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리굴라는 로마의 3대 황제로서, 불과 4년도 안돼 국고를 탕진하고 외치를 실패한, 결국 시민의 지지마저 몽땅 상실해 최측근,팬덤이던 친위대장에 암살된 인물(이 글에
선 칼리굴라=윤석열,티베리우스=문재인)
결말 - [칼리굴라를 둘러싼 환경(지지율)은 즉위 당시의 열광이 거짓말로 여겨질만큼
차갑게 식어있었다. 열광이 차갑게 식기까
진 3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외치의 실패
따위엔 무관심한 일반시민의 지지도까지
떨어진것은 생활필수품은 땔감(공공요금)
에 부과된 세금 때문이었다.]
반전 - [칼리굴라는 자신의 신변강화를 위해 최측근인 근위대를 아버지인 게르마니쿠스 신화의 신봉자들만 모았다. 이런 상황에선 용기있는 의원도 쉽게 손댈수 없었다.
그러나 칼리굴라는, 그 자신이 누구보다 자신에 충성스럽다 믿었을 아버지 신화의 신봉자들인 근위대장들에 의해 죽었다]
[칼리굴라(이하 윤석열)는 원로원 시정연설(취임식)을 하면서 티베리우스(이하 문재인)시대와 정반대의 통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의원도 시민도 이 선언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티베리우스는 생각도 하기 싫은 존재처럼 무시되고 잊혀졌다. 원로원(정치권)은 모든 점에서 티베리우스를 잊고싶었다. 장례식
즈음에는 그가 죽은(퇴임한) 직후 <티베리
우스를 테베레 강으로 던져라>를 외치는
사람조차 없을만큼 모두가 무관심해졌다.
칼리굴라에게 성급히 기울어진것 역시 티베리우스에 대한 증오심의 반동이었다.]
[8월 31일의 칼리굴라 생일은 당연히 온
백성의 경사가 되었다. 그는 이날을 단순한 생일로 만들지 않았고, 원로원과 시민들은
곧장 그에게 제위가 계승된 인상을받았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자신의 즉위일인 3월 18일을 국경일로 삼고싶다는 칼리굴라의 요망이 원로원과 시민들의 열광적인 찬성으로 실현된 것도 당연했다.]
[즉위 7개월동안 보너스,축제,오락을 제공
하는 일밖에 하지않은 칼리굴라가 무엇때
문에 이렇게 사람들의 호의를 얻을수 있었
을까. 즉위한지 7개월간 정치는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까, 나라 전체가 그의 쾌유를
기원한것은 업적평가가 아닌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칼리굴라는 즉위시에 티베리우스와는
정반대의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정치는 세금폐지,축제,오락 등 자신의
인기를 높여줄 화려한 일에만 한정되었고
서민의 관심을 끌지않는 수수한 분야에선
티베리우스의 방식을 조금도 바꾸지않았다.]
[벌거벗은 상반신과 맨발에 제우스 신을
흉내내 머리와 수염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채 원로원에 등장한 칼리굴라를 보고 의원
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반 시민
들도 깜짝놀랐다. 중병으로 머리가 이상해
진게 아닐까 의원들은 생각했지만, 젊은이
나 서민들은 재밌다며 박수를 보냈다]
[칼리굴라가 즉위한지 3년도 지나기 전에
황제의 재산은 물론 국가재정마저 파탄난 것이 분명해졌다. 계승한 흑자는 각종 오락
스포츠에 벌써 오래전에 탕진했고, 3년째
가 가까워올 무렵에 변통할 방법도 바닥나
버렸다. 낭비는 그게 무엇이든 갈수록 심해
지는 숙명을 겪고, 시민들은 칼리굴라의 진수성찬에 입맛이 들었다. 재정파탄을 벗어날 길은 수입을 늘리는 것뿐이지만, 경제
성장을 가장 정직하게 반영하는 매상세
(부자,기업,부동산감세)는 폐지해버렸다]
[그는 황실의 가재도구,패물,노예까지 경
매에 내놓으며 장소를 로마가 아닌 리옹
에서 하기로 했다. 로마에서 하는것은 창피했고, 돈이 없으면 살수없는, 스토리텔링을
붙여 시세보다 비싼값으로 받아야했다]
도저히 지어낼래야 지어내는게 더 힘들만큼, 윤석열 정부는 칼리굴라와 똑같이 가고있습니다. 결국 국고는 탕진될것이고, 그는 가장 충실한 윤핵관들에게 배신당해 칼리굴라처럼 비참한 결말을 맞을것입니다. 몇글자 안고쳤는데도 원문과 똑같게 무너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