터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할 때쯤 확장공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가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를 넘어 북핵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건설 당시 22호 수용소의 운전병으로 근무하며 보위원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안 대표는 "북한 당국이 풍계리 핵실험장 공사에 정치범들을 동원했는데, 이후 비밀 유지를 위해 이들을 처형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어 "제가 근무했던 22호 수용소에서도 '사회주의 대건설에 동원된다'는 명분으로 1991년부터 1994년 사이에 해마다 약 200명 정도의 정치범들을 싣고 나갔다. 보위원들은 정치범들에게 '나가서 일을 잘하면 풀어준다'고 허위선전했지만, 다시 돌아온 정치범들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3년 3차 핵실험 후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16호 수용소와 풍계리 핵실험장과 이어지는 (지상) 비밀통로를 찾았다"며 "산자락을 두른 도로가 수용소 철책 안과 핵실험장 초소까지 이어졌다. 핵실험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터널 보수공사는 수감된 정치범들밖에는 할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북한은 탈북 후 중국에서 남한행을 시도하거나 중국 현지에서 선교사를 만난 주민들뿐 아니라, 한국 노래를 들었거나 영상물을 시청했거나 외부와 전화 통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주민을 체포, 구금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 장성택을 비롯한 수많은 고위 간부를 숙청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범수용소의 규모와 수감 인원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며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북한 주민이 약 12만 명"이라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김정은이 국제사회를 많이 의식한다는 점을 재차 언급하며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와 정치범들의 석방은 북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힘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 국제사회와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이날 브리핑에 참석한 외신기자들과 인권단체들을 향해 거듭 호소했다.
이관형(북한학 박사) 엔케이 사무국장은 "김정일과 비교하면 김정은은 국제사회를 의식해 법률에 근거해 정상적으로 처벌한다는 모습, 정상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모습을 많이 보이려는 특징을 보인다"며 "북한은 한국에서 쓰는 용어와 제스처들을 따라 하는 주민들을 노동당을 통해 직접적으로 처벌해왔는데, 최근 말도 안 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다. 김정은은 김정일에 비해 법률 제정활동들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파공작원 출신으로 비영리 민간단체 '카스컨설턴시'(Korea Analysis & Strategy Consultancy)의 대표를 맡고 있는 곽인수 박사(북한학)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생산한 김정은 '교시말씀', '당의 방침집행대장' '김정은의 비준방침 문서' 등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생산한 비밀문서들을 분석한 결과 김정은이 북한 내 반인도적 범죄의 최종 책임자이자 지휘권자라고 주장했다.
곽 대표는 "북한의 처벌 체계는 당연히 노동당에 의해 통제된다. 수령은 노동당을 통해 처벌 체계에 개입하며 필요할 경우 직접 명령도 하고 지휘도 한다. 수령은 자신의 자의적 주관적인 판단을 통해서 처벌과 정치범수용소 구금을 직접 결정하기도 한다"며 "수령의 직접적인 처벌 개입은 수령이 반인도적 범죄의 최종 책임자이자 지휘권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근거"라고 말했다.
곽 대표는 1990년 국내에 침투해 지하당을 구축하고 고정간첩을 데리고 평양으로 복귀한 공로로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 영웅 칭호와 국가훈장 1급을 받은 남파공작원 출신이다.
그는 1995년 력 대선 후보와의 연락망을 구축하고 고정간첩 접선 목적으로 국내에 침투했다가 국군과 경찰에 체포돼 전향했다. 북한 당국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곽 박사의 존재를 부정했고, 북한에 있는 그의 가족들은 모두 숙청당했다.
엔케이워치가 2022년 하반기부터 NDI의 지원을 받아 카스컨설턴시와 함께 수행한 'The Suryong Dictatorship Mechanism: Who Is Ultimately Responsible for Crimes Against Humanity in North Korea?'(수령독재 메커니즘 연구: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 최종 책임자 규명을 위한 시사점) 제하의 연구보고서는 다음달 엔케이워치 홈페이지(www.nkwatch.org) 개편이 완료된 후 공개될 예정이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07/28/20230728001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