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의 ‘책’ 갈등이 문제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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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청이 ‘책’과 씨름 중이다. 작은도서관에 스터디카페를 추가하려다 반발을 사고, 도서관 예산 삭감을 문제 삼은 도서관장을 파면했다. 플랫폼P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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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P 입주사협의회가 5월18일 서울시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플랫폼P 운영 정상화 및 출판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서명 1900여 개를 구청에 전달했다. ©플랫폼P 입주사협의회
서울시 마포구청이 ‘책’과 씨름 중이다. 세 가지 장면이 있다.
장면 하나. 지난해 11월 마포구 관내 구립 작은도서관에 스터디카페 기능을 추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마포구청은 “기능 재설계일 뿐 폐관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컸다. 문제는 작은도서관을 수탁 운영해오던 기관들이 11월3일 마포구청으로부터 계약 종료를 통보받은 상황이었다. 작은도서관 관장들도 고용승계가 어려워졌다. 이미 2025년까지 재계약 도장을 찍은 후였다. 당시 마포구청 홈페이지 ‘구민에게 듣겠습니다’ 게시판에는 항의 글이 500개 넘게 쏟아졌다. ‘작은도서관을 없애는 것은 미래를 없애는 것입니다.’
장면 둘.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은 2017년 5월 임용되었다. 임기제 사서사무관이다. 공공도서관의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마포구 내 여러 도서관에 상호대차서비스를 도입하고 작은도서관마다 사서 인력을 배치했다(마포중앙도서관은 관내 도서관 15곳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지난해 11월4일 그는 페이스북에 다음 글을 올린다. ‘도대체 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기도 전에 예산의 30%를 삭감하라는 지시도 이해할 수 없지만(추가 삭감 요구?) 위수탁 협약 체결이 다 끝난 작은도서관들을 독서실로 전환해서 동문고에서 운영하라는 지시는 더 이해가 안 가는군요.’ 이 공론화는 주민 항의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된다. 지난 4월7일 마포구청은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을 직위해제한 뒤 5월4일 파면했다. 공무원으로서 품위 유지 및 복종 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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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4일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이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 ©페이스북 갈무리
장면 셋. 출판사 ‘알록’을 운영하는 안지혜씨는 지난해 7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 입주했다. 마포구가 출판업계 소규모 창작자를 지원하기 위해 홍대입구역 7번 출구 인근에 설립한 창작 공간이다. 일명 ‘플랫폼P’다. 임차료가 저렴한 데다 동료 출판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런데 올해 5월16일 안씨는 마포구청으로부터 주민등록표 초본 1부를 제출해달라는 통보를 받는다. 연장 계약을 위해선 주민등록상 1년 이상 마포구에 거주하고 사업장도 마포구에 등록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없던 규정이다. 올해 재계약 대상자는 14명인데 이 중 ‘요건’에 충족되는 사람은 두 명뿐이다. 나머지는 자리를 비워야 한다. 7월이면 계약만료로 상당수 입주자가 퇴거하는데 마포구청은 신규 입주사 모집을 하지 않고 있다. 5월18일 플랫폼P 입주사협의회는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포구청은 편협한 출판 창업자 내쫓기를 멈추라”고 요구했다.
서로 다른 시기, 개별적으로 발생한 세 사안의 공통점이 있다. 책과 관련된 행정으로 발생한 갈등이다. 경의선 책거리부터 서울와우북페스티벌까지 마포구 일대는 출판 문화의 중심지 기능을 해왔기에 논란이 더욱 컸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에겐 ‘도대체 왜?’란 의문이 향하고 있다. 마포구가 책 관련 예산과 사업을 정말 축소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오해에서 비롯된 논란일까? 마포구청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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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3일 박강수 마포구청장(왼쪽)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홍대 ‘레드로드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마포구 제공
마포구청 한 관계자에 따르면, 작은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보자는 취지가 ‘잘못’ 전달된 것이다. “작은도서관들이 오후 6시 이후에는 텅 비어 있다. 그 공간을 청소년이나 취업준비생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설계해보는 게 어떨지 검토해보는 단계였다. 그런데 마치 마포구청이 작은도서관을 폐관하는 것으로 알려져 주민들의 혼란이 발생했다.” 도서관 예산 삭감안도 마찬가지다. 타 부서 간 중복 사업은 없는지, 불필요한 사업은 없는지 예산을 조정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마포중앙도서관장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공론화함으로써 ‘불신과 오해’가 생겼고 ‘마포구 행정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켰으며 이로 인해 ‘막대한 행정력 낭비’를 일으켰다(송경진 관장 징계의결서 중). 마포구청 관계자는 “공무원이 확정되지 않은 내용을 SNS에 공표하는 행위가 남들이 봤을 땐 마포구청의 최종적 의사결정으로 비춰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마포구청 2023년도 세출예산서를 보면 마포중앙도서관 예산은 전년도에 비해 1억6619만원 증액되었다.
송경진 관장은 왜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올렸을까? 송 관장에 따르면, 도서관 예산을 30% 삭감하고 이미 위수탁 계약이 끝난 작은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만들어 동문고(새마을문고 등 자원봉사자 위주의 주민 독서 시설)에서 운영하라는 지시가 구청 측에서 있었다. 작은도서관은 면적 33㎡ 이상·열람석 6석 이상인 작은 규모의 시설인데, 여기에 스터디카페를 추가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던 작은도서관이 여느 동문고처럼 책만 빌려주는 ‘소극적인’ 서비스로만 남게 되는 게 아닌지 우려가 컸다. 마포중앙도서관 역시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데 예산을 더 삭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예산 관련 논의를 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구청장을 만날 수 없었고, 보고와 지시가 저를 뛰어넘고 이루어지던 상황이었다.”
“구민 혈세 도서관” 비판하던 마포구청장
박강수 구청장은 당선 전부터 도서관 예산을 비판했다. 지난해 2월18일 인터넷 언론 '시사포커스'와 지역 언론 '마포땡큐뉴스'에 게재한 "구민 혈세 도서관 만든 마포구청장, 구민에게 사과해야"라는 제목의 칼럼이 대표적이다. 마포중앙도서관이 예상보다 큰 적자 폭을 기록하고 있으며, 매년 수십억 원씩 적자가 가중되는데 유동균 당시 마포구청장 행보에 적자 감소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박 구청장은 두 언론사를 창간해 회장을 지냈다. 윤석열 대선후보 선대본부 기획특보 출신으로 마포구에서 12년만에 당선된 보수정당 구청장이다.
마포구청에 따르면 박강수 마포구청장의 기조는 ‘예산 효율화’다. 새로운 단체장이 와서 기존 정책 방향이 변하거나 중단되기도 한다. 송 관장은 “그럼에도 유지되어야 하는 본질적인 기능”은 있다고 반박한다. 공공도서관이 그런 종류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라서다. “2023년도 도서관 예산은 증액되었지만, 도서관 프로그램 운영비와 인건비 등은 삭감되었다(송경진 관장).”
마포구청의 계약해지 통보가 작은도서관 ‘축소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송 관장에게 내려진 파면 처분이 적절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공무원 징계 제도상 ‘파면’은 최고 수위의 중징계다. 공무원 신분을 박탈해 5년간 공무원 임용이 불가능할뿐더러 연금도 50% 감액된다. 송 관장의 법률대리인 양홍석 변호사는 “파면 처분은 신분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불이익을 주는 것이기에 아주 중대한 비위 행위여야 한다. 직장 내 성폭력이나 공금횡령 같은 사건에 적용된다. 파면할 정도의 비위가 아닌데 파면을 강행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반기를 들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공무원 사회에 심어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송 관장은 서울시에 소청 심사를 제기한 상태다. 심사위원회 판단에 따라 파면의 적절성이 가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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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P 내부 모습. ©시사IN 신선영
마포구청은 플랫폼P 논란도 시민들의 오해가 크다는 입장이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플랫폼P의 용도를 변경하거나 출판인들을 내쫓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다만 입주 공간인 3층과 달리 공유 공간으로 쓰이는 2층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청년일자리 사업 참가자들을 입주시킨 것뿐이고, 플랫폼P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개편 방안을 검토 중이라 신규 입주자를 아직 뽑지 않는다고 했다. 마포구민으로 입주 대상을 제한한 이유에 대해선 “구청장의 정책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3월29일 마포구의회 구정 질의에서 플랫폼P에 대해 “우리 구에서 연간 14억원 이상 구비를 투입해서 전국적으로 모든 출판인들을 위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전액 마포구 예산으로 운영되는 시설인데 마포구민은 28%뿐이라는 지적이다.
구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설을 일부 출판계가 독점하려는 것일까? 플랫폼P 입주사들은 이를 갈라치기라 비판한다. 출판문화진흥센터가 마포구에 입지하게 된 까닭은 출판사부터 독립서점, 인쇄소 등 출판 생태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였기에 시너지가 났다. 플랫폼P 입주사협의회 조현익 회장은 “입주사 대부분이 마포구에 사업자등록된 상태인데,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마포구가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두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마포농수산물시장도 회사 사장이 마포구민이어야만 입주할 수 있는가? 혹은 사장이 마포구민이 아니라면 홍대 음식점도 내쫓을 것인가?”
“관계와 노하우가 쌓여가던 중인데…”
마포구청 측은 플랫폼P는 AK플라자가 세워지면서 마포구가 기부채납받은 시설이기 때문에 마포구의 정책 판단에 따라 운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무조건 출판문화 전용으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포구 시설이기에 마포구의 행정 수요에 맞게끔 활용할 수 있다. 구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한두 개가 아닌데 어떻게 출판만 배려해줄 수 있겠나.” 출판 기능은 유지하되, 일자리 센터나 창업 공간 등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으로 개편하는 것이 구청 측의 구상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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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들은 5월13일 플랫폼P 상황을 알리기 위해 북페어 ‘마포 책소동’을 개최했다. ©플랫폼P 입주사협의회 제공
개관 3년 만에 존폐 위기에 놓인 셈이다. 플랫폼P 입주사들은 공론화 없는 일방적 통보를 문제 삼는다. 입주사 선발 경쟁률이 9대 1까지 기록할 정도로 플랫폼P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는 것이다. 입주사 전체 52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95%가 2021년과 2022년엔 100%가 ‘조금 만족’ 이상(만족·매우 만족)을 택했다.
안지혜 '알록' 대표는 입주 자격을 마포구민으로 제한하는 조치로 플랫폼P의 기능이 매우 축소될 거라고 예상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일터와 가까워지기 위해 마포구로 이사했지만 다른 동료들은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마포구민만 가능한 조건이라면 실제로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플랫폼P를 없애거나 다른 곳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실이 되기 좋다.” 무엇보다 그가 플랫폼P를 지키고자 하는 이유는 동료 출판인들과 연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출판에 관한 관계와 노하우가 쌓여가던 중이었다. 플랫폼P는 마포구의 자원이자 자랑인데, 왜 이곳을 굳이 바꾸려고 하는가?”
이와 비슷한 지적은 지난해 11월15일에도 있었다. 마포구의회에서 개최된 ‘작은도서관 고유의 기능을 지키기 위한 주민공청회’ 자리에서다. 작은도서관에서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 동아리, 부모 교육 등에 참여하는 이들이 대거 참여했다. “제가 작은도서관을 고집하는 이유는 10년 동안 한결같이 맞아주시는 도서관장님의 노력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 엄마로 불릴 뻔한 제가 동아리에선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더라(김현주).” “작은도서관에서 자녀들을 키웠다. 도서관의 기능을 잘 알고 노하우를 쌓아온 관장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랜 시간 쌓아온 탑을 무너뜨리지 말라(박영주).” 구청의 최근 행보는 책을 통해 지역사회에 만들어진 관계망을 겨냥하고 있다. 용도변경이 아니라는 마포구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책으로 빚어진 ‘세 장면’이 문제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