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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의 몽골기병론 글쎄? (장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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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김구
구태 진보  2틀김 을 데리고 정치 초보 석열이가  기동성 있게 몽골기병 처럼 전진 한다라? 1241년 몽골군이 러시아 점령 4년만에 동유럽의 강자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폴란드 일부 까지 손에 넣고,이렇게 되자 몽골군의 존재에 서방 기독교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그러자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9세의 명령으로 슐레이지엔 공국의 하인리히 2세는 독일과 폴란드 병사 17만 과 당시 유럽의 3대 기사단,독일 최강의 기사단 으로 십자군 전쟁의 참여 와 공로로 인정받은 튜튼기사단 3만명을 포함해 20만 연합군을 결성하여 서쪽으로 진군하는 몽골군 과 맞서 싸우기로 마음 먹었던 것 이다.유럽 연합군은 병력을 5진으로 나누어 몽골군의 축차소모를 노렸다.제 1진은 폴란드 농민들로 구성된 보병대로 몽골군의 진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제 2진과 3진은 지방 영주를 중심으로 기사와 그 종자, 영지에서 징병한 농민 보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마지막으로 4진과 5진은 결정적 시기에 전장에 뛰어들어 승부를 마무리 할 중장갑 기병으로,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와 독일의 기사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유럽군의 당대 최고의 최정예병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유럽군 사령관 하인리히 2세는 5진에 위치 했었다.그러나 ,이는 첫번째 전투에서부터 어긋나고 말았다.몽골의 선발대가 유럽연합군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제 1진 지휘관이었던 모라비아 변경백의 아들 볼레슬레프 가 장난감 같은 활과 볼품없는 갑옷을 지닌 몽골군을 얕잡아보고 단독으로 돌격해버린 것이다.이것이 패착이 되어 그때 공을 뺏길까 두려웠던 2,3진의 지휘관들도 덩달아 출진해버리고 말았다.그러자 달아나는 척 하며 몽골 선발대가 그들을 바투가 있는곳까지 깊이 유인하여 포위시키고 일제히 공격했다.그러자 1,2,3진의 농민병들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다 속절없이 죽어갔다.그때, 5진에 있었던 유럽군사령관 하인리히 2세가 이 소식을 듣고 불같이 대노하여 기사대장 헤르마이스터 포포 폰 오스테른 경이 이끄는 튜튼기사단과 폴란드 기사단을 이끌고 1,2,3진을 구하기 위하여 레그니치로 달려갔다.그러나 , 레그니치로 가는 왈슈타트 평원에서 기사들은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바로 그곳에,몽골제국이 자랑하는 최정예 부대, 케식텐 과 만구다이 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동서양이 자랑하는 정예병 들의 맞대결이 성사 된 것 이었다.튜튼기사단 기사대장 은 몽골군을 잠시 바라보더니 크게 웃으며 저것도 정작 군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조잡한 갑옷 과 저렇게 작은 말을 타며 어찌 군대라고 자청 할 수 있는가? 하며 곧바로 랜스를 들며 기사들을 통솔 하여  차지 대형을 갖추고 일제히 성호를 긋고 돌격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적에게 도착하기 전에 만구다이 쏘아대는 엄청난 화살비 들이 유럽연합군 기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그러나 튜튼 기사단은 계속 돌격 하는 수 밖에 없었다.엄청난 기사들의 목숨을 빼앗아 간 죽음의 화살비가 그치자 마자,곧바로 몽골군의 진형이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고,몽골의 정예기병 케식텐이 곡도를 뽑으며,기사단과 맞붙기 시작 했다.케식텐은 경기병대 의 빠른 기동력의 이점을 활용하여,몽골제국의 병사들에 비해 당시 유럽기사단의 갑옷과 장비의 무게는 실로 엄청났다.그렇기에 유럽 기사단의 측면을 뚫고 들어가 허리를 베고,자연스럽게 전방에 고립된 기사단과 맞붙기 시작했다.허나 기동력이 사라져 버린 기병은 아주 좋은 먹잇감에 불과 했기 때문에 유럽기사단 은 엄청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결국 만구다이까지 기사단 주위를 선회하며 활을 쏘아대자 튜튼기사단은 공격도 못하고 픽 쓰러지기 시작 했다.결국 몽골군의 빠른 기동성 을  무시 하고 간과 했던 튜튼 기사단 과 기사대장,하인리히 2세는 전사 했고,고립된 1,2,3 진은 궤멸 당했다.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몽골군이 시체에서 적의 귀를 일부 배어 냈는데 수량이 무려 사람만한 자루 9개에 가득 찼다고 한다.이 전투의 패배로 서유럽은 큰 충격에 빠졌다.그때 신의 가호가 내렸는지 몰라도 당시 황제 였던 칭키즈칸의 셋째 아들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몽골의 수칙에 따라 바투는 몽골로 발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오고타이 칸이 좀 더 생존 해 있었다면 세계사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 었을지도 모른다.얼마나 철저히 파괴되었던지, 몽골군의 침입이 있은 지 6년 뒤 이곳을 방문했던 한 여행자는 자신이 본 것은 벌판에 흩어져 있는 무수히 많은 해골뿐이었다 고 기록한다.나는 2김,그리고 윤석열에게 말해 주고 싶다.당신들은 훗날 러시아의 겨울에 나플레옹도 물러났고,히틀러도 무릎 꿇었던 러시아를 점령 했던 몽골군의 겉모습 을 보고 판단하여 얕보고 아무런 생각 없이 돌격한 1진의 볼레슬레프 나 다름 없다고,그리고 역선택,민주당 프락치 으로 2030 과 2030의 상징인 홍형을 온갖 조롱하고,보수를 파멸 직전까지 몰아세우는 정치수사 선봉장으로 앞장섰던 당신이 우리에게는 역선택 이다.이제 와서 지지율 떨어질까봐.홍형,2030 위하는 척 하지 마라.11만 대군에 우린 고작 40명에 불과 한데 참가 한 들 무슨 도움이 되겠나? 야인으로 살겠다. 그러니 좀 내버려 두라.당신들은 5진에 있던 하인리히 2세와 기사대장의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1,2,3진 에 있던 병사들이 궤멸 한 것 처럼 당신의 노욕과 옹졸함 과 오만한 잘못된 선택 으로 당 내부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장착한 테러리스트 를 수용 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을 훗날 역사가 당신들을 평가 할 지 정말 나는 궁금하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333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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